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한구석에서 갑자기 공연이 펼쳐졌다. 오드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오드리가 부르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노래가 아니다. 꼭 오페라나 뮤지컬 대사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멜로디를 아무렇게나 붙여 부른다.
폼이 예사롭지 않다.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가슴팍으로 오므리기도 하고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저쪽으로 돌렸다 한다. 호소하듯 시선을 하늘을 향해 뒀다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고개를 툭 떨군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다가도 혼잣말을 뱉듯 쓸쓸히 읊조린다. 안타깝게도 가사에는 드라마틱한 연출에 견줄만한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그거 여기에다 놓아줘"라든가 "모래는 그쪽에 가져가서는 안돼"라든가 "삽과 양동이를 가져다줘" 같은 말들이었다.
근방의 아이들 모두 동작을 멈추고 오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티브이 화면 보듯 정신을 뺏긴 채 멍하니 쳐다본다. 예상치 못한, 그러니까 딱히 맥락이 없는 오드리의 행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는다. 쟤는 뭐 하는 거지? 왜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는 거지? 같은 반응은 없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눈길을 둘 뿐이다. 나는 아이들의 그런 표정이 좋다.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함은 물론이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 까르페 디엠이 떠오른다.
반면, 판단하기와 비판하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닳아빠진 어른인 나로서는 그 상황이 몹시 우스꽝스럽다. 동시에 이성적 사고를 발휘하여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만약 낄낄대며 "오드리, 너 뭐 하고 있는 거니?"라고 묻는다면 아이는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힐 테고 공연은 곧바로 막을 내릴 것이다. 창피함을 느낀 아이는 뻔뻔하고(?) 창의적인 무대를 다시는 선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약간 거리를 둔 곳에 앉아 안 보는 척하면서 사실은 치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입가에 실룩실룩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꾹 참고 가자미 눈을 하고 곁눈질로 지켜봤다.
순간 오드리의 공연을 보고 있던 무리 중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헤일리였다.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좀 민망해하면서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우스운 상황임에도 상대가 몹시 진지하여 앞에서 웃을 수 없을 때 짓는 표정이다. 헤일리도 자신이 웃으면 친구가 민망해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헤일리는 고작 다섯 살이었지만 이럴 때 보면 어른처럼 조숙하다. 한 명이 웃기 시작하면 사리분별을 못하는 다른 아이들은 덩달아 따라 웃을 게 뻔하다. 심술궂은 아이는 그것을 구실 삼아 오드리를 놀리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헤일리는 다른 아이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친구가 민망해하지 않고 끝까지 공연을 끝낼 수 있도록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여러 번 눈을 마주쳤다. 약속이나 한 듯 아무 소리 하지 않았고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느라 애를 썼다. 다행히 오드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도 웃지 않은 채로 몇 분 후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