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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자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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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순호 Jun 27. 2023

Episode 7

크리스티나 02

아주 이른 아침에 일어나 조심조심 짐을 챙겨 방문을 닫고 나와 부엌에서 전날 사두었던 빵과 주스를 간단히 챙겨 먹고, 출발하려 벽에 걸려있던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이었다. 크리스티나를 포함한 숙소에 머물던 친구들은 모두 자고 있어서 인사도 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나의 까미노 첫 발걸음을 뗐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순례길을 걸으며 그날만큼 힘든 날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그날은 걷는 내내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약간의 보슬비가 내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우비가 젖을 만큼 많이 내리는 때도 있었다. 하루의 여정 중간쯤에 있는 피레네산맥을 지날 때에는 작년과 올 겨우내 왔던 많은 비와 강풍으로 많은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산길을 막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안 좋은 날씨 탓에 산속의 토사물들이 쏟아져 길이 굉장히 험해진 탓에 한 발짝 한 발짝 조심하며 걸었다. 한 가지 날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당연히 약수란 것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고, 걷는 도중 지나치게 되는 작은 마을의 가게들에서 손쉽게 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출발지를 떠나온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가지고 있던 1리터 정도의 물은 이미 다 마신 상태였고, 걷는 도중 간간이 볼 수 있었던  우물에는 '정제되어 있지 않은 물!', '마실 시 복통을 유발할 수 있음!'이라는 식수 주의 표시가 새빨갛게 적혀 있어 함부로 그 물을 마시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겨울 시즌이라서인지 거치게 되는 작은 마을들의 마트들은 모두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여서, 떠나기 전날 마트에서 샀던 만다린 8개 정도만이 내가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인지 목이 마를 때마다 간간이 까먹는 만다린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맛있었고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렇게 10시간 정도 걸었을 무렵 '론세스바예스'라는 그날의 목적지를 앞에 두고 마지막 구릉에 도착했다. 그곳엔 아주 작은 성당이 있었고 그 주변은 푸른 언덕과 바람만이 있었다. 뻥 뚫린 풍경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건 감동의 눈물이라기보단 정말 힘들어서 흘린 눈물이었다.

 작은 성당 앞 돌로 된 난간에 잠시 앉아 마지막 만다린 하나를 까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론세스바예스라는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목적지였던 론세스바예스에 녹초가 된 채로 도착한 나는 문을 연 가게로 들어가 맥주 한 캔을 황급히 집어 들어 계산을 하고, 성당 앞 난간에 배낭을 내던지고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한껏 시원히 트림을 한번 하고 나니 ‘집에 가고 싶다’란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신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고 나서 내 결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남은 맥주를 다시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렇게 지쳐 쓰러져 가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고개를 돌린 순간 난 너무나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냅다 바닥에 던지며 소리쳤다.


“크리스티나!”

“순호야 고생했어. 그런데 이거 네 책 맞지?”


아줌마의 손엔 작은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그 책을 내밀며 물었고, 난 그 책이 어제 읽다 잠들었던 책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네! 제 책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어요? 이거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응, 이게 네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어.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할 거 같아서 시간 맞춰 왔어.”

"......"

"아마도 아침에 짐 싸다가 흘렸던 거 같아."

"그런가 봐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근데 오늘 아침에 깊이 잠든 거 같아서 인사도 못하고 나왔어요. 죄송해요."


 크리스티나는 이틀 본 내게 고작 책 한 권을 돌려주기 위해 시간을 맞춰 차로 여기까지 왔다. 아마도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흘렀다. 분명한 건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져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날 밤 방안 침대에 누워 조금은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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