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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Dec 12. 2023

춥다는 말 대신



학원에서 일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목요일. 퇴근 시간인 6시가 다가오면, 아이들도 거의 집에 가고, 시끄럽던 학원에도 고요함이 찾아온다.


매일 킥보드를 타고 오는 초등 1학년생은 그날도 내가 퇴근할 때쯤에 학원에 들어왔다.


 “선생님, 밖에 눈 와요”

 “진짜?” 추웠겠다“

 “난 안 춥고 좋았는데…”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은 진심도 담기지 않았고, 해봤자 별 소득이 없는 맞장구.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이런 의미 없는 맞장구 습관 좀 고치고 싶은데 사회생활에선 이만한 방패가 없다.


저녁 6시, 학원 건물에서 나오니

눈이 송송 오고 있었다.


너무 조금씩 내려 쌓일 틈은 없고, 바닥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설렘 같은 속성의 눈 내림.

마침 하늘은 짙은 파란색이었고, 그 위에 불규칙적으로 그려지는 하얀 눈송이는 나를 내내 행복하게 했다.


마침내 내린 눈이고, 여름은 완전히 갔다는 안도감.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밤에 자다 말고 욕실로 들어가 찬물 샤워를 했는데

이제는 충동적으로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일도 없다.


무조건 따뜻하게. 여름에도 분명 따뜻한 것들이 있었을 텐데,

춥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온기의 향연.

절대 날 해치려고 한 게 아니었다는 오해의 용서.


나는 이대로 눈을 구경하다 오는 버스를 타면 되고,

집에 가면 날 맞아주는 가족들이 있을 거다.

그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지.


 “밖에 눈이 와요, 너무 좋아요”


나도 춥다는 말 대신 좋다고 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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