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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토마토 Oct 22. 2023

가수들은 다 청력장애가 있다?! 2

눈 뜨고 코 베이기

리허설을 할 때마다 인이어가 끊긴다는 가수들의 요청을 해결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음향팀 담당자는 인이어가 끊기는 이유를 알려주겠다 했고,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그분에게 조금은 기분이 상한 태도로 우리는 심드렁하게 듣던 찰나,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비밀을 듣고 말았다.


이유인즉, 가수들은 음악을 많이 듣고 (그것도 큰 소리로) 늘 시끄러운 공연 환경에 노출되고, 이어폰을 많이 끼기 때문에 특정 음역대 청력이 많이 상할 것이라는 변이었다. 그래서 인이어가 그 음역대에 들어가면 안 들리는 건데, 그걸 기계 탓을 하는 것이다. 고로 요약하자면, 가수들이 청력이 나쁘기 때문에 인이어가 잘 안 들리는 것을 기계 탓을 한다는 말이었다.



뭔가 대단한 비밀을 말해 줄 듯이 귓가에 다가와서는, "이모 나 사실은 요정이야"라고 말하는 조카가 생각났다. 지금 이 대화가 현실에서, 녹화 현장에서 이뤄지는 말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리허설 현장에서 음향을 담당한다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음향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것) 그런데 일부 동의는 한다. 분명 귀를 많이 쓰는 직업이니 청력 저하도 분명 있을 것이고, 일반인보다 귀가 예민한 만큼 빠른 손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귀가 문제였다면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고, 모든 방송 현장 혹은 공연 현장에서 느낄 것인데 왜 우리 프로그램에서만 인이어 접촉 불량을 문제 삼았을까. 기술적인 해결법은 찾지 않고 대안 없는 너스레를 떠는 전문가의 무책임함에, 담당 피디와 나는 우리가 직접 해결책을 찾기로 다짐했다. 갑자기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늘 네가 늘 하지는 않아도 할 줄 알아야 대접을 받는다고. 네가 모르면 남들이 하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하신 말이 이때 생각날 건 뭐람.



담당 피디는 온갖 인맥을 동원하고 연락 끊긴 동기 목록까지 뒤져서 현재 음악프로그램을 제작 중이거나 제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염치 불고하고 연락을 했다. 다행히 꽤 친분이 있는 동기가 잘 나가던 음악프로를 제작 중이라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원인을 알려달라 연락을 했고, 구세주 같은 그 피디는 구구절절 이야기를 듣더니, 혹시 무대 주변에 '인이어 컴바이너 (In-ear combiner / 인이어 증폭기)를 세팅하냐고 물었다. 인이어 컴바이너가 없으면 신호가 끊겨서 무대에서 인이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 당장 음향팀에 연락해 녹화 때 인이어 컴바이너를 설치하냐 물으니 그런 기계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겼지. 우리가 일 년 가까이 고생했던 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고, 다음 녹화 때 인이어 컴바이너를 설치 후에는 인어이 끊김 요청은 거의 없었다. 잘못하다간 모든 가수를 청력 저하자로 오해할 뻔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우리는 그날도 퇴근길에 맥주로 심심한 마음을 달랬다. 그렇지만 근본 없는 음악프로 제작기가 점점 근본을 찾아가는 것 같아서 보람도 있었다.



참고로 그때 그 음향팀 담당자와는 여러 가지 문제를 겪은 이후 굿바이를 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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