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아마도 이카로스의 비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뛰어난 기술자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다. 신화에 따르면,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크레타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미노스 왕의 명으로 미궁을 설계했지만, 그 기술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왕은 그들을 섬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탈출을 결심한 다이달로스는 바닷새의 깃털과 밀랍을 이용해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냅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 빛에 의해 밀랍이 녹을 것이며, 너무 낮게 날면 습기 때문에 날개가 무거워질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하늘을 난다는 성취감은 이카로스의 판단을 흐리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점점 더 높이 날았고,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은 그의 날개를 녹여버렸습니다. 이카로스는 산산이 부서진 날개와 함께 바다로 추락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흔히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경솔함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죠.
또한 골디락스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적절함의 미학을 제시합니다. 골디락스는 숲속을 헤매다가 곰 가족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세 개의 죽, 세 개의 의자, 세 개의 침대를 차례로 시험해 보죠. 어떤 것은 너무 뜨겁고, 어떤 것은 너무 차갑다. 어떤 것은 너무 크고, 어떤 것은 너무 작습니다. 결국 그녀는 ‘딱 알맞은’ 것을 발견합니다. 이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는 ‘골디락스 원칙(Goldilocks Principle)’으로도 확장되면서 과학,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됩니다. 별과 너무 가까이도, 멀리 있지도 않아서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하여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에도 통용되는 단어죠. 즉,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균형과 중심을 잃었을 때의 위험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중심을 유지하는 감각 시스템은 귀 안의 전정기관, 시각계, 그리고 유수용성감각 (proprioception)라는 세 가지 주요 축으로 구성됩니다. 우리의 속귀에는 달팽이관뿐만이 아니라 균형을 느끼는 정전계가 있습니다. 전정계의 목적은 머리가 어떻게 기울고 어디로 움직이는지,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를 공간 축에서 끊임없이 감지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전정계와 그와 관련된 주변 질환들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호의 통합: 뇌는 어떻게 균형을 계산하는가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부터 있었던 체육인들의 축제입니다. 신체를 인간의 극한까지 단련하고 나온 선수들의 운동신경을 보면 과연 저들이 나와 같은 종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죠. 동계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키 선수들이나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급히 몸을 틀거나 놀라운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급박한 움직임에도 몸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전정기관이라는 작은 감각 시스템 덕이 큽니다. 전정기관은 귀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이 전정기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직선적인 움직임을 감지하는 구조로, 여기에는 난형낭(utricule)과 구형낭(saccule)이라는 두 기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형낭은 달걀 모양의 타원형 주머니라는 뜻이고, 구형낭은 둥근 모양의 주머니라는 뜻이에요. 이런 식으로 이름을 기억하면 좀 더 쉽게 다가옵니다. 타원주머니는 우리가 좌우나 앞뒤로 움직이거나, 고개를 옆으로 기울일 때 그 변화를 감지해 줍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갑자기 출발하거나 멈출 때 느끼는 방향 감각이 바로 이 타원주머니 덕분인 것이죠. 반면 둥근주머니는 위아래 방향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높이 뛰기 선수들이 공중에서 몸을 젖힐 타이밍을 계산할 때 이 감각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 두 기관 안에는 ‘맥큘라(macula)’라는 젤리 같은 조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작은 돌가루처럼 생긴 이석(耳石)들이 얹혀 있습니다. 이석은 미세한 탄산칼슘 결정으로, 우리가 움직이거나 속도가 바뀌거나 몸이 기울어질 때 관성에 따라 움직이며, 아래에 있는 감각세포를 자극합니다. 마치 무게추가 실에 매달려 흔들리는 것처럼, 이석이 올라간 맥큘라가 움직이면서 감각세포를 눌러주면 그 신호가 뇌로 전달됩니다. 이 과정 덕분에 우리 몸은 지금 어떤 자세인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두 번째는 회전 감각을 감지하는 시스템으로, 세 개의 반고리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반고리관들은 서로 거의 직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돌리든 그 움직임을 아주 정교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반고리관 안에는 ‘큐풀라(Cupula)’라는 젤처럼 말랑한 구조물이 떠 있는데, 그 안에는 또 다른 감각세포들이 숨어 있습니다. 맥큘라와 달리 큐풀라에는 이석이 없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대신 머리를 돌리면 관 안의 액체가 움직이며 이 큐풀라를 밀어내고, 그 움직임이 감각세포에 전달됩니. 이 두 종류의 전정기관은 미묘한 구조적 차이 덕분에 신체 움직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지합니다. 예를 들어, 스키 선수들이 급격한 회전과 빠른 속도로 경사면을 내려올 때, 머리와 몸이 휘청이지 않고, 중심을 잡는 비결은 바로 이 반고리관 덕분입니다. 머리를 돌리거나 몸이 기울어질 때, 반고리관 속 액체가 움직이며 순간순간 그 변화를 감지해 뇌에 신호를 보내죠. 덕분에 선수는 고속의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정밀한 조절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두 시스템만으로는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몸의 중심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고유수용성 감각(proprioception)입니다. 이 감각은 우리 몸의 근육, 관절, 그리고 힘줄 속에 자리한 작은 감각 센서들에서 시작됩니다. 이 센서들은 몸의 위치와 움직임, 근육의 긴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뇌에 전달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눈을 감고도 팔이 위에 있는지, 옆으로 뻗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2시간 넘게 달릴 수 있는 것도 이 감각 덕분입니다. 발이 어디에 닿고, 다음 발걸음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몸이 스스로 조절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죠. 결국, 균형은 전정기관 하나만의 힘으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몸의 기울기와 가속을 감지하는 전정기관과,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고유수용성 감각이 함께 작동해야만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걷고 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귀에서 감지된 가속도는 전정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이 됩니다. 그리고 뇌는 전정 신호, 시각적 신호, 그리고 고유수용성 감각을 처리하며 눈과 몸의 방향성을 계산하고 조정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는 머리가 움직여도 물체에 시선을 고정하게 해주는 진정-안구 반사 (vestibulo-ocular reflex-VOR)가 있겠네요. 직접 실험해 보고 싶다면,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의 한 점을 뚫어지게 바라세요. 그 상태로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어보면, 놀랍게도 눈은 여전히 같은 지점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뇌가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에 맞춰 눈 근육을 즉각적으로 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면, 즉시 가까운 전문의에게 문의하는 것을 권고합니다). 이 원리는 비둘기가 머리를 앞뒤로 흔들면서도 시선의 초점을 잃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며, 야생동물들이 사냥할 때 목표물을 정확히 따라잡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 이런 반사가 계속 작동하고 있는 덕분에 세상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이죠.
전정계는 이처럼 감각-운동 반사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정계는 기억, 공간 내비게이션, 그리고 자기 인식과 같은 인지 기능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경로들은 자기 움직임의 감지, 공간 기억 형성, 그리고 대상 인식과 관련된 복잡한 신경망을 구성한다고 생각됩니다. 연구자들은 전정계와 인지 기능을 연결하는 새로운 경로들이 앞으로 더 많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혹시나 지금까지의 내용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셨다면, 그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우리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 기관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정교하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실로 복잡하고 정밀한 여러 기관이 긴밀히 협력한 결과죠.
정밀한 시스템의 균열
만약 전정기관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장에서는 가장 많이 문의받는 세 가지 질환인 전정신경염, 이석증(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BPPV)과 메니에르병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전정신경염
청각신경과 전정신경은 함께 제8뇌신경(8th cranial nerve) 으로 불립니다. 이 가운데 전정신경염(Vestibular neuritis) 은 전정신경에 염증이 생겨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균형 상실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주로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에는 약물로 어지럼증과 구토를 억제해 증상을 완화합니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호전되지만, 머리를 움직이거나 걸을 때 어지럼증이 몇 주에서 몇 달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적절한 치료와 전정 재활 운동을 병행하면 후유증 없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전정미로염(Vestibular labyrinthitis) 은 이름 그대로 귀의 가장 안쪽, 즉 내이(內耳) 전체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내이에는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과 소리를 담당하는 달팽이관이 함께 있기 때문에, 전정미로염은 전정신경염의 증상에 더해 청력 저하와 이명 같은 청각 증상이 추가로 나타나죠. 이 경우 조기 진단과 치료가 특히 중요하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영구적인 청력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두 질환의 증상이 뇌졸중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갑작스러운 심한 어지럼증은 흔히 뇌졸중으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만약 어지럼증과 함께 팔다리 마비, 발음 이상, 시야 흐림 등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된다면 반드시 즉시 응급실을 방문해야 합니다
2. 이석증
흔히 ‘이석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의 정확한 이름은 ‘양성 발작성 두위 현기증’입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병명을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맥큘라 안에 있던 작은 돌가루 같은 이석들이 세 개의 반고리관 중 하나로 흘러 들어가면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어 병명보다 영어 이름인 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BPPV)가 증상의 특성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Benign’은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Paroxysmal’은 갑작스럽고 짧게 반복되는 증상을 의미하며, ‘Positional’은 자세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말하죠. 마지막으로 ‘Vertigo’는 회전성 어지럼증을 뜻합니다. 이를 모두 합치면, BPPV는 자세를 바꿀 때마다 짧고, 반복적으로 발생하지만,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는 회전성 어지럼증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어지럼증이 찾아오는데, 이때 머리의 각도는 영향을 받은 반고리관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BPPV는 어느 반고리관이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종류가 나뉘고, 또 이석이 반고리관 내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지 아니면 큐풀라에 붙어 있는지에 따라서도 세부 분류가 가능합니다.
통계를 보면, 전체 BPPV 환자의 약 50~70%는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일차성 BPPV입니다. 나머지는 머리 외상, 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편두통, 또는 의료적 치료 후유증 등과 관련된 이차성 BPPV에 속한다고 하네요. 다행히도 BPPV는 이석 위치를 바로잡는 치료법, 즉 이석 위치 교정술로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으며 완치율도 매우 높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함부로 BPPV로 단정 짓다 보면 다른 더 심각한 질환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메니에르 병
다음으로 메니에르병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죠. 게다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들과 혼동되기도 해 오진의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난 환자 중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서 확실한 진단을 받은 경우는 열에 두세 명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인터넷 자가 진단에 의존하거나, 확실한 검사 없이 ‘메니에르병’이라는 진단을 섣불리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죠.
이런 오진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메니에르병의 진단 기준 자체가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최근 바라니 협회와 미국 청각학회(American Academy of Audiology)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메니에르병은 ‘확정(Definite)’과 ‘가능성 있는(Probable)’ 두 가지로 나뉩니다.
확정 메니에르병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각 20분에서 12시간 지속되는 두 번 이상의 자발적인 어지럼 발작
어지럼 발작 이전, 중간, 혹은 이후에 해당 귀에서 저주파수부터 중간 주파수 사이의 감각신경성 난청이 청력 검사에서 확인된 경우
해당 귀에서의 변동성 이명성 증상 (청력 변화, 이명, 또는 귀 안의 압박감)
다른 전정기관 관련 질환이 없는 경우
반면, 가능성 있는 메니에르병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20분에서 24시간 사이에 나타나는 변동성 이명 증상과 반복적인 전정 증상(예: 어지럼, 빙글빙글 도는 느낌 등)이 함께 있을 때입니다. 보시다시피, 진단 기준이 매우 복잡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분류법도 예전의 네 가지 분류에서 두 가지로 단순화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증상들이 항상 동시에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호전되기도 해 초기 진단이 더 어렵습니다.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면서 진단 기준도 계속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메니에르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가장 흔히 관찰되는 이상은 내림프수종(Endolymphatic hydrops)인데, 내림프수종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메니에르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런 이유로 완벽한 치료법은 아직 없다고 보는게 일반적입니다. 보통 염분 섭취를 줄이고 약물치료를 병행하죠. 난청이나 이명이 심한 경우에는 보청기 사용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증상이 심할 때는 아미노글리코사이드 계열 항생제를 사용해 전정기관을 일부러 손상하는 방법으로 어지럼증을 완화하기도 합니다.
삶이라는 균형의 예술
도입부에서 다룬 이카로스와 골디락스는 서로 정반대의 극단을 상징합니다. 이카로스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경계를 넘어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렀고, 골디락스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냅니다. 하나는 균형을 잃은 욕망에 대한 경고이며, 다른 하나는 중용의 이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전하는 의미는 단순한 옛 교훈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어떻게 조율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도리스 메르텡의 <아비투스(Habitus)>에 나오는 한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관대함이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고, 자부심이란 필요한 것보다 적게 취하는 것이다.” 수많은 아포리즘처럼 너무나 좋은 말이지만 많은 선택들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생에서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의 경계는 과연 어디에 그어야 하며, 많음과 적음의 기준은 누구의 시선으로 결정되어야 할까요?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물리적 법칙과 사회가 부여하거나 강요하는 임의적인 균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가야 합니다. 이는 마치 태어나는 순간부터 익숙해져야 하는 중력과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몸의 중심을 잃는다는 것은 곧 삶의 질에 큰 손실을 초래합니다.
하루, 아니 단 몇 분이라도 어지럼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무게를 이해할 것입니다. (아직 한 번도 어지럼증을 경험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코끼리 코를 잡고 몇십 바퀴 돌면 비슷한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균형’은 단지 신체적인 상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늘 안고 가야 할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적 없이 너무 높이 날면 번아웃에 이를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무거워져 다시는 날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힐지도 모르죠.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평균과 비교하며, 수치화된 기준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는 하늘에는 좌표가 없습니다. 그리고 브뤼헐의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풍경>에서 보듯,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의 추락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도 않습니다.
세계적인 마케터 세스 고딘은 그의 저서 <이카로스 이야기(The Icarus Deception)>에서 이 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이카로스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며, 현대인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서 추락하는 위험보다 ‘안전하다’고 믿는 낮은 고도에 머무르며 자신의 잠재력을 가둬버리는 더 큰 위험에 빠져 있다고 경고합니다. 더 이상 예전의 ‘안전지대’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딘은 우리가 모두 예술가처럼 생각하고, 연결하고, 창조하라고 말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이 날았는지가 아니라,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비행을 시작했느냐 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는 확실한 답은 아닐지라도, 나아갈 방향에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동차가 커브를 돌 때, 바깥쪽 바퀴는 안쪽 바퀴보다 더 먼 거리를 달려야 합니다. 만약 양쪽 바퀴가 똑같은 속도로 회전한다면, 바깥쪽 바퀴는 회전이 부족하고 안쪽 바퀴는 과도하게 회전하게 되어 차량이 불안정해지고 심하면 탈선까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디퍼렌셜 기어’라는 장치가 있죠. 이 기어는 좌우 바퀴가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할 수 있도록 조절해, 커브에서도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하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속 전정계와 뇌도 균형을 잃었을 때 서로 협력해 손실을 보완합니다. 이를 ‘전정 보상(Vestibular Compensation)’이라 하며, 이것은 손상된 기능을 뇌가 적응해 재조정하는 신경학적 회복 과정입니다. 덕분에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은 전정기관의 한쪽이 손상되어도 많은 경우, 다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대칭과 평형을 이상적인 상태로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미세하게 조율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내는 능력일 것입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이해’, ‘협상’, ‘타협’ 같은 관계의 언어들이 전정 보상처럼 작용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균형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열린 질문과 깊은 대화,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 흔들리고 추락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과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중요한 것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죠. 비록 하늘에는 좌표가 없고, 우리의 추락을 지켜볼 관찰자도 없을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날개를 조율하며 날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회복력이며, 능동적인 저항이고,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이어가는 방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