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투>
언젠가 여름 방학 때 내 절친이 재미로 컴퓨터 점을 쳐서 프린트를 해 왔다.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성격이며 장래의 직업 등을 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모두가 크리스천이니 그런 것을 좋아 할리 없었지만 이제 신앙을 갖기 시작한 내 친구를 무안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그냥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한 사람씩 읽을 때마다 우리는 꽤 공감을 하며 킬킬댔다. 그런데 녀석의 것을 읽자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컴퓨터가 보는 녀석의 성격은 ‘질투의 화신’이었다. 우리 네 친구 모두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기에 여자끼리도 안 하려고 애쓰는 것이 질투 건만 어찌 그것이 녀석에게 떨어졌던지...... 다른 친구들보다 덩치도 크고 평소 유난히 점잖을 떠는 녀석과 반대의 이미지라 더욱 웃겼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녀석을 놀렸다.
“ㅋㅋㅋ. 야, 질투의 화신.”
“.......”
“기분 나쁘냐?”
“.......”
“야. 신경 꺼. 기계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런데 녀석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게 아니고 나 아까 진짜 깜짝 놀랐다.”
녀석은 그때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왜긴? 찔려서지. 난 진짜 질투 많거든.”
“네가? 야, 넌 사내자식이 그게 할 소리냐?”
“그러게. 너도 몰랐지? 그런데 살면서 보니까 많은 걸 어떻게.”
“쯧쯧. 기도해라 기도해. 어째 남자가 하필 그게 많냐. 나중에 의처증도 생긴다. 조심해.”
“겁나냐?”
“내가 왜?”
“그러니까 다른 놈들하고 단독회담 하지 마.”
단독회담이란 내가 일대 일로 남학생들과 대화하는 걸 말했다.
“다 내 친구들이거든.”
“친구라도 난 질투해.”
“참 자랑이다. 그 놈들 다 네 친구들이기도 하잖아.”
“그 놈들을 어떻게 믿냐. 넌 내가 OOO 하고 단독회담하면 좋겠냐?
“얼마든지.”
“어유 이걸 그냥.”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일 점심시간에 좀 늦게 나와라. 나 내일 OOO 하고 단독회담 있거든. 아주 중요한 거야”
“싫어. 나도 있을래.”
“단독 회담 이랬지?”
“허락 안 한다.”
“허락은 무슨. 이미 약속했어.”
“그럼 백 번 양보해서 회의 안건이나 알자.”
“비밀 안건이다. 보안이 생명인 안건이야.”
“니들끼리?”
“OOO도 나중에 합류할 거다.”
“나만 빼고?”
“뭐 이번엔 그래야겠지.”
녀석은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사실 녀석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생일 이벤트를 위해 머리를 맞대어하는데 녀석과 내가 떨어질 시간이 별로 없어서 녀석을 따돌리고 셋이 만나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얼마나 오래 할 건대?”
“내일 하루 종일.”
“뭐? 하루 종일?”
“응. 시내 나가야 돼.”
“니들끼리? 왜?”
“비밀이라니까. 너 때문에 내가 반역자의 길을 갈 수는 없지.”
“그럼 난 낼 하루 종일 혼자 있으라고? 니들은 시내 나가서 하루 종일 붙어 다니고?”
“붙어 다니긴. 바쁠 거야. 조사할 게 많거든. 살 것도 있을지 모르고.”
“그러니까 나 없이 조사하고 쇼핑하고...... 그렇다면 뻔 하구만.”
“유도 신문 하지 마. 나 얘들한테 죽는다.”
“너 죽일 애들 없거든. 그 반대라면 모르지.”
“암튼. 넌 혼자 잘 놀잖아.”
“잘 놀긴? 혼자 있기 싫은데.......”
녀석은 정말 싫은 얼굴이었다. 나도 아무리 녀석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거라지만 늘 함께 하던 녀석을 따돌리고 우리끼리 계획을 세우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녀석은 참으로 측은 해 보였다. 유독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녀석을 생각하면 차라리 녀석과 함께 녀석의 생일파티를 계획할까 하는 생각을 우리끼리 농담으로 할 정도였다. 그러나 녀석 없이 우리가 세웠던 그 수많은 계획들은 지각을 밥 먹듯 하는 한 친구의 지각으로 시작하여 예상치 못한 난관들로 계획의 반의반도 못 이루고 결국 나는 녀석의 빗발치는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나게 들어야 했다.
“일은 잘들 했고?”
“망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감히 나를 따돌려?”
“네 생일 계획 작전 세운 거거든.”
“당사자가 싫다는데 굳이 하더니. 차라리 나랑 그날 같이 나가서 놀았으면 고마워나 하겠다.”
“아주 고소해 죽는구만?”
“내 생일이고 뭐고 앞으론 다신 이런 거 하지 마. 내 쪽에서 사양하겠어.”
“야 그게 되냐? 얘들도 섭섭하지.”
“됐어. 몰라. 하지 마.”
“다음엔 잘하면 되지.”
“하지 마. 다음엔 화낸다.”
“아, 왜!”
“네 단독 회담. 솔직히 섭섭했어.”
“내가 뭐 했냐? 네 생일 의논만 했다니까?”
“그래도 하나도 안 고맙고 하루 종일 화가 나 죽겠드만.”
“화가 나?”
“그래. 화났다. 나도 시내 나가서 니들 이 잡듯 뒤지려다 간신히 참았다.”
“체면도 없냐? 그럼 그냥 혼자 잘 노는 게 진정한 복수지.”
“뭐 어때? 난 질투의 화신인데.”
“하. 그놈의 컴퓨터 점이 웬수다. 아 그 소리 좀 그만해! 아주 신물이 난다.”
“조심해라 OO. 난 질투의 화신이니까 나 건드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퍽!”
녀석의 등짝에다 일격을 가했다.
“사내놈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기는......”
‘하-. 내가 한 때 이 놈의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존심 때문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데 이게 어디가 고장이 났나.......?’
지금 생각하면 고맙지만 그 당시에는 마치 대학교 1학년 때 덜컥 결혼하고 아줌마 돼서 엠티도 못 가는 기분이었 달까?
어떨 때는 녀석이 나의 질투심을 유발해 보려고 하기도 했다.
“내가 관상 좀 보는 거 알지?”
“개꼴, 고양이꼴 그런 거 보는 것도 관상 보는 거냐.”
“암튼. 그런데 내가 잘 보니까 OOO(내 절친)이 관상이 괜찮더라.”
“짜식. 그런 건 예쁘다고 하는 거지.”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관상이 좋다는 거지.”
“관심 있구나?”
“관상 좋은 사람하고 있으면 기분도 좋지.”
“그럼 어떻게, 내가 좀 다리를 놔줘?”
녀석이 매우 흥미로운 듯 물었다.
“어떻게?”
“우선 절대 넌 절대 그 아이에게 ‘관상’이라는 말은 하지 말고 음~ 어떻게 해야 말을 걸지? 아. 내가 뭘 알아야지 돕지.”
“퍽!”
이번엔 녀석이 내 뒤통수를 쳤다.
“아! 왜 때려?”
“야, 인마. 돕긴 뭘 도와!”
“도와도 맞냐?”
“맞아야지!”
나를 한 대 쥐어박더니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 왜.”
“야. 너 바보냐?”
“아, 또 왜!”
“넌 질투도 할 줄 모르냐?”
“모른다.”
“어떻게 모르냐?”
“성경에 질투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그게 그런 뜻이냐? 어휴. 성경에 이럴 땐 질투 하란 말씀이 있어야 돼! 그래야 이 멍청이가! 잠깐. 아니지. 야, OO. 성경에 어디서 질투하지 말랬지?”
“고린도 전서 13장.”
“고린도 전서 13장은 무슨 장이지?”
“사랑장.”
“그렇지! 넌 질투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면 돼!”
“그러게.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잖아 항상 내가.”
“누구를?”
“모든 형제와 자매를.”
“아니! 그거 말고! 차라리 질투를 해라!”
“주님 명령을 따르지 못하게 하면 절교다.”
“아이고 내가 미쳐......”
사실 그때는 당황해서 질투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올 것이 왔구나. 이제 녀석을 떠나보내야 하는구나.’했다. 당황을 내색하지 못하는 것이 내 재주고 보면 그리 자랑할 재주가 못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바로 나도 모르게 아주 편안한 미소가 아주 잠깐 튀어나오는 거다. 귀신같은 녀석은 그 순간을 포착하고는 기뻐했다.
“너 알어? 너도 아주 가끔 진짜로 웃는다~”
속이 들킨 나는 정색을 한다.
“별 웃기는 소리! 나야 맨날 너무 웃어서 탈이지. 애들이 다 나보고 별 것 아닌데 웃는다고 한심해하는 거 몰라?”
“아니, 그 웃음 말고 네 진짜 웃음~진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경계심 없이 픽 새는 미소 같은 거. 나 지금까지 몇 번 봤는데 보기 좋드만. 좀 자주 해 줄 순 없겠냐?”
“시끄러! 하여튼 별나요, 별나. 무에다 의미 부여하는 천재 에요 천재!”
둘러 대긴 했지만 가슴이 서늘했다.
‘어, 내가 왜 그랬지? 저 놈은 또 그걸 어떻게 구분했지? 저 무서운 놈.’
녀석은 매일 나를 보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무너뜨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여자라고 매일 헤어질 무렵 한탄을 했다. 질투의 화신은 그렇게 날마다 속을 활활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