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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Jul 06. 2024

밥 먹여주면 욕먹어요

학기 중간에 어린이 집에 입학한 알레이나이번 달에 만 3세가 되었지만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자그마했다. 알레이나의 손과 팔목은 너무도 가냘펴서 물병 뚜껑을 여닫는 것조차 버거웠다. 교실에 비치된 의자들은 모두 아동용이었지만 알레이나에게는 높았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아이는 암벽 등반이라도 하듯 기어올라가야 했고 무사히 안착했다하더라도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알레이나가 싸 온 점심은 양념된 닭고기를 얹은 쌀밥이었는데 숟가락질이 서툴어 입 안으로 들어가는 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다 여러 명의 또래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처음인지라 좀체 먹기에 집중을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아이는 식사를 제대로 끝낼 수 없을 것이고 오후 내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을 판국이었다. 나는 의자를 끌어당겨 알레이나 옆에 앉았다.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는 아이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는 문화가 없다. 혼자 몸을 가눠 앉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집기 시작하면 바로 스스로 먹도록 둔다. 식사 시간에 식탁 앞에 앉지 않고 온 방을 휘젓고 다니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고 부모가 아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밥을 입에 넣어주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다. 설령 아이를 과잉보호하거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개념 없는 부모들이더라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었다. 아이가 식탁 앞에 앉아 스스로 밥을 먹는 일은 너무도 당연해서 "우리 아이는 벌써부터 혼자 밥을 먹는답니다"라고 자랑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당연한 소리를 왜 저리 떠드는가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알레이나에게 밥을 먹여 주자 아이는 익숙한 듯 잘 받아먹는다. 이 또한 예상한 대로였다. 알레이나는 필리핀계 아이였다. 아시아 문화권의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가 떠 먹여 주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게 하게끔 유도하는 특수한 유전인자가 동양인의 피에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만 해도 아이가 밥을 제대로 안 먹고 남기면 몹시 신경에 거슬린다. 숟가락으로 남은 음식을 싹싹 긁어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고 싶은 욕망이 시시때때로 올라온다. 밥을 떠먹일 때 제비새끼처럼 납죽납죽 받아먹는 작은 입이 귀엽고 아이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받아먹을 때는 알 수 없는 희열 충족감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고 싶다 한들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다. 교사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면 모두 이상하게 쳐다볼게 뻔하다. 다른 교사들은 미스미아가 애들 버릇을 망치고 있다고 흉을 보거나 대놓고 한소리를 할 것이다. 하다못해 아이조차 교사가 밥을 떠서 자신의 입에 넣어주려 한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색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할 것이다.






물론 알레이나는 특수한, 그러니까 예외적인 경우였다. 아이는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래에 비해 발육이 늦었으며 몇몇 활동을 혼자서 수행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다른 교사들도 그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알레이나에게 밥을 좀 떠 먹여주기로서니 크게 딴지를 걸 일은 아니다.

나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합법적 승인을 받은 듯한 해방감만끽하며 알레이나의 입에 밥을 떠 넣어주기 시작했다. 먹는 데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부산을 떨던 아이는 조그만 입을 딱딱 벌리며 잘도 받아먹는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건너편에 앉은 브라이스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새빨간 젤로푸딩을 먹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호랑이 선생님 미스미아가 갑자기 동급생에게 밥을 먹여 주는 게 낯설었는지 약간 의아해하면서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소년을 놀려줄 셈으로 아이가 들고 있던 스푼을 낚아채 푸딩을 떠 입에 갖다 댔다. 소년은 흠칫 놀랐다.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내가 아! 하라고  소년은 기계적으로 입을 벌렸고 나는 안으로 스푼을 쏙 넣었다. 아이는 푸딩을 받아먹더니 쑥스러워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더 이상 떠 먹여 줄 생각은 없었으나 소년은 푸딩을 꿀떡 삼키더니 입을  하니 또 벌렸다.

나는 그 반응이 우습고 귀여워서 푸딩을 한번 더 입에 넣어줬다. 브라이스는 몹시 기쁜 기색으로 음식을 받아먹었다.

나는 소년에게 스푼을 돌려주며 말했다.

"브라이스야, 너는 키도 크고 힘도 세고 혼자 먹을 수 있잖니. 알레이나는 아직 어리고 이제 막 어린이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도움이 좀 필요하단다. 그래서 미스미아가 먹여준 거야. 알겠니?"

소년은 자뭇 조숙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더 이상 먹여달라고 입을 벌리지 않았다. 나는 알레이나에게도 나머지 밥은 혼자 먹어보라고 일러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숙한 표정을 짓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똑바로 앉으라거나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줬. 어중간하게 남긴 아이들의 을 싹싹 긁어서 입에 넣어주고 싶은 마음과 어느 정도는 아이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교사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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