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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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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n 27. 2023

Episode 8

리사 01

생장에서 출발하여 삼일정도 걷고 난 후, 도착하게 된 팜플로나라는 도시는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던 도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여서 그런지 딱히 어디를 찾아가지 않아도 볼만한 것들이 곳곳에 많이 있었다. 팜플로나에 도착해서 전날 미리 예약해 놓은 ’ 알로하 호스텔’를 찾아갔다. 체크인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도착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호스텔 매니저가 짐을 맡아줄 테니 한두 시간 있다 오라 해서, 리셉션에 짐을 맡겨 놓고 숙소 근처에 있던 한 카페를 찾아갔다. 

 카페에서 하몽 샌드위치와 맥주 한잔을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처음 먹어본 하몽의 맛은 그간 들었던 것만큼 맛있진 않았다. 생긴 건 꼭 베이컨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먹어왔던 베이컨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짰는데, 샌드위치로 나온 빵이랑 같이 먹으니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맥주와 함께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난 뒤, 맥주 한잔을 더 주문하고 근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며칠 걸으며 머물고 지나왔던 마을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도시였다. 핸드폰으로 팜플로나라는 도시에 대해서 찾아보니, 이곳은 스페인 나바라 주의 주도인 곳이었다. 이곳은 마을보다 도시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도시 건물들이 하나같이 특색 있었고, 서로 다른 건물들 하나하나가 조화를 이뤄 이곳만의 멋을 담아내고 있었다. 

 트레킹화가 이곳 현지 길과는 맞지 않아서인지 며칠 걷다 보니 발바닥 상태도 영 아니었고, 앞으로의 기간 동안 이 무게의 배낭을 계속 메고 걷기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길을 걷는 과정에 있어 재정비가 필요했다. 순례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네이버 카페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 보니, 큰 도시의 우체국에서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로 미리 짐을 부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짐을 부치기 위해 이곳에서 하루정도 시간을 더 보내기로 결정했다. 배도 채우고 맥주도 세잔정도 마시니 얼른 침대에 눕고 싶었다. 어느덧 체크인 시간도 다 돼서 숙소에 들어가 짐을 대충 풀어놓고 뜨거운 물에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나서 그대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이른 저녁에 잠이 들어서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다른 날들과는 다르게 바로 일어나 준비할 필요가 없어, 오랜만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다 보니 순간적으로 내 방 침대 위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짐을 부치러 우체국에 가기 위해, 카메라와 안 입는 옷들을 가지고 다니던 디팩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보니 비용이 대략 40유로 정도였는데, 적은 비용은 아니었지만, 길을 걷는 과정에 있어 재정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짐을 부치고 우체국을 나온 뒤, 작가 ‘헤밍웨이’가 즐겨갔다던 ‘Ibruna’라는 카페에서 하몽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어디를 가볼까 찾아봤다. 개인적으로 축구에 관심이 많아서 스페인축구리그인 라리가도 종종 챙겨보는 편이었다. 팜플로나는 오사수나라는 1부 리그 프로팀이 있는 도시였다. 내가 머무는 동안 경기일정이 있는지 찾아보니 홈에서 열리는 경기는 없어 보러 갈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사수나 홈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엘 사다르’에 가보기로 했다.

 축구장을 가는 길에 있던 약국에 들러 바셀린과 감기약, 연고를 사고 나서 조금 더 걷다 보니 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있는 날이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썰렁했다. 경기장 주변을 천천히 걷다 보니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있었다. 한국에서도 수원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종종 축구를 보러 다니는 편이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할 때에도 축구 경기장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축구팬으로서 유럽의 축구장들은 너무 부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모습에 연고지 축구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는 게 굉장히 부러웠다. 팜플로나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오사수나라는 클럽도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럽샵에 들러 다양한 굿즈들과 유니폼을 구경하고 난 후,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오사수나 머플러를 하나 구입했다. 자주색과 남색의 팀 컬러가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그렇게 도시 곳곳을 걸어 다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챙겨 먹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찍 잠이 들었다.

 이틀 가량을 온전히 쉬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작 이틀 쉰 거뿐인데 물집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불편함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푸엔테라이나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이곳에서 대략 25km 정도 되는 곳이었다. 걷기 시작한 지 2시간 정도 지나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릴 때 길을 걸으면 1-2시간 동안은 굉장히 운치도 있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게 너무나 낭만적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너무나 고단한 시간이 계속된다. 트레킹용 우의를 입어도 비가 많이 내리면 큰 소용이 없어지기도 하고, 고어텍스 신발은 젖진 않지만 바지가 젖다 보니 신발 안으로 물이 타고 들어와 고어텍스가 전혀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배로 힘들다. 반쯤 넘게 걸었을 때 비가 그쳐 큰 나무밑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뒤에서 걸어오던 여러 순례자들이 지나쳐갔다. 

 당을 채우기 위해 초콜릿하나를 먹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옆에서 쉬던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어릴 때는 몰랐던 일인데, 몸이 힘들 때 초콜릿하나를 먹으면 금세 에너지가 다시 생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당이 떨어졌다는 말인가 보다 싶었다. 그렇게 당을 채우고 나서 굉장히 높은 언덕을 걸어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거기엔 앉아서 쉴 수 있게끔 벤치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 거친 숨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길을 걸어오다 인사를 나눴던 친구 하나가 말을 걸었다.


“안녕. 어때? 괜찮아?”

“응. 비가 와서 조금 힘들긴 하지만, 아주 괜찮아!”

“맞아. 오늘 비가 와서 힘들 날이긴 했지. 난 리사야.”

“반가워. 리사! 난 순호야. 한국에서 왔어. 넌?”

“난 베를린에서 왔어.”


마침 3-4년 전에 베를린에서 두 달 정도 지냈던 적이 있어서인지 베를린에서 왔다는 말이 그냥 반가웠다. 


“오! 베를린! 나 베를린 좋아해. 전에 두 달 정도 지낸 적 있는데, 너무 좋았었어.”

“그래? 두 달 동안 여행한 거야?”

“여행까진 아니고, 베를린에서 지내보고 싶어서 두 달 정도 머물렀었어!”


그렇게 리사와 오늘은 어디까지 가는지, 앞으로 얼마나 길을 걸을 예정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땀이 식어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리사. 난 이제 다시 출발해야겠어. 얼른 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싶어.”

“그래! 알겠어. 나 사진 한 장만 찍어 줄 수 있어?”

“좋지!”


 리사와 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 푸엔테라이나를 향해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서로의 걸음걸이 속도가 달라서인지 우린 금세 서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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