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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소리를 가르는 생명들

by Dr Ryan

“하늘에서 그처럼 홀로 노는 모습을 보면 이 새는 천지간에 벗이라곤 없는 것 같았고, 또 자신이 날고 있는 창공과 아침 공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벗이 필요 없는 듯했다. 그는 외로운 것 같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아래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외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중


요즘엔 음악이나 책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인생 OOO’라는 추천이 자주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예전에 내 ‘인생 책’, ‘인생 음반’ 목록을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굳이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와 이 목록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적어 보는 것이죠. 저의 책과 음반 목록은 몇 년에 한 번씩 바뀌기도 하는데, 내 ‘인생 영화’ 1위는 1993년 이후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제 인생 영화는 바로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입니다. 첫 영화가 개봉한 이후 몇 편의 속편이 나왔고, 최근엔 <쥐라기 월드(Jurassic World)> 시리즈까지 이어졌지만, 오리지널이 주는 감동을 넘은 작품은, 적어도 자에게는,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남자아이처럼 공룡과 동물에 푹 빠져 있던 제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살아 움직이는 공룡이라는 기적을 선물해 줬습니다다.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쥐라기 시리즈의 메인 테마곡을 들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새 중 하나는 화식조(火食鳥, Cassowa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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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식조는 호주에 서식하는 날지 못하는 새 중 하나입니다. 동양에서 통용되는 화식조라는 이름은 ‘불을 먹는 새’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 불을 먹거나, 먹이를 불에 익혀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겠죠. 인터넷을 뒤져보니, 목을 감싸는 선명한 붉은빛 때문에 불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이 화식조를 동물원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정글처럼 꾸며진 울창한 사육장 속을 유유히 걷고 있던 그 모습은 정말 살아 숨 쉬는 공룡 같았습니다. 깃털 사이로 드러나는 단단한 몸집과 머리 한가운데 높이 솟은 뼈, 그리고 야성을 담은 눈빛은 마치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온 고대 생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과학 유튜브 채널을 보면 심심치 않게 공룡 복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많은 과학자들이 가슴 한편에 이러한 공룡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공룡을 보는 것은 꿈같은 일이지만, 기술적 한계는 물론 윤리적인 문제까지 고려하면, 현대 과학으로 공룡을 실제로 복원하는 일은 당분간 일어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쥐라기 공원의 명대사를 살짝 비틀자면, 과학은 늘 다른 길을 찾아냅니다. 우리는 공룡을 되살리진 못했지만, 그 대신 새가 바로 공룡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죠.


깃털 달린 공룡

오늘날의 조류는 분류학적으로 수각류(Theropoda)의 한 갈래에 속합니다. 이들은 과거 티라노사우루스나 벨로시랩터처럼 두 발로 걷고 육식을 하던 공룡들과 같은 계통입니다. 수각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이족 보행과, 꼬리를 이용한 절묘한 균형 감각입니다. 이들은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뼛속이 비어 있었고, 턱 아래에는 작지만 중요한 뼈인 차골(furcula)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차골은 두 개의 쇄골이 융합된 구조로, Y자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뼈는 서양에서 ‘위시본(Wishbone)’이라 불리는데, 두 사람이 양쪽을 잡고 동시에 잡아당겨 더 긴 쪽을 가진 사람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풍습의 기원은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에트루리아인과 로마인들이 말린 닭의 차골에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이 차골은 단순히 문화적 상징에 그치지 않고, 생물학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날갯짓을 위한 근육을 지지하는 구조로 기능하는 이 뼈는 조류 비행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며, 그 기원이 수각류 공룡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은 조류와 공룡 사이의 진화적 연속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실제로 차골뿐 아니라 깃털의 흔적, 알을 낳는 번식 방식, 그리고 공기주머니 구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사성이 확인되었죠. 물론, 사냥을 끝낸 공룡이 차골을 양손에 들고 소원을 빌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사실이 오늘날 새들의 기원에 대한 탐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조류는 청력을 회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 중 하나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손상된 청력을 자연적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보청기 같은 보조 기기에 의존하거나, 손상된 청력을 회복할 방법에 많은 자금을 써가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죠. 이와 달리, 조류는 손상된 청각 세포를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것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더 이상 청력 손실을 걱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조류는 단순히 현존하는 새가 아니라, 살아남은 공룡입니다. 그러므로 조류에 관한 연구는 공룡의 생리와 행동을 역추적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조류의 청각계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비교 해부학을 넘어, 진화 생물학의 실마리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들의 청력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조류의 청각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깃털 뒤의 감각

반려조를 기르는 사람이라도 조류의 귀를 자세히 들여다본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류의 바깥귀는 귓구멍 주변을 둘러싼 특수한 깃털로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새들은 쉽게 잡혀주지 않죠). 이 깃털은 ‘귀깃’이라 불리며, 빽빽하지 않고 얇아 소리가 귀 안으로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비행 중에 발생하는 난기류를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수중으로 잠수해야 하는 가마우지 같은 종은 귓구멍이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성체 가마우지의 바깥귀는 탄력 있는 렌즈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약간의 힘만 줘도 쉽게 닫힙니다. 마치 스스로 귀마개를 끼는 것과 같죠. 이 구조는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급격한 다이빙 때 귀 안으로 물이 들어오거나 수압이 귓속 기관을 압박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 장치입니다. 가마우지의 고막 역시 일반 조류보다 훨씬 두껍습니다. 두꺼운 판 모양의 뼈가 붙은 이중 구조는 개구리나 거북이처럼 수중 생활에 적응한 동물들의 귀 구조와 비슷합니다.


반대로 청각이 생존에 중요한 일부 조류는 바깥귀가 외부에 더 노출되어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타조입니다. 타조는 머리와 목에 깃털이 없어 귓구멍이 쉽게 보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타조가 발달한 시각과 함께 포식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정확히 감지해 도망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주행성인 타조에게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도 매우 중요한 감각이기 때문이죠. 특히 하늘을 나는 조류들과 달리 땅 위에서 생활하는 타조에게는 이렇게 예민한 감각 기관의 발달이 필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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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귓구멍과 고막을 지나면 가운데귀로 연결됩니다. 모든 척추동물의 가운데귀는 주변 환경(공기, 물, 땅)에서 속귀로 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조류도 예외 없이 가운데귀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조류와 파충류의 친연성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포유류는 가운데귀 뼈가 세 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조류와 파충류는 단 하나의 뼈만 가집니다. 이 막대 모양의 뼈를 ‘이소주(耳小柱, columella auris)’라 부르며, 포유류의 등자뼈(Stapes)에 해당합니다. 이 이소주는 연골로 된 바깥이소주(Extracolumella)와 단단한 등자뼈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류의 가운데귀는 단 하나의 뼈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입니다. 이 단일 뼈인 이소주는 조류의 생활 환경에 맞춰 소리 전달 효율을 극대화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이소주의 작은 발판은 속귀에 있는 난원창에 맞닿아 진동을 전달하며, 공기처럼 음파가 잘 퍼지는 환경과 달리, 속귀의 액체 환경에 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임피던스 매칭’ 역할을 합니다. 이 기능은 포유류 가운데귀의 세 뼈가 하는 역할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덕분에 소리 에너지가 거의 손실 없이 속귀의 청각세포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조류의 이소주는 현대 악어류와 비슷하게 고막 쪽에서 Y자 형태의 지지 구조를 이루는데, 이는 바깥이소주가 고막에 넓게 부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독특한 구조 덕분에 등자뼈 발판의 접촉 면적이 넓어져 미세한 소리도 감지할 수 있도록 청각 역치가 낮아집니다. 이러한 진화는 조류가 날아다니면서도 주변 소리를 정확히 인지하고, 짝짓기 노래나 경고음 같은 복잡한 소리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 귀 안에는 ‘달팽이관’이라 불리는 빙글빙글 말린 관이 있죠. 그러나 새의 달팽이관은 전혀 다릅니다. 말리지 않고 짧고 뭉툭한 모양으로, 달팽이이긴 달팽이인데, 민달팽이에 더 가까운 모양입니다. 이 달팽이관 안에는 ‘기저막’이라는 얇은 막이 있고, 그 위에 피아노 건반처럼 서로 다른 음높이에 반응하는 감각세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대부분의 새에서 이 기저막은 길이가 2.5~4.5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부엉이처럼 청각에 특화된 종은 10밀리미터 이상으로 길게 발달했습니다. 길이가 길수록 더 정밀한 소리 정보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된 밤에 활동하는 부엉이에게는 커다란 청각적 무기입니다. 하지만 조류들의 청각 범위는 인간보다 다소 제한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0~4,000헤르츠 구간에 가장 민감하며, 최대 10,000헤르츠 부근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청력의 역치도 상대적으로 높아 작은 소리는 놓치기 쉽습니다. 즉, 같은 소리라도 크기가 커야 더 잘 들을 수 있다는 의미죠. 또한 주파수 간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도 인간이 더 뛰어납니다. 우리는 피아노 음 하나가 반음만 바뀌어도 쉽게 알아차리지만, 새들은 이런 차이를 ‘그저 그런 비슷한 소리’로 묶어 들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새들은 저음과 중음에는 예민하지만, 고음으로 갈수록 감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이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관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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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노래


우리는 흔히 새들이 '노래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새들의 소리는 그 종류만큼이나 다채롭고, 각기 다른 리듬과 음색을 지닙니다. 숲속을 걸으며 다양한 새들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새들의 소리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짝이나 가족을 찾는 소리,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소리, 혹은 적이나 경쟁자를 위협하는 소리 등등이죠. 반면, 이들의 조상 공룡들의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합니다. 영화 <쥐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단연 티라노사우루스인 ‘렉시’의 분노에 찬 포효일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 포효는 아기 코끼리, 사자, 악어 등 여러 동물의 소리를 합성하여 만들어졌는데, 극장에서 들으면 본능적인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화석 자료와 해부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볼 때, 특히 몸집이 큰 공룡들이 영화처럼 크게 포효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많은 고생물학자들은 이들이 오히려 저주파의 울림이나 폐쇄음 같은 방식으로 소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물론, <쥐라기 공원> 속 공룡들이 실제 공룡 DNA에 다른 동물들의 유전자가 짜깁기 된 존재라고 한다면, 그런 설정 덕에 '포효하는 렉시'가 가능했다는 해석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관객으로서도 통통거리는 소리를 내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고요.


안킬로사우루스의 화석 복원도에 따르면, 새의 후두 구조와 유사한 발성기관과 연골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공룡들도 소통에 필요한 정도의 발성을 낼 수 있었을 것이로 추정은 합니다. 예전에 호주에서 상징적인 새 중 하나인 에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성인 정도의 키를 가진 그 새는 입을 벌리지 않고도 가슴에서 북을 두드리는 듯한 낮고 둔탁한 소리를 냈습니다. 마치 작은 울림통 속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소리였습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암컷 에뮤가 이성에게 주로 내는 소리라고 하네요). 물론 공룡마다 울음소리는 달랐을 것이지만, 어쩌면 어떤 공룡들은 에뮤처럼 저음의 진동을 품은 소리로 숲을 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을 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새들은 단순히 소리를 듣고 만드는 것을 넘어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내는 소리는 인간이 즐겨 듣는 음악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래의 문화

우리 인간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음악은 많은 중요한 이벤트에 사용되었으며, 현대에도 하루에 새로운 노래가 셀 수 없이 만들어지고 배포됩니다. 많은 고고학적인 발견들은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악기를 만들고, 음악을 즐겼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음악 혹은 노래는 누가 어떻게 불렀을까요?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기에 상상만 할 수 있겠죠. 어쩌면 최초의 음악가는,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 가운데 특히 새들의 노래를 흉내 내며 소리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인식한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서, 음정의 변화나 반복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소리로 발전시킨 그 순간. 그것이 인간 음악의 기원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새들의 소리에는 인간이 음악이라 판단할 만한 조건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것이 진정한 음악의 시초인지, 아니면 우리가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습득한 음악의 익숙한 구조와 패턴을 새들의 소리에서 인식한 결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질문에는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해 줄 물질적 증거들의 부재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조류는 일정한 음높이, 반복되는 리듬, 심지어 즉흥적인 변주까지 구사하며, 그 소리가 인간에게 단순한 울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적 표현으로 다가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음악의 핵심 요소인 멜로디, 리듬, 화성을 기준 삼았을 때, 새들의 노래는 그 모든 조건을 놀라울 정도로 충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문화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고유한 행동과 이 행동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사용되는 물질적인 대상'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보편적으로는 언어, 사상, 신념, 관습, 규범, 제도, 도구, 기술, 예술 작품, 의례, 의식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네요.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복잡성과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일종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연구에서 새들의 울음소리는 유전적 성향, 환경적 요인, 그리고 새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선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선천적 편향과 유전적 요인, 경험적 요인, 학습 편향적 요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선천적 편향과 유전적 요인이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한계와 유전적으로 정해진 감각적 성향을 말합니다. 새가 어떤 소리를 배우고 재현할 수 있는지는 각 종의 발성 구조와 운동계의 생체역학적 한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부리가 큰 새일수록 노래 속도가 느리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차례 보고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생체역학적으로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부리가 크면 무거워서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즉, 큰 부리를 가진 새는 부리를 빠르게 여닫기 어려워, 빠른 리듬이나 복잡한 노래를 내는 데 한계가 생긴다는 것이죠. 마치 쇠로 만든 드럼 스틱으로는 빠르게 연주하기 힘든 것과 비슷하겠네요. 또한 몸집이 큰 새가 주로 낮은 음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몸이 크면 발성 기관도 커지고, 더 큰 진동 막과 넓은 공명 공간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새는 사람처럼 성대를 쓰지 않고, 기관지와 기도의 경계에 있는 ‘시링스(syrinx, 울림통)’라는 기관을 통해 소리를 만듭니다. 이 소리는 기도와 부리를 지나면서 공명하는데, 몸집이 클수록 이 경로가 길고 커져 자연스레 낮은 주파수를 내게 됩니다. 이는 굵은 현이 얇은 현보다 낮은음을 내고, 긴 튜브가 짧은 튜브보다 낮은 소리를 내는 원리와 같습니다.


어린 새들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애 초기에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겪는데, 이때 종 특유의 음향적 특성을 가진 노래를 선택적으로 기억하도록 유전적 성향이 발현됩니다. 인간이 유아기에 언어를 배울 때 주변에서 들리는 언어를 먼저 습득하는 것처럼, 어린 새들도 발달 초기에 그들 종의 독특한 노래를 본능적으로 배우는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본보기가 되는 새가 없어도 종 특유의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새가 노래하는 환경에서도 유전적으로 정해진 ‘틀’에 맞는 노래 특징을 우선적으로 모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심지어 고립된 상태에서 자란 새나 청각장애가 있는 새도 종 특유의 노래 구문 일부를 발달시킨다고 하네요. 이는 새들의 노래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유전적으로 내재한 청각적 설계도를 바탕으로 발달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새들의 노래는 유전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적 및 경험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새들은 단지 부모 새 뿐 아니라, 또래 개체나 심지어 혈연관계가 없는 성체 새들로부터 노래를 배우며 성장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오디오 녹음보다 실제 살아 있는 '선생님' 새와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훨씬 더 정교하고 풍부한 학습을 유도한다는 것이죠. 이는 새들의 노래 학습이 단순한 청각 자극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와 맥락 속에서 더욱 깊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바나 참새는 유전적 부모가 아닌 주변의 성체 개체들, 특히 첫 번식기 초기에 접하게 되는 이웃들로부터 노래를 학습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새들의 노래가 유전이라는 틀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시간적 맥락 속에서 유연하게 형성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다음은 <진화하는 언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새들은 미래의 짝을 유혹하고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짝과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지저귄다. 예를 들어 한 쌍의 새들은 서로 순서를 바꿔가며 듀엣을 부르는데, 때로는 주고받는 소리에 끊김이 없어 한 마리가 지저귀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노래를 모방하거나 연결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재즈 연주자들처럼 즉흥적인 연주를 통해 새로운 변형을 도입하기도 하는 양상이 관찰됩니다. 이러한 노래의 '돌연변이율'은 관찰 연구에서 약 5 퍼센트에 달한다고 추정됩니다. 많은 새들이 처음 노래를 배울 때 과도하게 많은 음을 만들어내고, 이후 학습 과정에서 듣는 소리에 따라 어떤 부분이 성체 노래 레퍼토리에 남을지 결정되는 소모 (attrition) 과정을 거치죠.


이것은 마치 음악가들이 곡을 쓰고 연주하며 다듬어 가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은가요? 결국 새들의 노래는 단순한 유전적 발현을 넘어,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 역시 태어남과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적 지식을 습득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과 사상을 창조해 내는 존재입니다.


일부 새들은 배우는 노래에 대한 학습 편향도 보여줍니다. 마치 우리가 노래방에서 유행가를 찾듯, 가장 흔하게 불리고 사용되는 노래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마치 음악 앱에서 알고리즘이 내가 많이 듣던 노래와 맞춰 노래를 골라주는 것과도 비슷하네요. 하지만 이것을 음악적 편식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도 진화와 생존의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러한 학습 편향은 무리 내의 아웃라이어, 즉 희귀한 변종을 배재하면서 노래 문화의 안정성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즉흥의 영역을 넘어선, 너무 특이한 패턴의 노래는 대를 이어 가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죠. 심지어 어린 새들은 성체들이 부르는 노래 중 가장 많이 반복되는 음향적 특성을 찾고 그것을 따라 하기 위해 연습합니다. 특히, 본보기가 되는 새의 특성, 특히 나이가 많거나 덩치가 큰, 혹은 계급이 높은 새들의 노래를 더 많이 연습한다고 합니다. 이는 암컷들이 나이가 많고 그 지역의 노래를 부르는 수컷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새들의 학습 편향은 마치 우리 인간 사회의 거울처럼, 그 이면을 조용히 비춰줍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이 결합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 시대에는, 한 개인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속도 역시 비약적으로 빨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잡지나 텔레비전처럼 제한된 몇몇 매체를 통해서만 유행이 확산됐지만, 이제는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들과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제 각자의 세계 속에서 퍼지고, 다시 태어납니다. 이런 현상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자문해 봐야 할 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가 따르는 유행과 선호하는 브랜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자.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혹은 나는 선구자인지, 아니면 무수한 팔로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지 말이죠.


현재 우리 주변에는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나 거대 파충류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후손인 새들은 여전히 우리 곁을 날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노래를 이어갑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나는 새를 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처럼, 이제 우리에게 새들의 지저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 안에는 수억 년에 걸친 생존과 문화의 흔적, 그리고 변화 속에서 삶을 이어온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우리는 세 장에 걸쳐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동물들이 듣는 소리에 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여기까지 함께해주신 독자라면, 제가 품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우리 인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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