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프롤로그
너무 긴장하지 말고 면접 잘 봅시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면접이었다. 면접 날짜 통보를 받고 흰 블라우스에 검정 정장을 샀다. 새벽에 일어나 거울 앞에서 1시간 동안 씨름하며 머리를 올렸다.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잔뜩 긴장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널찍한 회의실에 앉아 있던 세 명의 면접관은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잔뜩 긴장해 있던 마음이 풀어진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면접이 시작됨과 지원서를 훑어 내려가는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다 다시금 얼어붙어 버렸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적혀 있네,
가 본 나라 중 어디가 제일 열악했어요?
첫 질문이었다. 당황했다. 여행 갔던 나라를 떠올릴 때 ‘기억에 남는’, ‘다시 가고 싶은’도 아닌 ‘열악한’이라는 수식어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GDP 순위로 한국보다 아래인 나라는 많았지만 열악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어린 지원자에게 극적인 경험을 듣기를 기대하던 세 명의 면접관 중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오지도 아니고 그냥 여행?
그거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건데, 이게 본인을 잘 나타내는 건가요?"
"이런 거 말고 살면서 큰 어려움을 극복했다든지 무언가 도전적으로 성취한 것 없어요?"
"여행 경험이 우리 회사에 어떻게 도움이 되지?"
입사 지원서에 적힌 ‘여행’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압박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평범했다. 성실히 학교를 다니며 적당히 잘 관리된 학점과 무엇이라도 경험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대외활동,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으로 채워진 대학생활이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 취업이란 기로에 서 있던 나는 ‘인턴’이란 또 하나의 스펙을 추가하기 위해 면접장에 와 있었다.
‘살면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경험을 서술하라’는 질문에 순수히 써 내려간 여행 경험이 복병이 될 줄 몰랐다. 여행을 하는 동안 예기치 못했던 수많은 위기 상황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성장했다고 느꼈기에 나는 나의 여행 경험이 무엇보다도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면접자들을 만나 봤던 임원들은 아주 열악한 오지가 아니라면 왜 이런 여행 경험담을 써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나 보다.
면접장을 나오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대학교 3학년에게 어떤 도전적이고 어려웠던 경험이 있어야 만족스러운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어떤 경험을 더 해야 그 따갑던 질문들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잠깐의 고민 끝에 이 ‘취업’이란 현실의 벽 앞에서 정량화할 수 없는 여행자의 감성과 낭만은 그만 내려놓겠노라 결론을 내렸다. 그 후 몇 년 간 먼저 여행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소심한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여행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장소와 시간 속에서 만나
서로의 이야깃거리를 꺼내 보여주던
그 반짝이던 순간들을 잊을 수 없었다.
정해져 있는 것만 같은 인생의 흐름 속에
충실히 몸을 담느라 놓치고 있었던
내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벅차오르던 희열을 잊지 못했다.
지금 다시,
꺼내지 않았던 순간들을 열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