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은 짧기만 하다
그러니까 그 시절을 즐겨야 한다
작년에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그중 하나는 발주처에서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다양한 산출물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주느라 특히 힘들었다. 특히 그 발주처 담당자가 늘 알아듣기도 힘든 장문의 이메일을 써서 우리가 원래 일정에서 뒤처져 있고, 그걸 벌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거냐고 종주먹을 대는 내용을 수시로 보내오는 바람에 프로젝트 자체에 몰두할 시간보다 발주처 담당자의 이메일에 답장을 하는데 할애한 시간이 약간 더 많을 정도였다.
다행히 이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동료 연구원들과 합이 좋았다. 우리는 기업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방으로 기업 인터뷰를 같이 다니기도 하고, 각자 업무를 분담해서 부문별로 책임을 지기도 하고 함께 골머리를 썩이면서 까다로운 발주처의 요구를 어떻게 들어줄지 수정안을 만드는데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도 했다. 정말 힘든 프로젝트였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좋았기 때문인지, 끝나고 나서는 그 시간들이 그립게 느껴졌다.
이건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작년에 함께 일했던 연구원들은 요즘에도 서로 만나면 "작년에 그 프로젝트할 때 좋았어요."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근데 그 프로젝트는 발주처가 그야말로 수시로 쌩난리를 치는 요주의 프로젝트라서 우리 부서 내에서도 폭탄 같은 일거리였는데 왜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걸까?
왜냐하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짧기 때문이다. 역전의 용사(?) 중 한 명이었던 연구원은 다른 부서로 이전이 되어서 이제 더 이상 같이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다른 한 명은 그간 육아휴직 중이어서 한 동안 함께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머지 한 명은 이직을 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 시절을 조금 더 즐겼어도 되었다. 즐긴다는 것이 업무를 태만히 한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업무의 고충을 나누고, 회의를 수시로 하면서 힘든 점을 이야기하면서 발주처가 주는 괴로움을 서로 공유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서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업무적 교류를 통해서 더 시너지 효과가 났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발주처 담당자의 히스테리에 압도되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수시로 오는 타박성 이메일에 송구하다 죄송하다 양해를 구한다는 "을질"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정신이 피폐해지고 실제로 우울증도 심해졌다.
작년의 경험을 통해서 이제는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한 팀을 이뤄서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즐겨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격무를 당연시하지 말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 감사를 표현하고, 또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서 서로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들과 이룬 한 팀은 영원하지 않다. 누군가는 계약 만료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휴직 또는 이직을, 아니면 다른 부서로 전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짧기만 하다. 만약 지금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면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겨라. 좋은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