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끝이 아니다. 시작을 위한 준비 운동 일 뿐.
"형민아 우리 다시 같이 일하자!"
출장으로 서울에서 머무르고 있던 어느날. 반년전에 퇴사를 했던 부장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행이 친분이 있던 분으로 부터 도움을 받아 조직을 키우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필요하다며 제안을 해왔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내가 일본에 있을 수 있도록 힘을 써준 분이었고 이 분이 이끄는 팀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회사 대졸 신입사원 1호는 형민씨군요."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위치한 본사. 1990년대 초반,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국제전화카드 판매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한국상품을 전문으로 도소매하는 상사로 변모한 회사이다. 계열사 및 파트타임 포함하면 100여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 이 회사에서 대졸신입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사무 관련 직원은 대략 20명 이내로 대다수가 경력직이었기 때문이다.
20대의 젊은 기운과 인턴때 보여줬던 패기를 좋게 봐주셨던 사장님은 나를 이쁘게 여겨 주셨다. 내가 더 성장하면 팀도 맡기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게 많을 것 같다며 작게라도 비전을 제시해주시고는 했다. 나 또한 이 회사에서의 일이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인턴때 받던 생활비의 3배 수준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생활면도 나아지고 있었다. (입사 즈음에 쉐어하우스에서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이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회사 경영방침 변경으로 팀이 양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팀의 명칭은 '무역팀'. 이름은 무역(貿易)였지만 실물 무역보다는 일본 시장 진출 컨설팅을 메인으로 하고 있었다. 주로 일본 시장조사나 바이어 매칭상담회를 한국 정부기관에 수주를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이른바 민간 코트라(KOTRA)인 셈이다.
회사에서는 무역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회사에서 취급할 수 있는 한국상품을 수입해 오는 일을 맡아주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당시 별도의 오피스가 있던 무역팀에서 일부를 본사 근무로 전환할 것을 팀장님에게 요청(지시)했다. 그러나 당시 팀장이었던 부장님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컨설팅 사업이 커지고 있던 시기기도 했고 간신히 팀웍이 맞아가고 있는데 여기서 인원이 유출 될 경우 외부 경쟁력 약화 뿐만 아니라 팀 비즈니스 플랜 달성에도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부장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팀은 이원화가 되었다. 그 중 나는 팀의 차장님, 그리고 나에게 일본어 도움을 주었던 일본인 스텝과 함께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로는 컨설팅 업무 일부와 수입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에서 김을 수입해 올 수 있는 쿼터를 할당 받는 일이었다. 물론 이 일은 잘 마무리 되어 김을 실제로 수입해 왔고 회사내에서 나의 주가도 상승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본사의 방침으로 팀이 나뉜 이후, 결국 부장님은 퇴사라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내 분위기를 담당하던 대리님도 퇴사를 했고 이 두 분은 한국행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나는 급격하게 모티베이션이 떨어졌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워서 받아 들였던 정사원 제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옆에 남아 있는 것은 당시 업무상 마찰이 많았던 차장님. (물론 퇴사 이후로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 점점 즐거움보다는 회사와 상사에 대한 불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개월 뒤. 영업을 위해 한국 출장길에 올랐다. 오랜만에 들어가기도 하고 안부인사도 드릴겸 퇴사한 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밝은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전 식사자리를 갖게 되었고 거기서 그는 나에게 스카웃 제의를 해왔다.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사직서를 작성했다. 사실 바로 그와 일을 시작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이 '불만'으로 가득찬 머리에 희망을 넣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나의 퇴직 의사를 보고 받은 사장님은 얼굴이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언제나 함께 하던 미소도 그날만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죄인마냥 고개를 푹 쑥이고 있었다.
"나는 형민씨를 최연소 부장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는 말 외에 마땅히 떠오르는 답변이 없었다. 두번째 사직서였지만 첫번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퇴사하는게 원래 이렇게 힘든건가?
"기왕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은거 앞으로도 열심히 해봐. 도움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사장님은 긴 말을 하지 않으셨다. 나에게 악수를 청하시고는 외부 일정으로 금새 자리를 뜨셨다. 이렇게 나의 일본에서의 첫 번째이자 인생 두 번째 퇴사가 확정되었다. 인턴까지 포함하면 약 2년정도의 기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일본 생활을 시작하였고 사회인 김형민으로서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시작 될 모든 모험의 출발선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