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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Aug 29. 2023

나의 월급은 150만 원

n잡러, 회사 밖의 이야기


현재 내게 달에 꼬박 들어오는 비용은 150만 원. 그것도 언제까지 들어올지 장담할 수 없다. 10일에 서점에서 100만 원, 30일에 프리랜서 에디터 비용 50만 원이 들어온다. 서점은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 잘릴 일이 없을 테지만 프리랜서 에디터는 언제든 일감이 끊겼다는 통보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서점 스태프, 프리랜서 에디터, 그리고 독립출판 작가까지 현재 세 개의 직업적 정체성으로 나를 표현한다. 현재 나의 상태가 꽤 마음에 든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볼 때도 간단하게(실제론 간단하진 않지만) n잡러라고 이야기한다. 아직 불안정하지만 드디어 프리랜서와 n잡러의 꿈을 동시에 이룬(?) 것이다.


문제는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이 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독립출판 작가는 그저 하나의 나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됐을 뿐 수입과로 연결되는 일은 아직 소원해보인다. 줄어든 수입으로 부모님 얼굴을 보기 힘든 날이 많다. (그래서 요즘 돈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 경제 분야 도서는 내게 너무 어려워 돈과 관련된 말랑한 에세이부터 읽어보는 중이다)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작고 소중한 내 수입 덕택에 나는 지출 비용을 많이(?) 줄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줄인 소비는 ‘고정비’다. 한 번 커진 씀씀이 때문에 매달 이것저것 나가는 비용은 여전히 많다(이것도 줄여야 하는데…) 하지만 고정비를 줄임으로 작고 소중한 수입으로 살아갈 수 있다.


고정비에는 일단 ‘통신비’가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시작되면서 왠지 모르지만 통신비가 크게 올랐다. 기본이 2-3만 원 선이었다면 5만 원으로 훌쩍 오른 것이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았고 핸드폰에 그다지 애착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 사실이 불편했다. 스마트폰을 10년을 사용하고 나서야 통신비를 5만 원 아래로 만들었다. ‘알뜰 요금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내 한 달 통신비는 1만 원이 안된다. 매달 나는 이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요금제를 바꾸기 전에는 7-8만 원을 내고 있었다.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물은다면, 없다. 인터넷은 와이파이를 사용하고 전화는 자주 하지 않고(통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2-3만 원대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평소대로 똑같이 쓰는데 고정비만 6만 원이 줄은 셈이다.


그리고 줄인 것은 학원비다. 나는 배움에 미쳐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공부하고, 과거에 언어를 포함해 그림, 글쓰기, 운동, 심리 상담(이것도 나를 더 알아야 한다는 목적이 컸다)까지 늘 항상 배울 것들로 넘쳐 났다. 이십 대 동안 교육비에 투자한 돈만 모아도 세계여행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를 완전히 끊었다. 끊는 중이다. 자생적으로 하기 위한 그 구조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영어는 영어 패턴 암기나 원서 읽기 모임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운영 중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내가 제공하니 뿌듯하다. 그렇게 필사모임과 독서모임을 진행했고 다음 달에 100일 드로잉 모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운동과 요리 인증 모임도 해볼 생각이다. 이것들은 학원에 갔다 받치는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내 일상에 꾸준한 루틴을 만들고 잡아준다는 데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아직 드라마틱하게 줄이지 못한 것이 있다. 교통비와 식비다. 서점까지는 버스와 자전거로 20분, 도보로 40분이 걸린다. 비가 오거나 해가 너무 뜨거운 날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봄과 가을을 제외하곤 교통비가 똑같이 나가는 실정이다. 일부러 서점 근처에 원룸을 구한 의미가 없는 게 살짝 아쉽다.


또 나인투 식스 일하지 않다 보니 평일이나 주말을 막론하고 이런저런 외부 약속이 많이 생긴다. 그러면 거의 매일 혹은 하루에 두 번 교통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 생겨 오히려 교통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 올해 일반 버스 성인 요금이 1,500원으로 올랐는데 대책이 시급하다.


식비는 내게 고정비라기보다 변동비다. 아직도 정해진 예산을 세우고 그에 맞게 실행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집에서 요리해 먹는 습관을 기르는 중이다. 서점 바로 옆 건물에 무척 저렴한 채소과일 시장이 있어 퇴근 후에 항상 들려 요리 재료를 구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채소는 진짜 싸다. 땀 흘려 짓는 농산물이 이렇게 싸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척 저렴하다. 알차게 재료를 담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좋다. 무언가 생산적이고 건강한 일을 벌인다는 감각 때문이다. 아직 요리 초보라 식비를 줄이긴커녕 이것저것 기본 재료를 구비해 두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난 최근에 새로운 일감을 하나 더 맡게 됐다. 그건 바로 대안학교 강의다. 올해 상반기에 대안교육 교사 입문 수업을 들었는데(이 역시 어마어마한 돈을 교육비로 투자했다) 이게 바로 일이 될지는 몰랐다. 현장 경험이 부족해 봉사활동하면서 차근차근 아이들에 대해 알아가 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언어 강사를 뽑는 좋은 기회가 있어 신청해 지원했더니 붙어버렸다. 사실 요즘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부딪혀서 얻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두렵지만 기대도 된다. 나에게 실망할 수도 있고 혹은 운이 좋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이 마저도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강사일까지 포함하면 내가 앞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182만 원. 직장 다니던 때와 조금씩 근접해가고 있다. 드디어 진정한 n잡러의 반열에 오른 듯한 기분도 든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과 스트레스가 가득하지만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해 나간다는 감각으로 이겨내보려 한다. 단순히 여러 일을 해서 만족하는 자신이 아닌 진정한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각 직업에 임하고 싶다. 그 어느 하나 사이드가 아니라 본캐라는 정신으로. 그것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며 마땅한 도리이다.


회사 밖에서 일한다는 것. 게다가 이렇게 적은 수입으로 월세까지 내며 살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모든 걸 전체적으로 구상해서 추진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씩 늘려나가다 보니 이런 결과를 얻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었고 과정 중에 불안한 날도 많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때때로 무너지는 날일 때면 그랬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정확히 알진 못하더라도 지금 난, 조금씩 그 모습을 그려나가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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