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캐나다 돌아온 지 2주가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여전히 시차 적응 중이란다. 오늘도 낮잠을 거의 세 시간이나 자고 일어난 거 있지. 깨기 직전에 꿈을 꿨는데 너네가 나왔어. 외출했다가 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너네 셋이 있더라. 사방이 어둑어둑한데 대문 앞 계단에 앉아서 맥주 마시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너네는 약간 취해있었어. 옛날에 우리 대학생 때처럼 말이야. 나를 보더니 이제야 오냐고 뭐라 뭐라 하더라. 왜 연락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었냐고 하니깐 기껏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리 말하냐고 서운하다고 성질내더라. 그리고 딱 잠에서 깼지. 꿈인걸 알아차린 뒤에도 너희한테 좀 미안한 거야. 기다려 줘서 고맙긴 한데 약간 귀찮기도 하고.
있잖아. 캐나다 돌아가기 전 날 너네가 집 앞으로 온다는 거 내가 오지 말랬잖아. 그게 생각나는 거야.
됐다고 하는데도 오겠다고 꽤 완강히 여러 번 말해서 좀 당황스러웠고 나는 또 끝끝내 오지 말라고 아주 냉정히 잘라 말했지. 짐 싸느라 바쁘다는 소리는 사실 핑계였어. 입장 바꿔 생각해봤는데 나라면 주말 저녁에 집에서 쉬고 싶지 잠깐 얼굴 보겠다고 친구의 집 앞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은 거야. 사는 곳이 아주 가까운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 다음엔 내 애정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져서 죄책감이 느껴졌달까. 너희가 베푸는 배려와 친절을 받기에 나는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떠나는 날 비가 와서 좀 우울했거든. 너네도 알다시피 나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잖니. 설상가상 비행기마저 몇 시간 연착된 거야. 공항에 머물 때면 이유불문하고 항상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한데 거기에 비도 오고 비행기도 연착되니 말 그대로 불행 쓰리콤보를 맞은 거지. 혼자 멀뚱히 앉아있었으면 어느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을지도 몰라. 비행기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너희가 카톡으로 계속 수다 떨어줘서 하나도 안 외로웠다. 슬픔에 잠길 틈이 없었어. 덕분에 마흔넘은 여자가 혼자 질질 짜는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지 않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단다. 얼마나 다행인지.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마땅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쑥스러워 입을 꾹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떠나왔다. 진심을 말로 전하기는 여전히 어렵구나. 글로나마 전해본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