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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Nov 02. 2022

이방인의 물멍


*2020 잡지 'ESSAYIST' 기고글




쉴 새 없이 달리는 전동차, 귓가로 들어오는 시끄러운 소리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 컴컴한 지하를 지나,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새파란 하늘, 키가 큰 건물들, 한강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면 내가 서울에 있음을 실감한다. 아 여기 서울이었지 하고. 충청남도의 작은 군에서 태어난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갈망했다. 나는 꼭 서울에 가겠다고. 1년에 한두 번 서울에 놀러 가는 날이면 나는 “뽕을 뽑아야 한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자주 못 가니까 가는 김에 다 먹고, 다 즐기고, 다 느끼고 와야 한다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땡땡 부은 다리의 통증을 느끼며 막차에 올라 탄 나는 생각했다. ‘꼭 서울에 가야지, 하루 종일 서울을 돌아다녀도 다리가 안 붓는 서울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꿈을 이뤄야지. 나는 서울에서 일할 거야’ 그렇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서울살이를 한 지 3년째. 젊었을 적 서울에서 일을 한 적 있는 아빠가 묻는다. “서울이 좋아? 여기가 좋아?” 이상하게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서울인데.


서울살이 처음 1년은 신림 9동에 있는 3평짜리 방을 구해 지냈다.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사는 건 처음이라, 서툴고 엉성한 1년을 보냈다.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새 친구들도 사귀고, 좋아하는 향초를 사서 놓아두기도 했지만, 확실히 내가 생각하던 서울과는 많이 달랐다. 햇빛이 들지 않는 작은 방에 누워있으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다가도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다음 해에는 연남동에 있는 2평짜리 방에서 살았다. 그 집은 오래된 건물이라 웃풍이 심했다. 너무 추워서 방 안에서도 장갑을 끼고 생활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끝이 시렸고, 방 안에서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전기장판 덕분에 엉덩이는 따뜻했지만,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이런 생활이 2년 정도 지속되니 도무지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게 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서울이라니. 내가 학창 시절 내내 원했던 건 매끼를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고, 춥고 작은 방에서 사는 게 아니었는데. 출발하지 말아야 할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강에 갔다. 한강에 가서 뜨겁게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느꼈다. 다리를 건너는 자동차, 운동하거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봤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내가 서울에 왜 왔는지, 서울에 와서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되새겨야 했다. 그러고 나면 아주 조금, 힘이 생겼다. 이 작은방 이불 위에 누워만 있지 않으리라.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깨끗하게 씻고 힘차게 살아가리라. 그리고 돌아봤다. 간절했던 마음을, 열정적이었던 순간을, 도전적이었던 처음을. 울면서 혹독한 입시를 견디고,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 서울에 가기로 결심했던 때의 나를.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 강줄기가 내 마음도 가로지르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지하철을 탈 때나 친구들과 놀러 갈 때 한강을 보지만, 먼 훗날에는 한강이 보이는 집에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커다란 꿈을 가져본다. 내가 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한강을 바라보는 시간은 이다지도 쓸쓸하고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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