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오래오래.
오늘은 때아닌 감기에 걸렸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픈 목구멍에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한여름의 나라로 날아오면서 설마 감기에 걸릴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쌩쌩하던 근육들이 축 쳐져 욱신욱신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챙겨 온 타이레놀이 있어 얼른 한알을 목 뒤로 넘기고 오늘의 서핑 강습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남편과 고민을 나눴다.
내일과 내일모레는 파도가 너무 센 날이라 안 그래도 서핑을 못하기에, 오늘까지 쉰다면 4일을 못하는 것인데. 그 이유로 버티다 버티다 결국 안 되겠다는 연락을 보낸 뒤 아쉬운 마음이 커지는 걸 겨우 막고 있었다. 한 번에 너무 무리한 건지 체력 관리에 안일했다는 생각과 함께,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을 대하는 내 태도에 대하여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본래 하고 싶은 건 기필코 하고야 마는, 또 하나에 몰입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쏟아붓는 기질이 있다. 그렇게 해서 힘들기는 해도 성에 찰 때까지는 밀어붙이고 나서야 끝을 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굉장히 고집스럽고 불같은 사람일 것 같지만 이건 그저 나와의 관계에서만 보여내는 습성일 뿐이다. 말하자면 혼자만의 전쟁터, 정신과 육체의 싸움에서 늘 정신이 승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의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지금껏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움직여야 잘 살고 있다 느끼며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서 불안을 씻고 위안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당연스레 ‘무리’라는 것은 하나의 직업병 같은 것으로 나의 삶을 말해주는 대명사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 시간의 흐름대로 자라온 나는 지금이라고 다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긴 여행에서 하루를 꼭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적기 시작했고, 서핑을 배운다면 최선을 다해 배워야 하는 마음은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즈음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 대해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리 바쁘게 굴고 괴롭힌다 한들 군말 없이 잘만 따라오던 이전의 몸뚱아리가 이제는 조금씩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내 열정과 욕심의 기운들 사이에서 작은 체력이 나설 틈이 점점 줄어든다. 엄마가 늘 건강을 잘 챙기라는 말을 자주 해주신 덕에 나는 이 신호를 가벼이 흘려보내지 않고 관심을 갖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타고난 욕심이 크고 억지로라도 열정을 태워야 하는 사람이라면 에너지 분배에 알맞은 단계를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금씩 오래 할 수 있는 자세로. 육체와 정신의 싸움이 아닌 화합의 자세로 나아가기로 했다.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 없어도 나를 다그치지 않고 받아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불안의 마음을 기대려 하지 않고 일정 부분은 안고 가는 것이다. 계획표의 일들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