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집 놀이터 한켠 일렬로 늘어서 있는 나무들이 어떤 나무인지 알게 된 것은 유월 이맘때쯤이다.
겨우내 오던 비가 그치고 낮이 길어지자 헐벗은 가지 위로 푸른 잎이 돋아났다. 잎이 꽤 무성해진 다음엔 작고 하얀 꽃이 포도송이처럼 달렸다. 그리고 꽃향이 진동을 했다. 달콤하고 화려한 향은 어딘지 익숙하다. 어디서 맡아봤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름 아닌 아카시아 향이었다. 처음부터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나무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본 아카시아는 대체로 아담했다. 이 나무들이 이토록 키가 크고 굵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십 년 동안 한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던 것일까? 어쩌면 한국과는 종자 자체가 다를 수도 있겠다. 나무의 몸집만큼 꽃이 달리는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하얀 꽃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는 마치 한겨울 눈이 쌓인 침엽수의 잎사귀처럼 아래로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한차례 비가 오자 꽃이 지기 시작했다. 꽃송이가 후드득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아침이면 테이블과 벤치 위로 밤새 떨어진 꽃잎이 수북하게 쌓였다. 한동안은 바깥 놀이를 나올 때마다 작은 빗자루를 들고 나와 꽃잎을 쓸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안 나는 벤치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꽃잎은 도시락 위로도 사정없이 떨어졌다. 음식 위에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밥 한술을 뜰 때마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한 번씩 바람이 불 때면 장관이 펼쳐진다. 꽃송이가 쏟아져 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낱장의 꽃잎이 사방팔방 날린다. 오늘은 마치 태풍이라도 올 듯이 강풍이 불었다. 바람이 나무를 뒤흔들자 잎사귀가 몸을 떨며 바스스 소리를 냈다. 후드득후드득하며 꽃이며 잎이며 죄다 떨어졌다. 뛰어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모두 나무 둥치 아래 일렬로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비가 온다!"
아이들은 일제히 외쳤다.
그렇다. 비가 오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웃는 자그맣고 오종종한 얼굴들 위로 꽃비가 내렸다.
나는 먹던 도시락의 뚜껑을 닫고 아이들 옆에 앉았다. 함께 꽃비를 맞았다. 꽃잎이 날릴 때마다 온갖 벌레들도 떨어졌다. 송충이가 어깨 위로 떨어졌을 때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우리는 오롯이 예쁜 것만 보기로 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꽃송이와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꽃잎만 바라봤다. 그리고 향긋한 아카시아 냄새를 킁킁대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