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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Jul 01. 2024

나는 행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저도 그냥 태어난 김에 살려고요.

 요즘 좋아하는 방송인이 두 명 있다. 첫 번째는 기안84. 멀쩡히 뜯는 입구가 있는 물티슈의 옆부분을 쫙 찢어서 쓰고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슥슥 닦아 주머니에 넣질 않나, 시상식 때 선물 받은 꽃다발을 소주병에 꽂는데 꽃줄기에서 즙이 나올 정도로 빡빡하게 담지 않나. 악의 없이 순수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상상도 못 한 포인트에서 저항 없이 웃음이 터진다.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스스로 머리를 직접 자르고, 어제 먹다 남은 족발 넣고 끓인 라면을 맛있게 먹는다. 본업 외 다른 것들은 철저하게 신경 쓰지 않는 그가 마치 도시에 사는 야생인 같다. 그런 그의 별칭은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 굳이 정성껏 살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냥 태어났으니까 한 번 살아보는 느낌인 그를 두고 하는 말이 그의 옷처럼 꼭 들어맞는다.


 두 번째는 장도연이다. 순발력도 대단하고 재치도 있고, 내 기준 요즘 방송인 중에 제일 웃기다. 몸매 좋고 미인인데도 망가지는 개그를 서슴지 않는다. 타인을 배려하고 겸손하기까지. 안 좋아할 수가 없다. 한 번은 그런 장도연이 기안84가 진행하는 유튜브채널에 출연한 적이 있다. 에피소드 말미 행복이 뭐냐고 묻는 기안의 질문에 장도연은 이렇게 답한다.'나는 굳이 행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를 자주 생각했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당연히 즐겁고 기쁜 일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야만 의미가 있다 믿었다. 내가 중학교 때 '시크릿'이라는 책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책에서 주장하는 시크릿이라는 개념의 요지는 개인이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돕는다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수많은 옵션을 그저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가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의심을 품기도 전에 책에 적힌 무수히 많은 사례자의 간증글에 현혹되었다. 누군가 종이박스에 원하는 집이나 자동차 사진을 넣어놓고 몇 십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꺼내보면 그게 다 귀신같이 제 것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탐욕스러운 중학생은 거의 세뇌하듯 온갖 갖고 싶은 것으로 머릿속을 채웠다. 나도 행복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나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어떤 행복한 시점에 나는 베버리힐즈의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미쳤다.


 철 모르던 학생 시절이 끝나고도 나는 자주 욕망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얻게 될 것, 성취할 것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그리라고 하면 통상 미래의 어떤 시점에 원하는 무언가를 획득하고, 현재의 고통이 제거된 자신을 상상한다. 확실한 건 그 행복의 전제가 일단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을 생각하자 당장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을 쫓으면 역설적으로 행복에서 멀어진다. 베버리힐즈라니. 나는 지금 경기도에 사는데. 일단 장소부터 틀려먹은 것이다.


 행복에 집착하던 일은 또 있다. 가끔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는 어떤 행복한 일이 있었나를 손가락으로 세어보곤 했던 것이다. 맛있는 쉐이크를 먹은 일, 누군가 웃긴 말을 했을 때 웃었던 일. 하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허들에도 불구하고 통과하는 에피소드는 보통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가 힘들다. 행복한 일을 생각하려고 하는 일이, 역설적으로 내 인생에 얼마나 행복한 일이 없는지,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만 깨닫게 했다.


 이름만 바꿔서 매년 출간되는 자기 계발서처럼, 살아있는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하고 축복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집요하게 듣는다. 삶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찾고 모든 순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수한 순간에 정작 행복과는 동떨어진 상태에 놓여 있다. 직장에서 억울하게 짤리고 병에 걸리고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다. 굳이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아이는 그릇에 든 음식을 쏟아버리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생떼를 써댄다.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끝도 없이 공허하다. 이런 일상들이 그냥 우리의 인생이다. 단순히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퉁치는 건 내가 무덤까지 갔다 살아 나오지 않은 한 불가능할 것 같다. 행복할려고 사는 것인데, 대부분 삶의 순간들은 사실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까지 와보니 내 인생이 큰 의미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좋은가.




 법륜스님은 인생의 의미를 굳이 찾지 말라고 했다. 인생은 어떤 살아있는 상태이지,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 끝은 자살밖에 없다. 답을 찾지 못하니까.


사람이 삶을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사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냥 사는 것이죠. 사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유를 찾지 못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사는 데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막 찾아봐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본래부터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살든 죽든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입니다. 또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일부러 죽일 필요도 없고, 죽을 때 안 죽겠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어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어요.

 나비가 태어나고, 지렁이가 태어날 때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냥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났으니 사는 거예요. 또 뙤약볕에 지렁이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먹을 것이 없으면 죽고, 누가 밟으면 죽는 것이죠. 언제까지 사느냐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내일 죽든, 모레 죽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말이, 할 수 있는 한 전력을 다해 불행의 불구덩이로 뛰어들겠단 뜻은 아니다. 그저 굳이 행복에 질척거리지 않겠단 뜻이다. '왜 그렇게까지 행복해야 돼? 행복하지 마.'라고 내 마음에게 말했더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훨씬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졌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강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은 행복해야 의미가 있어서, 행복한 순간을 손가락으로 꼽아보고,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내 삶이 행복한지 안 한지를 저울질하고, 행복한 미래를 이루지 못해 실망한다면. 그래서 이 순간이 한없이 의미 없고 불안해진다면, 그렇다면 행복은 더 이상 나에게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좀 우울해도 괜찮은 것이다. 허무하고 권태로워도 괜찮은 것이다. 혹시 고통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이 행복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고, 기쁘고 마음이 충만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울해도 괜찮다는 것, 허무한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면 된다. 굳이 쓸모없는 생각들에 마음이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 행복하지 않아서, 불편하고 불행해서 자살해야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행복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뭘 행복까지 하고 있나. 그저 태어난 김에 그냥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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