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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물건을 버리지 못할까

by 김성훈


처음 결혼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듯 단칸 사글셋방, 이불장 하나와 책상 하나 단출한 세간 살이들이었다.

이사를 가려면 짐이라고 해봐야 용달차 한 대면 충분했던 소박한 시작이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부족했지만, 오히려 집 안은 넉넉하게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월이 나를 조금씩 안락하게 만들어 줄수록 우리 집도 점점 물건으로 채워져 갔었다.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이제는 어디를 둘러봐도, 빈 공간이 별로 없이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서울의 집이든, 양평의 세컨드 하우스든 여러 가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이토록 많은 물건 속에서 살아가는 건 어쩌면 내 성격 탓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우표, 영화카드, 책 등… 무엇이든 간직했고, 버리지 않았다.

그 습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추억이 깃든 물건을 쉽게 놓을 수 없기에, 집 안은 많은 물거들로 가득하다.


은퇴 후, 보고 싶은 영화 DVD를 천 편 넘게 모았고 양평집에는 프로젝터와 음향 시스템까지 갖춰 작은 극장을 방불케한다.

중국 주재 시절에는 찻잔과 차, 그림을 모았고, 지금은 중국 차 가게를 열 수 있을 만큼 모아뒀다. 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곳곳을 출장등을 다니며 코냑, 위스키, 바이주, 와인 등 각국의 술을 300병 넘게 모았다.

그러나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도 말이다.

“애주가는 술을 못 모은다. 술을 모으려면 술을 안 마셔야 한다.” 지인들이 하는 이 말에, 나는 공감을 한다.


서울과 양평의 세컨드하우스 집에는 영화 DVD, 신발과 옷, 책, 양주 와인 찻잔 각 지역의 차 들 소품까지 많이 보관되고 쌓여 있다.

한때는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이젠 정말 정리해야지” 다짐도 해봤지만, 현실은 여전히 물건들에 둘러싸인 맥시멀 라이프다.

아내 또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우리 집은 이젠 손댈 곳이 없을 만큼 가득하다.



5년 전 이사할 때, 장모님은 웃으며 한마디 하셨다. “사위는 책이 너무 많고, 딸은 옷이 너무 많구나.” 지금도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바뀌었다.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걸 안다.

그동안 애써 모은 것들이지만, 이제는 그 물건들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내주고 가는 것이 맞다.


황학동 시장에서 한 상인이 해준 말이 기억난다. “한 가정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수십 년 간 모은 양주와 소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요.”

나에겐 소중하고 귀한 모두사연이 있는 물건이지만, 가족과 자식들에겐 그저 ‘아버지의 물건’ 일뿐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가 많다.

추억, 불안감, 손실 회피, 그리고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까지…

이 모든 것이 쌓이고 얽혀 우리 집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채워왔다.


이제는 내려놓으려 한다.

쌓아온 물건만큼, 그 안의 이야기와 기억은 내 마음속에 간직하며, 실제의 공간은 비워가고자 한다.


정리는 단지 ‘버리는 일’이 아니다. 더 소중한 것을 남기기 위한 선택이며,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쓰임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물건을 줄이고, 공간을 정리하며 미니멀 라이프를 향해 실천해 나아가려 한다.

나의 삶이, 나의 물건들이

좋은 곳에서, 좋은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쓰이길 바라며, 친환경 기부와 재사용은 단순한 자원 절약을 넘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실천일 것이다. 일상 속 작은 물건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큰 가치가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집 안의 물건을 정리하고, 나눔과 기부를 통해 지속 가능한 맥시멀 라이프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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