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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탠저린 Aug 14. 2022

열한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 일주일

#14  모셀베이, 남아프리카공화국




7  열한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 일주일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일주일 동안 남쪽 해안을 따라가는 가든 루트 여행의 첫날이었다. 일주일을 여행하는 짐이라기에는 단출하기 짝이 없는 작은 쇼퍼백 하나를 메고 내려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호스텔 스텝 Ivor와 작별의 대화를 나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프리카에서 묵었던 첫 숙소이자 기대치 않은 환대를 받았던 곳이라 아쉬움에 마음이 무거웠다. 사람과의 헤어짐이든 장소를 떠나는 일이든 이별이란 것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약속했던 7시가 되자 숙소 앞에 하얀색 작은 밴이 도착했다. 곧이어 운전석에서 짙은 카키색의 카라티와 베이지색의 카고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내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안을 보니 얼핏 보기에도 세계 이곳저곳에서 왔을 법한 각기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로   있는 작은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 낯설었지만,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들이 건네는 반가움의 인사와 여행의 설렘으로 한껏 들뜬 분위기는  모든 생경함을 단순에 지워버릴 정도로 포근했다. 그들과 좋은 친구가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가든 루트 (Garden Route)

남아공 남쪽의 N2 도로를 따라 케이프타운부터 포트엘리자베스까지를 잇는 이 경로를 '가든 루트'라고 부른다. 길을 따라 여행하는 동안 거쳐가는 도시들의 풍경이 무척 아름다워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여행 성향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기간을 잡기도 한다.





여행의 멤버는 나를 포함해 총 열두 명이었다. 애정이 넘쳐 내내 붙어있던 미국 모델 커플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혼자 여행 중인 사람들이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왔다는 Amy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프리카 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바로 직전 나라에서 동향 사람인 Megan과 우연히 만나 지금까지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녀들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비슷해서 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자매 또는 아주 친한 친구일 것이라 생각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텔레마케터 Ramona는 영국으로 이직을 앞두고 그 사이의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고 싶어 아프리카를 오게 되었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이었던 그녀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친화력이 좋았는데, 여행 중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고 승부욕이 있어 산에 오를 때면 항상 첫 번째로 도착했고 번지점프와 서핑, 스카이다이빙 같은 액티비티를 할 때면 가장 먼저 나서고는 했다.


그리고 나의 애증의 도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Valen은 아주 작고 귀여운 몸집과는 상반되는 열정적인 성격으로 우리들의 행동대장이었다. 친해짐에 있어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만, 나를 포함해 우리 다섯 명은 한 살씩 차이가 났다.


신기하게도 이 작은 그룹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녀들을 Tall Julia와 Little Julia라고 불렀다. 독일에서 온 큰 키의 Julia는 과학 선생님이었는데 태어나서 쭉 고향에서만 지내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새로운 도전을 해 보기로 결심하고 그 첫 번째로 아프리카 여행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진중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무척 잘 들어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그녀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일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녀에게 달콤한 간식을 나눠주고는 했다. 그녀는 이런 사소한 호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다음번에 다른 간식들을 사서 내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며 우리는 이 시간을 'Energy time'이라고 불렀는데 간식보다도 그녀와 교감하는 데에서 힘을 많이 얻었다.


반면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작은 Julia는 굉장히 쾌활하고 즉흥적인 성격이었는데 우리의 소개를 듣는 동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유일하게 자신의 직업을 맞춰보라고 제시했다. 영업사원, 부동산 중개업자, 운동선수, 화가 등 각종 상상의 답변이 나왔지만 그 누구도 맞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직업은 다름 아닌 가수였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아주 잠깐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내아이 같은 지금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우아한 목소리에 경탄이 절로 나왔다.


남아공 바로 옆 나라 모잠비크에서 온 Inaiate는 컴퓨터 엔지니어였다. 그는 수줍음이 많아 말수가 적고 어떤 질문에도 늘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여행 후반부쯤부터 우리에게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은은하게 재밌어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숫기 없는 그가 먼저 장난을 칠 정도로 우리는 인지할 틈도 없이 어느새 친해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예상 밖의 멤버라고 할 수 있는, 60살이 넘는 나이로 이 여행에 참여한 벨기에에서 온 Nino 할아버지가 있다. 무려 35년의 결혼 생활을 합의 하에 끝내고 제2의 삶을 시작하러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그는 여유가 넘쳤고 나이 차가 무색할 만큼 우리와도 줄곧 잘 어울렸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아주 다채롭고 풍부해서 여행 중간중간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어떤 소설책보다도 흥미로웠다. 그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기가 어렵다며 'Travel lady'라고 불러 주었는데, 나는 그 호칭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남아공에서 자라고 콜롬비아에서 공부했다는 우리의 리더 Handre는 미묘하게 헐크 역의 브루스 배너를 닮아 인상이 좋고 듬직했다. 가이드라기보다는 리더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던 그는 친구처럼 우리와 어울리며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Handre와 Inaiate를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가 처음이었다. 여행의 동기와 목적, 고향과 가족, 직업과 취미 같은 가벼운 주제만 던져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잠깐의 정적이 흐를 때면 창밖으로 보이는 때 묻지 않은 거룩한 자연을 눈에 담았고,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와 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는 했다. 무엇을 하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모인 편안함이었다.


이 만남이 있기 전까지는 서로의 존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던 열두 명의 사람들이 2월의 마지막 날 아프리카 대륙의 한 곳에 모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크루가 되어 일주일을 함께 여행하게 된 것이다. 흥분과 긴장, 기대와 설렘이 섞인 아프리카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감정이었다.




Megan, Amy, Ramona, Handre, Valen, Julia(Tall), Nino 그리고 미국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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