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경_김화진 장편소설_문학동네_북클럽문학동네
북클럽 문학동네의 ‘이달 책’이어서 읽게 되었다. 잘 알지 못하는 작가님의 책이어서, 오히려 관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익숙함을 좇아 늘 읽던 작가님의 책만 읽다가, 이렇게 새로이 만나게 되는 소설은 낯설면서도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 한편으로 설레면서도 재미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재미있다.
참 좋은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제목도 ‘동경’. 동경하는 어떤 마음에 대한 책인지, 동경하는 어떤 인물에 대한 책인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동경’의 사전적 의미도 찾아보았다.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하는 마음. 제목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1. 삼각형 같은 관계, 세 명의 친구
무엇보다 그들은, 셋이어서 좋았다. 길이 좁아서 가끔 삼각형으로 걸어야 할 때, 뒤처진 자리에 있어도 불안하지 않았고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번갈아 뒤처졌다. 뒤처진 사람은 앞서 두 사람의 등을 보고 먼저 남겨진 발자국을 보며 기쁘게, 딴생각 없이 걸었다. 세 사람 모두 우리가 셋이라는 사실을 더없이 잘 알고 있어서, 가끔 둘이고 자주 둘이고 영원히 혼자이지만 우리는 셋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관계가 된 게 좋았다. 언제나 곁눈질을 하던 관계에서 드디어 셋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 것이 좋았고 셋이서 오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었음을 알고 있는 상태가 좋았다.(172쪽)
소설은 세 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계절과 인물의 성격을 연결하여 세 인물의 관계와 상황, 마음의 변화 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계절이 달라지는 동안 세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도 보여 주고 있다. 삼각형과 같은 관계, 아름과 민아와 해든.
성향상 나는 셋보다 둘이 편했다. 그래서 늘 단짝으로만 다녔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아도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한 명뿐이었고, 그게 좋았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도 싫었으며, 함께 다니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다행히 싸움이 없이 늘 잘 지냈으며, 그런 관계가 나는 편하고 좋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는 딸이 그런 관계가 되어 주었다. 마음의 안정을 주는 관계.
지금 직장에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 출근하는 것이 감사하다,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 네 명의 좋은 사람. 세 명은 함께 근무하고, 한 명은 아니어서 셋일 경우가 많고, 책의 구절처럼 ‘가끔 둘이고 자주 둘이고 영원히 혼자이지만 우리는 셋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관계’ 일 때도 많다. 함께 여행도 갔으며, 매달 한 번씩은 만나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사이. 어떤 일에 대하여 비슷하게 공감하면서도 때론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내가 가지지 못한 영혼의 자유로움을 가진 이도 있고, 합리적 의사 결정과 명확한 위로를 건네는 이도 있다. 늘 자기 객관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이도 있다.
그런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사람의 영역이 아닌 어떤 일들. 그래서 감사하다. 그러면서도 생각해 본다. 결국 영원히 혼자인 삶이고, 그런 혼자의 삶을 잘 영위할 수 있어야 둘의 관계도, 셋의 관계도, 더 많은 관계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2. 잘하는 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러면 안 되지 이러면 안 되지 스스로를 타박하면서도 태연하게 늘 짓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붓을 쥐고 인형을 들고 최대한 닮게 최대한 디테일하게 그리는 일에 집중하려 했다. 그럼에도 예전만큼 애정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들켰다는 생각이 언제나 뒤따랐고, 그전만큼 보람도 에너지도 없었으나 그래도 붓을 쥐었을 때는 여전히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늘 괴로웠다. 무슨 도둑놈 심보인지. 늘 책임감으로 나를 굴려왔는데, 언제나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는데, 슬슬 어시스턴트에게 넘기는 부분이 늘어가는 스스로를 보며 조금씩 혐오감이 쌓여갔다. 이 일을 잘하는 게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구나,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거친 날에 베인 것처럼 쓰라렸다. 스스로도 실망할 만한 짓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실망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조여왔다. 다른 동료보다 특히, 선배가 내 책임감 없는 행동과 붕 뜬 마음을 다 알아차리고 있을 거라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심했다. (11쪽)
여름, 망설이는 사람, 아름. 아름의 이야기이다. 아름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인형 리페인팅 수업을 통해 민아를 만나게 되고 민아가 만든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아름은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름은 점점 일이 재미없어진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쓰라림, 좋아하는 민아가 실망할까 봐 느끼는 두려움. 그런 마음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이 일을 잘하는 게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구나’ 이런 마음을 느끼는 순간. 정말 일이 하기 싫어질 것 같다. 아름은 지금 그런 순간을 지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나의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순간 성취를 느낄까? 어떤 순간 일을 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낄까? 나는 지금 나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을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질문을 던져본다.
아름이 선배 민아와 함께 일하면서 좋았던 어떤 순간을 지나, 더 이상이 그 일이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다가왔을 때 아름의 마음은 온통 자괴감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 가운데에는 책임감을 넘어선,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
나는 늘 일을 잘하고 싶었다. 야무지고 딱 부러진다는 그런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수업을 공개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보여줄 수 있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내가 예를 들어 말하는 것들을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을 발견할 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휩싸이곤 했다.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때도 종종 있다. 내가 맞다고 여겼던 어떤 일들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나마저 그 가치에 대하여 흔들릴 때, 그때도 여전히 내가 계속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직은, 여전히, 감사하게도 나는 일이 좋다. 일을 잘하고 싶은 이면에는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참 감사한 일이다.
3. 정리
아름과 민아와 해든은 서로에게 교집합 같은 사이인 것 같다. 서로의 비슷함과 다름을 공유하고 인정하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냥 살아가는 것. 그런 관계. 그러면서 서로의 어떤 면을 부러워하는 것. 건강한 관계이다. 늘 둘이 편하다고 여겼던 나에게 셋의 관계는 또 다른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의 아름과 민아와 해든이 참 좋아졌다. 인물의 서사가 살아있는 책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현재 자신의 친구관계에 대하여 떠올려 봅시다. 보통 몇 명이서 함께 어울리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는 것이 나의 삶에 있어 중요한지, 일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