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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라이프 Mar 26. 2023

비관적과 객관적은 다르다.(올바른 메타인지)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 불신, 확신)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이 공부도 잘하고 사업도 성공한다.' 이런 문구를 한 번쯤 봤을 법하다. 최근 몇 년간 '메타인지'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메타인지'라는 키워드는 트렌드가 되어 이를 주제로 많은 강연들이 생기고 도서가 출판된다. 안우경의『싱킹 101』이라는 책을 읽고 메타인지와 '확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메타인지는 자기 객관화 능력이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능력이다. 이런 객관화 능력으로 인지적 오류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과신의 부작용


예를 들어, 우리는 일이 생각하는 대로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지각을 하거나, 마감기한을 놓치는 경우 등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하면 예상치 못 한 일로 당황하거나 문제를 겪는다. 이것이 과신과 낙관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예기치 못 한 일은 말 그대로 예기치 못 한 일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든 예기치 못 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런 문제를 대비할 수 있다. D-day보다 하루를 앞당겨 마감하거나,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나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타인지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라는 것을 알고 지나친 낙관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줄 아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 -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자신의 낙관을 경계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자신의 낙관을 경계하면서 도리어 강한 비관으로 편향되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2. '메타인지'는 비관하고 불신하라는 것이 아니다.


메타인지를 잘못 이해하는 것은 '낙관'과 '과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비관'과 '불신'의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렇잖아.", "객관적으로 이렇잖아."라며 보편의 사례,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지만, 이 마저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입증하려는 확인 편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사례, 자신이 겪었던 가정 경험을 바탕으로 결혼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결혼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한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결혼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계하지 못한다. 


낙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발생하는 심리적 오류를 경계하면서 비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발생하는 심리적 오류는 경계하지 못 한다. 자신은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그 '객관적이여 보이는 생각'도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객관적인 것 같은 생각도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 나의 관념적인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 사실'이라 둔갑하여 나의 비관과 불신하는 생각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객관성을 지향하면서도 객관성은 오히려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최대한 회의적으로, 최대한 겸손하게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를 보는 만큼 해결도 볼 수 있고, 위기를 보는 만큼 기회도 볼 수 있어야 한다.



3. 현실을 정확히 아는 법 : 직접 해 보기


현실을 정확히 아는 법은 현실 세계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할 수 없겠다."라고 단념하는 것도 현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 지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은 직접 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못 믿으면서,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은 왜 믿는가?"


"난 내 수준을 알아.",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를 핑계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목표 수준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하는 것도 메타인지가 뛰어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 할 이유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의 객관성을 과신하는 또 다른 오류다. 직접 해보면 내 생각과는 다르게 더 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직접 경험 없이 내 머릿속으로 단정 하는 것이 오히려 과신이다. 불신을 과신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군대에서 볼 수 있다. "나 같은 약골은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동료들과 함께 뛰고, 교관들의 강압에 그냥 해봤더니 생각보다 쉽게 내 한계를 뚫어내기도 한다.


과거의 주관적 경험이 무조건 현재의 유사 사례를 설명해주진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을 과신해 "내가 경험해 보니 내 생각이 맞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런데 과거의 데이터로만 판단하면 실패경험이 많거나, 상처가 많은 경우는 위험에 벌벌 떨며 위축되기 마련이다. 막상 해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과 실제 현실이 다를 수 있다.



4. 때로는 과신이 낫다.


자신을 과신해 어떤 상황에 무모하게 뛰어든 사람은 바보일까? 반대로 자신을 정확히 파악해 어떤 상황에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 사람은 현명한 것일까? 아마 일반적으로는 나를 정확히 파악해 어떤 상황에 뛰어들지 않고 리스크를 안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 


무모함은 위험할 수 있다. 가령 자신을 과신해 사업에 준비 없이 뛰어들거나, 주식에 전 재산을 쏟아부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차라리 무모한 게 나을 때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다."


예를 들어, 격투기 선수들은 자신이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객관적 전력을 따지며 내가 지겠다고,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면 자신감을 잃고 기세가 꺾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위대한 챔피언이든, 무패의 파이터든 자신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며 그 순간에 몰입한다. 이런 무모한 용기가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그 기세를 동원삼아 경기력을 향상한다. 해야 할 것은 그저 자신을 믿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구현하는 것, 자신의 최상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이다. 재고 따지는 것보다 최고 몰입상태를 유지해 경기에 임하고 결과는 그 후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무모한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용기를 내서 접근한다고 생각해 보자. 객관적으로 외모도 상대방에 비해 못 생기거나, 경제력이 부족한 경우라도 무모하게 고백해서 사랑을 얻어 내는 사람이 있다. 객관적으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무모하게 강단에 올라가 떠는 목소리도 내뱉은 어설픈 한 마디가 오히려 역설적인 감동을 줄 수도 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이 누군가에게 공감과 감동을 줘서 사랑을 받기도 한다. 


메타인지가 유행하면서 생기는 또 다른 강박은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객관성을 지향할 순 있겠지만 객관적인 인간은 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적 인간이다. 인간은 감정적이다. 인간과 감정을 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심리적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필연적인 심리적 작동을 거부하고 로봇과 같은 합리성을 지향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감정을 잘 활용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이 나은 존재라는 것을 믿고,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무모함도 있어야 한다. 이런 대표적인 예가 자기 확신이다. 자신의 외재적인 조건이 비합리적이어도 내재적인 잠재력을 믿고 내디뎌 보는 것이다. 객관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타산적으로 자신은 할 수 없다고 낮은 확률에 베팅할 때, 누군가는 자신의 주관적 믿음을 가지고 한계를 뚫어내고 성과를 낸다. 지나치게 합리성을 따지며 재고 빼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그 나의 생각에도 내 주관적 감상과 감정이 반영된다. 


지나친 합리성은 오히려 스스로 한계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리스크는 존재한다. 하지만 리스크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합리적으로만 판단하면 무모해 보이는 그 한계를 뚫어내지 못한다. 인류를 한 걸음 더 진보하게 만든 것은 무모한 도전들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겠다고 생각이 무모해 보일 수 있다.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수치적으로 타산해 봐도 무모한 도전이 맞을 수 있다. 처참하게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도전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대학에 3번 떨어지고 취업에 30번 넘게 떨어졌다. 백종원은 빚이 17억이 있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인생 망했다.", "타산적으로 갚을 수 없다."라고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극복들을 뚫어낸 것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순간 순간의 올바른 선택들'을 그저 이행하는 것이었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낙관과 과신의 편향에 빠지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비관과 불신에 편향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믿고, 때로는 의심하고,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주저하면 되는 것이다. 이 일로 발생할 수 있는 진짜 영향력을 판단하고, 현명하게 판단하면 된다. 메타인지를 지나치게 추앙하며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야."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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