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로 청축 키보드를 받았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를 누를 때마다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가 타악기를 치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사실, 나보 아빠가 더 신났다. 키보드 박스를 열자마자 키캡 하나를 빼서 이게 왜 청축인지 알려주셨다. 파란색 스위치가 보였다. 키보드가 눌렸다는 반응을 촉각으로도 확인 가능. 특유의 클릭음으로 청각으로도 확인 가능. 내가 무엇을 쓰고 있다는 것을 귀로도 듣는 것은 상당히 뿌듯한 동시에 예민해지는 일이다. 쓰고 있지 않다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최근에 웹드라마 대본 작업 할 일이 생겨 한 달 내내 대본을 만지고 있다. 대학 때도 그랬지만, 아직도대본을 종이에 인쇄하여 연필로 고쳐가며 쓰는 게 좋다. 구성도 한 눈에 볼 수 있고, 청축 키보드를 좋아하는 것처럼 뭔가 손으로 느껴지는 것이 좋다. 웹드라마는 열 씬이 안 되는데, 짧은 이야기를 8번 만지고 고치니 내용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섞인다. 대학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교수님은 내 글이 조금 특이하거나 부족해도 그러려니 하고 다음 단계를 안내해 줬지만, 나에게 기획안을 넘겨준 PD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명확히 표현해야만 한다.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오랜만에 쓰는 대본이다 보니 다시 공부해야 할 것도 너무 잘 보였다. 점층적으로 쌓아 올리는 감정이라든가, 대사 간 연결 같은 것…
대본 작업할 때는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애용한다. 다만, 한국어 가사가 들어간 노래는 듣지 않고, 잔잔한 bgm이나 재즈, 팝송을 듣는 편이다. 영화를 볼 때도 있다. 무조건 ‘중경삼림’을 틀어 놓는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국의 언어는 꼭 노래 같을 때가 있다. 특히 광둥어는 끝을 늘리는 경향이 있어서 집중하지 않으면 노래처럼 흘러간다. 동시에 나는 이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를 영원히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낭만도 있다. 자막에 의존하게 되는 건 싫으면서도 좋다.
고향에 내려온 지 한 달이 됐다. 서울에서는 5년을 살았는데, 그리운 게 딱 하나 있다면. 어둡고 꿉꿉한소파가 있는 칵테일바다. 신촌에 대흥에 이대에 홍대에 이태원에 혜화에 명동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