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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이두씨 Jul 06. 2022

#15. 떠나는 길: 발인과 화장

2022년 5월 9일


햇살이 가득한 그날의 날씨는 참 좋았다.


장례식장에서 맞는 3일 차 역시 새벽녘에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한 장례식장을 이리저리 기웃댔다. 지하에서 탈출해 병원 1층으로 나가보니, 아침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듯했다. 하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다니지 않는 병원 앞 거리가, 내 마음 같이 쓸쓸해 보였다.


아침 7시쯤 되니 가족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제와 같이 화장실에 들러 간단히 세안을 하고, 다시 머리를 빗어 넘겼다. 나 스스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종의 예식과도 같았다.


장례 3일 차에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발인'(發靷)의 시간이 필요했다. '발인'은 시신을 안치실에서부터 최종적인 장지까지 모셔가는 전반의 행위를 의미한다. 장례식장에서는 통상 병원 안치실에서부터 장례 리무진까지의 '운구'를 마무리하면, 발인으로서의 책임은 다 하는 셈이었다.


...(중략)...


장례 리무진이 천천히 움직여 병원을 빠져나갔다. 햇살이 차창을 통해 내부로 환하게 들어왔다. 날이 참 좋았다. 차창밖으로 우뚝 솟은 병원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병원을 물끄러미 보시며 말씀하셨다.


"여기를 이렇게 나갈 줄은 몰랐는데..."


작년 6월, 아버지의 병환을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지겹도록 방문했던 이곳 B병원. 항상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서 함께 바라보셨던 건물의 외관을, 이제는 장례 리무진을 타고 홀로 되어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심정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략)...


세평 남짓되는 가족 대기실은 고인이 화장을 진행하는 동안 신발을 벗고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었다. 가족 대기실 정면에는 커다란 유리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다. 그 커다란 유리창 위에는 20인치쯤 되는 모니터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로는 작은 제단이 놓여 있었다. 동생은 그 작은 제단에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올려놓았다. 우리 가족과 친척분들을 포함해 대략 10여 명의 인원이 그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서 모두 잠시간 서 있었다. 나는 그 대기실의 중앙에 가만히 서서 마음을 추슬렀다.


잠시 뒤, 유리창의 블라인드가 천천히 걷히자 방금 전 우리가 내려놓았던 아버지의 관이 유리 너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아버지의 관이 다시 나타나자 마치 오랜 시간 못 봤던 무언가를 본 것처럼 다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듯했다. 방금 전의 그 두 명의 직원분도 아버지의 관 옆에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여성분은 마이크를 들고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화장 전에 마지막으로 고인께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동. 묵념!!!"


여성분의 '묵념!!!'이라는 지휘가 객실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지휘에 따라 나는 고개를 숙였으나, 평안한 묵념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동안 수 없이 했던 말을 다시금 되뇌었다.


'아빠. 편히 쉬세요.'


잠시간의 묵념 뒤에 여성 직원은 마이크를 통해 다시 이야기했다.


"그럼 이제 화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여성분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유리창의 블라인드가 닫혔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답답함이 몰려왔던 그 순간, 유리창 위에 달려있던 모니터에서 마치 CCTV처럼 아버지의 관이 다시 나타났다. 남성 직원은 아버지의 관을 밀고 가더니 화로에 천천에 밀어 넣고 화로의 문을 닫았다. 우리 모두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숨죽여 그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대로 몇 초간 모니터는 닫혀있는 화로의 문을 찍어 보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출 것 같았던 그때, 갑자기 모니터가 파랗게 변하더니 빨간색 글씨가 들어왔다.


'화장 중'


연화장 대기실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아버지의 육신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화장을 택한 게 잘한 일일까?' 싶은 마음이 처음 들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또 눈물이 눈밖으로 밀고 올라왔다. 나뿐 아니라 그 대기실에 있던 모두가 다시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옆으로 가서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같이 그 슬픔을 공유했다. 나는 주변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동생과 아내를 어머니 주변으로 불러 모으고 이야기했다.


"잘 살자... 우리가 잘 살아야 돼."


...(중략)...


여전히 유골함은 따듯한 온기를 내게 보내왔다. 나는 그 따듯함에 대꾸하듯 벌게진 눈으로 조용히 말했다.


...


"아빠... 죄송해요. 이렇게 밖에 못 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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