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1일 1식을 한다. 매일 하지는 않고 그날의 기분과 몸 컨디션에 따라 할지 말지 결정한다. 전날 과식을 했거나 거울을 보는데 이중턱이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날 하는 식이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는 평균적으로 주 3회 정도 하는 것 같다. 보통은 평일에 하고, 저녁 한 끼만 먹는다. 평일에 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은 그다지 식욕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먹지 않고 버틸 때는 한가할 때보다 다소 바쁜 때가 유리하다. 주말에는 하지 않는다. 쉴 때는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
1일 1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먹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몹시 귀찮아서다. 매끼 메뉴 결정은 골치 아프다. 일일이 장을 봐다가 요리하기도, 먹고 나서 치우기도 귀찮다. 그렇다면 먹기를 즐기지 않으면 될 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 사는 낙이라고는 오직 먹는 낙밖에 없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방심하면 음식을 아무거나 먹게 된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나 과자처럼 먹기 위한 준비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먹거리에 손이 간다. 이런 음식은 간편하지만 먹은 뒤 죄책감이 들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아무거나 먹어버리고 싶은 욕구와 되도록 건강하게 먹으려는 노력이 시시각각 충돌한다. 그러다 보면 만사가 더 귀찮아지고 차라리 굶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다. 그러니까 1일 1식을 하게 된 데에 거창한 이유나 목적이 없다. 이도저도 못하다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가 되고 마는, 우유부단한 사고의 종결일 뿐이다.
계기가 뭣이 됐든 1일 1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많다. 한 끼만 먹기 때문에 많이 먹더라도 죄책감이 덜 하다. 단식하는 동안에는 속이 편하고 식곤증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단식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건강한 음식으로만 한 끼를 섭취하면 살은 쭉쭉 빠진다. 물론 나처럼 야매로 하면 살이 쭉쭉 빠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체중이 더 늘지는 않는다.
여기까지는 좀 뻔한,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뻔하지 않은 장점도 몇 개 있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체득한 이 뻔하지 않은 장점들 때문에 1일 1식을 더욱 신봉하게 되었다.
종일 굶고 있으면 일단 잡생각이 싹 사라진다. 딱 한 가지 생각만 하게 된다. '이따 뭐 먹지?' 그 생각만 한다.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상태라고 볼 수는 없다. 지극히 일차원적 욕구에만 편향되어 있는 데다 무식해 보이기까지 하다. 사람이 어떻게 맨날 먹을 생각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다만 평소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피로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된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까지 끌어와 골몰하는 나 같은 인간유형말이다. 단식 중에는 쓸데없는 걱정이나 고민을 떨치려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뇌가 알아서 그런 것들은 싹 치워버리고 딱 한 가지 생각만 하게 만든다.
이따 뭐 먹을까?
이 문제만 고민하면 되니 정신적으로 덜 피로하다. 평소 복잡한 머릿속이 아주 심플해진다.
동시에 행동과 반응이 느려진다. 즉각적이고 빠른 반응이란 신체와 정신이 각성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단식을 하는 중에는 신체 에너지만 빠지는 게 아니라 감정이랄지 신경이랄지 그런 것에서도 힘이 빠진다. 곤두세우고 있던 각이 허물어지고 뾰족뾰족 솟아있던 것이 둥글둥글해지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것이 흐물흐물해진다. 한마디로 기운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하거나 불행한 느낌은 아니다. 잠잠하게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어쩐지 나른하기까지 하다. 빠릿빠릿하지 못한 대신(실상은 기운이 없어 느려진 것이기는 하나) 한결 여유 있어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만사 무던해지기도 한다. 무신경해진다가 더 정확한 표현 같지만 어쩐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므로 무던해진다 정도로 합의를 보자. 관심사가 오로지 이따 뭐 먹지? 이것 하나이기 때문에 남들이 뭔 소리를 하건 뭔 짓을 하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주변 시선이나 평판에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모든 관심과 집중이 외부 세상이 아니라 오롯이 하나의 생각으로 향한다. 이따 뭐 먹지?라는 생각을 스스로를 고찰하거나 삶을 발전시키는 방식의 사고라고 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자신의 욕구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느낌이다. 이 또한 백 퍼센트 바람직한 상태라고 할 수 없겠으나 남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한 인간에게는 그럭저럭 바람직하다.
종일 굶다 먹으면 그 순간만큼은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더할 수 없는 만족감이 든다.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느껴진다. 불타오르는 야망과 욕심은 사그라들고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소박한 마음가짐이 된다. 행복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