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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끄기와 변기 청소

부부 된 이유

by 헬렌


저희가 신학교 가족 기숙사에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주방의 조리대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항상 조리 라이트를 켜놓고 일을 합니다.



어느 날 주방에서 일을 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깐 일손을 놓고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주방 라이트가 꺼져 있는 게 아닙니까!

‘엇!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라이트를 켰는데... ’

그러고 보니 저는 이 집에서 1년 반을 살며 주방에 들어가면 항상 조리대 위의 라이트 스위치를 켜기는 했는데 한 번도 그 스위치를 끈 것은 기억에 없습니다.

그래서 순간 주방에 센서가 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저절로 라이트가 꺼지는...

그래서 위아래로 센서가 부착되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오래된 기숙사 아파트에 그런 품위 있는 센서가 있다는 것이 좀...

그러면 저절로 켜지기도 해야 되는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저는 방에 있는 남편에게 달려가

“여보, 우리 주방에 센서가 있나요?” 했더니 나를 힐끔 봅니다.

“아니~, 이상해요, 내가 분명히 스위치를 켰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니까 꺼져 있어요.” 하니까

나를 보고 빙긋 웃습니다

“ 아~! 당신이 끈 거예요?”

.

.

.

“앗! 그러면 1년 반 동안... 당신이... ”



제 남편은 이런 사람입니다.

저희 집 물 단속, 불 단속, 문단속은 남편과 큰딸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잔소리 한번 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저에게 주방 스위치 끄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 미안함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저는 “나에게 끄라고 말하죠.” 했더니

“스위치 킨 사람이 끄라는 법 있어, 그래서 내가 당신 옆에 있잖아”

아... 저는 감동했습니다.



스위치를 끄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크게 새겨졌는지

스위치 잘 끄겠다고 남편과 자신에게 다짐해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심한다고 되겠습니까?

하루아침에 형성된 습관이 아니니...

하지만 그 후에 주방을 나올 때 얼마나 많이 스위치를 내리고 나왔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던 짓을...



역시 교육은 감동으로 되는가 봅니다.

물론 남편이 나를 교육하기 위해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존경스럽습니다.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것이 마땅히 자신의 몫이라 여깁니다.

아~~!! 이 글을 쓰다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남편은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것이 마땅히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데

나는 남편의 부족한 것, 내 맘에 안 드는 것을 고쳐보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얼마나 많이 남편을 괴롭게 했는지...

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연약한 부분, 부족한 부분 때문에 내가 남편 옆에 있다는 것을...



이것을 깨닫고 난 후, 생각 난 일이 있습니다.

저는 변기를 닦을 때마다 짜증을 냈습니다.

변기 안은 스프레이를 한 후 솔로 닦고 물 한번 내리면 되는데,

변기 밖으로 흘러내린 누리 틱틱한 줄기... 남편의 소변이 변기 밖으로 흘러내린 자국입니다.

이 자국은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로 문질러야 닦깁니다.

정말, 짜증을 안 낼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변기 닦고 있는 내 모습에 화도 납니다.

내가 이 집 가정부인가? 변기 닦을 려고 저 남자랑 결혼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처음에는 점잖게 교양 있게 얘기했죠?

“여보 소변볼 때, 소변이 변기 밖으로 안 튀게 조심해서 보세요.”

또는

“밖으로 튀면 휴지로 한번 닦고 나오세요.”라고 말입니다.

남편도 한두 번은 닦고 나왔겠죠. 하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습관이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이 변기를 닦을 때마다 잔소리하고, 때로는 짜증 내고, 때로는 화도 내고...

이렇게 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내 옆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 감당하며 내 옆에 있는 이유를 말합니다.



‘아!~ 그렇군요.’


하나님이 이 변기 닦으라고 남편 옆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남편 옆에 있는 이유를...

제가 남편의 아내 된 이유를...

남편의 부족한 부분 채우라고...

변기 닦으라고!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변기 닦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아니 감사했습니다.

이 일 감당하라고 하나님이 남편과 부부 되게 하셨으니까요.

제가 그의 아내 된 이유이니까요.

이것이 부부 된 이유입니다.

이렇게 하나 되라고.



저는 다짐해 봅니다.

“여보, 당신의 부족한 부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고치려고 잔소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하려고 조정하지 않고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까지...

당신의 이런 모습 때문에 내가 당신의 아내 된 이유이니까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사랑해요!!”



언제부턴가 변기 밖이 깨끗합니다.

웬일인가 했더니

남편이 습관을 바꿔답니다.

앉아서 소변을 본답니다.



“여보! 괜찮아요. 저 변기 닦을 때 행복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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