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겟잇과 침대 시트와 이불커버를 벗겨 세탁을 했다. 건조기에서 막 꺼낸 침구에는 여전히 뜨듯한 온기가 남아있었고, 청결한 냄새가 났다.
깨끗이 갈아 끼운 침대 위에 기대앉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반쯤 열린 창 너머로 타닥타닥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중으로 젖은 낙엽과 흙냄새가 옅게 퍼졌다.
이불이 바스락대며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다. 처음엔 약간 서늘하다가 이내 체온으로 덮혀 따뜻해졌다.
나는 한동안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나를 제외한 세상이 정지하고, 오롯이 혼자가 된 기분이다. 한없이 편안하고, 그리고 약간은 불안해진다.
혼자라는 감각이 분명해지면, 곁에 아무도 없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내가 완전히 무방비상태에 놓였음을 깨닫는다. 이때 나는 삶에 대하여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그리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그 안에는 어쩐지 비장함마저 감돈다. 그리하여 내게 생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매번 가볍게 살자고 되뇌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의 나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고, 마음 깊숙이 꽉 붙잡고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그만 놓쳐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자꾸만 방전이 된다. 밀려들어오는 자극과 정보를 적절하게 걸러내는 정신적 필터가 내게는 태생적으로 없다.
나를 둘러싼 타인과 사물과 풍경을 흐릿하게 만든다. 초점의 방향을 온전히 내 안으로 향하게 한다. 시선을 거두고 귀를 막고,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둘러 혼자만의 세상에 머문다. 그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벽이 느껴진다고 했고, 누군가는 무정하다고도 했다.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건 내게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물론 여기에도 부작용은 따라온다. 내 존재가 너무도 또렷해지면, 근원적 불안을 가져오고 만다. 내 감정, 내 감각, 내 생각, 내 시간... 이런 것들이 선명해질수록 나는 또다시 삶을 제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지긋지긋하고도 버거운 책임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혼자일 때의 질감은 막 세탁을 끝낸 이불처럼 말끔하고 보송보송하다. 그러나 어떤 날의 고독은 사포처럼 거칠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시처럼 피부를 스친다. 혼자 있음은 이처럼 늘 두 얼굴을 번갈아 내밀고, 그 표정이 언제 달라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나는 자의적으로 매번 혼자 있기를 선택하지만, 고립과 고요의 경계는 무척 얇아서, 고요함은 불현듯 고립감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어떤 날은 혼자 있는 게 아무렇지 않다가도 어떤 날은 그렇지 않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아주 열심히, 반 강제적으로 스스로에게 주입하게 되는데, 그런 나를 인식할 때면 뭔가 좀 가엾고 생이 무척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혼자가 편한 건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혼자가 편하다고 하면서도 이게 과연 내가 선택한 평온인지, 아니면 익숙해져 버린 단절인지 명확히 판단 내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