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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Jun 22. 2022

유토피아 같은 직장은 없다.

최고의 멤버도 최고의 동업자가 될 수 없다.

주식회사는 사원인 주주의 출자와 권리·의무의 단위인 주식으로 나누어진 일정한 자본을 가지고 모든 주주는 그 주식의 인수가액을 한도로 하는 출자의무를 부담한다.


2015년 12월. 주식회사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주식회사 최고코리아(가칭) 설립 멤버에 참여했다. 이전 회사에서나 다른 거래처를 상대 할 때도 그렇게 높아 보이던 '이사(理事)'라는 타이틀을 나 또한 갖게 된 것이다.


전 직장 OB멤버 4명이 주축이 되어 한국 2명, 일본 2명으로 나누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당연히 최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 그리고 회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침이 않았다.


열정과 회의감 사이


전 직장을 퇴사 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직장 부장님이 일본에 설립해 두었던 최고 주식회사에 적을 두었다. 그리고 얼마뒤 해외온라인 쇼핑몰 운영업무를 정부기관으로 부터 수주 받았고 본격적으로 일본 대형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楽天)에 한국상품을 올리고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략 200곳의 국내 중소기업과 그들의 상품 10~20개 사이를 라쿠텐에 등록하여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을 요청하는 식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일에 몰입했다. 아직 20대기도 했지만, 이 일이 너무나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함께 일하고 싶었던 멤버들과 다시 한솥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굳이 시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에는 큰 난관이 있었다. 모든 일을 나 혼자 했다는 것이다. 4명의 멤버가 함께 일을 분담하면 좋았겠지만 저마다 매출이 될 만한 사업을 따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위탁 업무였다보니 보고서 작성 업무 또한 있었고 정량적 성과가 부족하다보니 정성적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데도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다. 대략 1년은 그럭저럭 (오기로) 버텼지만 점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지만 내가 등기임원으로 참여한 주식회사 최고코리아에도 신입직원이 들어 왔고 파트너사가 속속 생겨났고 사업 2년차부터는 그들과 일정 부분 업무분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난관이 있었는데 바로 이들에게는 '일본어'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전년도보다 담당기업수도 줄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체크 업무가 추가로 생겨 버렸다.


"당신네들 고소할거야!"


당시 하루에 수십통씩 기업 담당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우리 제품 언제 올라가나요? 잘 팔리고 있나요? 와 같은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매번 업무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고 곧 팔려 나가기 시작할 거라는 식으로 둘러대기에 바빴다. (사실, 그렇게 되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다.) 그러다 한 업체에서 폭발한 것이었다. 


"우리한테 내일은 없어요. 당장 오늘 매출 없으면 내일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계약하기 전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처럼 말하더니 이게 뭡니까?"


다행이 그를 잘 설득하고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 지었지만 일에 대한 회의감이 큰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정말 잘 하고 있는게 맞을까...?


사장과 직원


당시 나를 제외한 다른 OB 멤버들은 중국 유통망 진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중국 칭따오에 한국상품 전문 매장을 여는 프로젝트였다. 정부지원 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유통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자는 취지였다. 


다행이 첫 시작은 순조로웠다. 한인 경제인 네트워크 등을 통해 이어진 현지 파트너사와 협업하여 칭따오 시내 한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 상품도 매장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소싱할 수 있었다. 매장이 있던 층에는 백종원 식당도 두개나 입주해 있었던 터라 한국에 관심 많은 소비자를 불러 모으기 좋은 입지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생각할 무렵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바로 주한미군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심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긴 문제였고 손님들의 발길도 줄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매출도 지지부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백화점으로부터 퇴점 지시가 떨어졌다. 국영 기업 소재 백화점이었고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핵심 사업이 퇴출 수순을 밟게 되면서 회사는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방식대로 정부지원 사업 의존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맡고 있던 사업도 3년차에 접어 들었다. 


"사장님. 이 사업은 올해까지만으로 접기로 해요. 대신 저도 박 선배를 도와서 영업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그해 가을, 한국에 있던 2명의 멤버가 일본에 출장을 왔고 내년도 사업 방향에 대한 이사회가 있었다. 이제는 부장님이 아닌 사장님인 대표이사님께 그동안의 고충과 일 진행에 대한 문제점, 그리고 대안책들을 전달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되겠어. 사업수주금액이 너무나 큰 사업이야."


한국에 설립한 주식회사 최고코리아는 사실상 사장님 개인이 거의 100% 비율로 출자한 회사였다. 나와 그 외 멤버들은 회계장부 열람할 수 있을 정도(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의 권한만을 가진 소수주주였다. 일본법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발언권은 큰 의미가 없었고 그의 말이 절대적이었다.


함께 일하면 최고의 시너지를 낼 것 같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이곳에서도 결국 사장과 직원이 되는 순간, 다른 곳과 다르지 않다는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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