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때에는 오후 내내 바깥에 나와 논다. 원래 세시쯤 오후 간식을 먹지만 일찌감치 놀이터에 나온 날에는 아이들이 먹고 싶을 때 자유로이 간식을 먹게 둔다.
점심을 먹은 지 고작 한 시간 반이 지났을 뿐인데 잘마가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오후 간식을 꺼내 먹고 있었다.
나는 건너편에 앉아 잘마가 싸 온 간식을 구경했다. 딸기 몇 알과 크래커, 말린 대추야자 세 개가 작은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있었다.
잘마는 올해 네살이다. 매끄러운 갈색 피부와 긴속눈썹을 드리운 검은 눈이 예쁜 이집트계 소녀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던 2년 전만 해도 잘마는 반에서 제일 작고 어렸다. 오동통한 볼이 사랑스러웠고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쑥쑥 자라 이제는 야물딱지게 말 잘하는 꼬마 숙녀가 된 것이다.
검붉은 대추야자를 집어든 채로 잘마가 말했다.
"미스미아, 그거 아나요? 대추야자를 먹을 땐 꼭 소원을 빌어야 해요.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요."
"누가 그러던?"
"엄마아빠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랍 문화권에서 내려오는 전설이나 설화 같은 것인가 추측해볼 뿐이다.
"그럼 지금 대추야자 먹을 때 소원을 빌거니?"
"네. 대추야자가 세 개 있으니까 소원 세 개를 빌 수 있어요."
"무슨 소원을 빌건대?"
"하나는 이번 주말에 동물원에 가는 거예요. 아빠가 삼촌네 이삿짐 나르는 걸 빨리 끝내면 주말에 데려가 준다고 했거든요. 그치만 일이 늦게 끝나면 못 간다고 했어요."
"그렇구나. 두 번째 소원은 뭐니?"
"새 물병을 사는 거예요. 언니가 쓰는 것처럼 손잡이가 달리고 빨대가 있는 물병을 갖고 싶어요."
소박하고 귀여운 소원이다. 나는 빙긋이 웃었다.
"세 번째 소원은?"
아이는 골똘히 생각한다. 세 번째 소원까지는 딱히 생각해 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 번째 소원은 없나 보다?"
"아빠가 말하길 딱히 소원이 없을 땐 다른 사람을 위해 소원을 빌라고 했어요. 모두에게 평화가 오기를! 이렇게요. 오늘 세 번째 소원은 그걸로 하겠어요."
아이는 마지막 대추야자를 입에 넣으며 외쳤다.
"모두에게 평화가 오기를!"
나는 순간 뭉클하여 아무 말도 못 했다. 잘마가 나를 보며 활짝 웃는데 꼭 천사 같았다.
파란 하늘 위 양털처럼 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이 퍼져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키가 큰 아카시아 나무에서는 옅은 꽃향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 까르르 웃는 소리가 가득하다. 잘마의 마지막 소원이 제대로 이루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