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지만 인턴으로 불리기 싫었던 6개월간의 기록
"나는 인턴이 아니고 정사원이야"
인턴생활 시작과 동시에 나는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미 내가 소속 된 팀에는 다른 종류의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온 친구들 (동기 1명 포함)이 5명이나 더 있었다. 다들 아직 대학 졸업전이었고 유일하게 나만 (짧게 나마) 사회생활을 경험한 터였다.
그들의 개인사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 이상으로 절실했다. 인턴생활이 끝나면 돌아갈 학교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집에 얹혀 사는 것도 싫었다.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서 한국에 들어가기전에 취업까지 완성시키고 가야만 했다.
나에게 허락된 일본 생활은 길어야 6개월. 이 기간동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어만큼은 내 손안에 넣어야 했다. 사실 대학교때 일본학(日本学)이라는 전공을 했지만 일본어보다는 일본 사회, 정치, 문화와 관련된 분야에 더욱 중점을 두는 커리큘럼이었고 군 제대 뒤 복학 후에는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전공 관련 수업은 최소한 이수에 그쳤다. 졸업전까지 일본어능력시험 N1이나 JPT점수는 있었지만 커뮤니케이션 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했었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경험도 물론 없었다.
실패했던 첫 회사에서도 한번은 일본 거래처의 담당자가 방문하여 사수와 함께 미팅에 참가한 일이 있었는데, 긴장도 긴장이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 들을 수도... 그렇다고 적절한 답변을 해 줄수도 없었다. (물론 그날 미팅 이후 사수에게 심각하게 깨졌다.)
인턴으로 소속 된 팀은 총10명 정도였는데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 장소만 일본이었지 한국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도 그 유일한 1명은 한국 어학연수 경험이 있는 또래의 일본인. 그와 어느정도 친분이 쌓여갈즈음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나랑 언어 교환 하지 않을래?"
그 친구도 일본에 돌아온 이후로 한국어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한국계 회사에 들어 왔다고 했다. 그는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했고, 나는 일본어로 그 친구는 한국어로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가지 더 했던 것이 있었는데 드라마 대사를 외우는 일이었다. 일본어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존댓말(경어)쓰임이 다양하고 또 어려운데, 교재만으로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교재에 나온 표현들은 틀리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구석이 있다. (저의 이름은 김 철수입니다. 와 같은 느낌) 그래서 사회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드라마를 선택했고 당시 유행하던 한자와나오키 (半沢直樹)라는 드라마였다. 은행원의 고군분투를 다룬 스토리였는데 다양한 형태의 경어 표현이 많이 등장했다. 나는 드라마 스크립트를 구해 전부 외웠고 회사에 있는 시간 외에는 항상 음성을 틀어놓았다. 잘때마저도.
이러한 노력과 회사에 걸려오는 전화들을 대응하면서 점점 일본어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어느사이인가 완벽히는 아니지만 일본어로 프리토킹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인턴이 아니라는 마음가짐을 갖는다고 해서 모두가 나를 그렇게 받아들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인턴이니까 이 이상은 몰라도 돼"
"이번주는 조금 여유 있는 때니까 틈틈히 취업 자리들 알아봐."
배려해주는 말들이었지만 나는 그 말들이 너무 싫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신분 계층인 것인가? 나는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 받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에 이따금 빠지기는 했지만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어떻게든 이 6개월을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정도로 끝내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형민씨, 홈페이지 만들 줄 아네?"
나는 어려서부터 홈페이지 만들기가 취미였다. 나모웹에디터, 페인트샵 같은 툴을 다루는 것이 재밌었고 취미로 서태지 등 좋아하는 가수의 팬사이트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이력서에도 기재했었는데 회사 상사분이 이 부분을 기억하고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이번에 바이어 매칭상담회가 있는데 행사 안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봐 줄 수 있어? 그동안 행사자료를 FAX나 메일로만 보냈었거든"
나는 무조건 가능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의 업무는 주로 온라인 상에 회사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관련 있는 업체의 상품정보를 웹 페이지상에 게시하는 일이 되었다. 이것이 훗날 나의 직업의 원천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취미로만 남겨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술자리였다. 팀의 업무 성격상, 일본 바이어 뿐만 아니라 한국 업체들과의 술자리도 잦은 편이었다. 다행이 이때까지만 해도 술 마시는 걸 좋아 했고 여느 또래들보다 잘 마실 자신이 있었다. (전 직장 면접때도 이 부분을 어필했는데 영업직군이기에 암묵적으로 스펙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더욱이 여성멤버가 많았던 팀이였기에 술은 대체로 남자의 몫이었는데, 수발과 함께 술 상대가 되는 멀티플레이는 팀 상사분들에게 은연중에 평가가 되고 있었던 것 같다.
퇴근길이나 주말에도 당시 거주하던 쉐어하우스 근처에 사시던 상사분들의 술자리 요청에도 (아마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 했었다. 그렇게 별탈 없이 인턴생활을 시작한지 5개월째에 접어 들었을 무렵, 팀의 수장이었던 부장님께서 넌지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사에 형민씨를 정직원으로 고용해 달라고 제안 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올 것이 왔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