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은 다른 암과 비교했을 때 어린나이에 발병할 확률이 높은 편이다. 머리를 밀고 힘든 항암치료를 받은 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처럼 학업을 중단한 십대, 이십대 환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우리는 더 멋진 인생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4학년이 되자 나는 학업과 병행하여 취업준비를 했다. 여름방학에는 공모전을 준비해서 참가하고, 틈틈이 자격증 공부도 했다. 토익, 토익 스피킹, 기타 자격증 등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다. 수업이 끝난 뒤에 도서관에 남아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힘들어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다행히 군대 가기 전에 받은 처참한 학점을 재수강을 통해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열 곳의 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면 그중에 두 세 곳이 서류가 붙을 정도였다. 업무 경험이 없는 것이 흠일까 생각하여 인턴 전형에도 지원서를 넣었지만 탈락했다. 그러던 중 청년인턴 제도를 알게 되었다.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면 정부가 급여를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내가 지원한 곳은 강남에 있는 작은 헤드헌팅 회사였다.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여서 출퇴근이 쉽지 않았지만, 직장생활을 먼저 경험한다 생각하고 성실히 다녔다. 클라이언트 기업의 의뢰를 받아 이직을 원하는 지원자를 연결해주는 일을 했는데, 일도 재밌었고 선임 직원들도 좋은 사람들이어서 즐겁게 일했다.
단기 인턴을 하면서도 취업활동을 계속 했다. 1년 넘게 이력서를 사기업, 공기업, 외국계 회사 등 가리지 않고, 백오십 군데 정도 넣었던 것 같다. 서류전형에 붙어서 면접을 보러 갔지만 번번하게 떨어졌다. 정말 가고 싶은 회사는 면접 볼 때 긴장이 되어 떨리기도 했고, 다른 지원자들도 똑같이 가고 싶은 좋은 회사여서 고스펙의 지원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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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접에서는 백혈병을 치료하고 재활했던 2년의 기간이 내 발목을 잡았다. ‘공백기가 긴데 그 시간 동안 뭐했어요?‘ 라는 질문이 종종 날아왔다. 취업한 친구들이나 인사부서에 있는 선배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유능한 지원자가 넘치는 면접장에서 굳이 병력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 나는 백혈병이라는 높은 산을 넘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지만 회사의 입장은 달랐다. 혹시라도 몸이 다시 안 좋아지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업무에 공백이 생긴다면, 회사에 큰 손해일 것이다. 당시에 체력이나 혈액 수치 등 여러모로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왔고, 이식한 지 3년이 넘어서 공백기에 대한 설명을 대충 둘러댔다. 그럼에도 면접관에겐 공백기가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면접에서 열 번 넘게 떨어지니 소위 말해서 멘탈이 붕괴되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취업 컨설팅 학원도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처럼 절망감을 느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2년 동안 공백기가 없었더라면 결과가 좋았을까. 아팠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서울에 그렇게 많고 많은 회사 중에 나를 뽑는 회사가 하나도 없다니, 세상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백혈병도 이겨냈는데 취업도 잘 할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도 점점 흐려졌다. 인생은 원래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