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호주에서는 회식 문화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직장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다녀본 직장들은 회식다운 회식이라면 거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전부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 겸 야생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 크루즈를 타기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크루즈라 해봐야 몇십 명 탈 수 있는 작은 배였고, 항구 근처를 돌며 식사하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뱃멀미가 심해 망설였지만, 돌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 하나로 배에 올랐습니다. 뱃멀미와 씨름하며 약 한 시간을 기다리던 중 누군가 돌고래가 보인다고 외쳤고, 모두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낮은 파도 사이로 돌고래 무리가 힐끗힐끗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비록 30미터쯤 떨어져 있었고, 희미하게 회색 등이 보이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야생 돌고래였죠. 하지만 그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돌고래 가족은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지는 배 근처가 아니라, 손바닥만 한 작은 백사장 근처에서 한 가족과 어울려 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본 다큐멘터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입니다. 이 다큐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박물학자인 크레이그 포스터(Craig Foster)가 케이프타운 인근의 한 만(灣)에서 만난 문어와의 교감을 담아냅니다. 그는 거의 매일 바닷속으로 들어가 문어와 눈을 마주치고, 접촉하며, 시간을 나눕니다. 그 과정을 통해 종이 다른 두 생명체 사이에도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이런 장면을 떠올리면,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소통할까요?
소리 환경, 즉 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하루 중 아침과 밤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도 바뀝니다. 지역마다 특징적인 소리가 다르게 나타난다고도 합니다. 그렇기에 바닷속에서 사는 동물들은 이 풍부한 소리 정보를 이용해 환경을 인식하고, 방향을 잡으며, 서로 소통합니다. 소리는 다른 감각보다 환경에 덜 방해받기 때문에 해양 생물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감각 수단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물속에서 소리로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소리가 전달되는 매질이 다르기 때문이죠. 육상 생물은 공기를, 수중 생물은 물을 매질로 삼아 소리를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종종 물고기들이 소리를 어떻게 듣는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도 공기 중에서 소리로 대화하는 인간을 신기하게 여길지 모르는 것이죠. 우리가 물속에서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해서, 물고기에게도 청각이 불필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야생에서 감각 하나를 더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생존에 있어 큰 이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감각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생물들은 저마다의 감각을 조합하고 보완하며 살아삽니다. 물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는 흐리고 어두운 시야를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포식자의 접근을 조금이라도 빨리 감지하고, 먹잇감을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찰나의 차이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야생에서는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적 이정표가 됩니다. 수중 생물이라고 하면 흔히 물고기를 떠올리지만, 물 속에는 고래 같은 포유류나 수많은 종류의 갑각류도 삽니다. 그리고 물과 땅을 왕복하며 살아가는 개구리나 물개 등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청각 시스템은 조금씩 다릅니다.
이전 장에서는 육상 동물의 청각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물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청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저는 청각학자이지만 생물학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장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배우는 마음으로 즐겁게 준비했습니다.
먼저 여러모로 우리에게 친숙한 어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리를 헤엄치다: 비늘 아래 감춰진 감각
어류의 청각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소리 압력’과 ‘입자 운동’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소리 압력(sound pressure)은 소리가 퍼질 때, 공기나 물 같은 매질 안에서 압력이 주기적으로 높아지고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매질이 국소적으로 압축되거나 팽창되는 구간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입자 운동(particle motion)은 소리에 의해 매질 속의 미세한 입자들이 앞뒤로 진동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입자들은 파동처럼 멀리 이동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진동하면서 소리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류들은 성대가 없습니다. 우리처럼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성대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공기를 이용해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후두 속 성대를 떨게 해서 소리를 내지만, 물고기는 물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합니다. 그렇다고 조용히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고기들도 기분을 표현하거나 의사소통을 위해 다양한 소리를 내죠. 예를 들어 메기나 피라냐는 뱃속에 있는 부레를 수축시키고 진동 시켜, 북소리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어떤 물고기들은 턱뼈나 지느러미를 서로 긁어 귀뚜라미처럼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종은 물살을 이용해 퍽퍽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마치 사람이 화가 났을 때 책상을 ‘쿵’ 치듯이, 물고기들도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주변에 알리는 셈이에요. 그래서 낚시터에서 큰 소리를 내면 혼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나 인간이 만들어 내는 소리 대부분은 자연이 태초부터 연주하던 배경음악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죠.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육상 동물은 액체로 채워진 달팽이관을 귀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3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구조는 공기 중의 소리 압력을 감지하기 위해 고막과 가운데귀라는 중간 구조를 통해 공기와 액체 간의 밀도 차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류의 경우, 그들이 사는 물과 몸의 밀도가 거의 같으므로, 공기처럼 압력 변화에 민감한 고막을 이용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대신, 물고기는 물속에서 주변과 동기화되어 움직이는 방식으로 소리를 인식합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이석입니다. 이석은 어류의 귀 안에 있는 작은 칼슘 탄산염 구조물로, 사람의 전정기관에 있는 구조와 유사합니다. 상대적으로 무겁고, 관성이 큰 이석은, 물고기 몸이 소리에 따라 물과 함께 움직일 때 약간 느리게 반응합니다. 이 시차로 인해 감각세포의 섬모가 휘어지며, 그 자극이 소리로 인식되는 것이죠.
이를 비유하자면, 손바닥 위에 큰 젤리를 올려놓고, 손을 갑자기 한쪽으로 움직였을 때, 젤리가 잠시 뒤늦게 따라 움직이는 현상과 비슷하겠네요. 물고기의 청각도 이와 같습니다. 물과 함께 움직이는 몸에 비해 이석이 약간 늦게 따라오면서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되고, 이로써 입자 운동이 감지되는 것이죠. 즉, 물고기는 ‘소리 압력’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의해 발생하는 물 입자의 미세한 입자 운동을 느낍니다. 이러한 감지 방식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감지 가능한 주파수는 수백 헤르츠 정도로 낮고, 일정 이상의 강한 진동이 있어야 하며, 소리의 발원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잘 인식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어류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레가 진동을 속귀로 전달함으로써 청각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 그것이죠. 민물고기 중에는 이 기능이 더 발달한 종들도 있어요. 이들은 부레의 앞쪽과 속귀를 작은 뼈 구조인 ‘웨버 뼈(Weberian ossicles)’로 연결해, 소리의 진동이 더 효율적으로 전달되도록 돕습니다.
소리를 헤엄치다: 갑옷 아래 감춰진 것
다음은 어류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잘 알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갑각류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갑각류의 기원은 약 5억 년 전의 캄브리아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흔히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중심에서 갑각류의 초기 조상들은 해양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단한 외골격은 피식자와 포식자가 서로 환경과 경쟁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일종의 ‘붉은 여왕 효과’의 결과로 여겨집니다. 진화의 실험실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신경계와 다양한 감각 기관을 바탕으로 갑각류는 여러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해양 생태계 내 다양한 지위를 점하고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갑각류와 어류는 바닷속 생태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먹이사슬의 중요한 고리로서, 서로를 잡아먹거나 피하는 포식자이자 피식자로 살아갑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망둑어와 딱총새우처럼 공생 관계를 맺기도 하고, 어떤 갑각류는 기생 생물로서 어류의 몸에 붙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서로의 삶 깊숙이 얽혀 있는 이 관계는 해양생태계를 더욱 다채롭고 복잡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바닷가재나 새우를 직접 잡아본 적이 있나요? 아니라면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갑각류를 잡는 것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분명 손에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순식간에 뒤로 튀어 도망가 버리죠. 놀라울 정도로 빠른 이 반응은, 갑각류가 가진 정교한 감각 기관 덕분입니다. 갑각류는 온몸에 퍼져 있는 감각털과 관절 부위에 위치한 현향기관을 통해 주변의 미세한 진동과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무엇보다, 바닷속에서는 소리가 단지 물을 타고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저의 단단한 바닥이나, 물과 지면 사이의 경계면을 따라 ‘지면 파(ground roll)’라는 방식으로도 퍼집니다. 이 지면 파는 입자의 움직임이 크고, 일반적인 물속 소리보다 훨씬 빠르게, 더 멀리 전파됩니다. 이런 소리의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바다 바닥이나 그 근처에서 생활하는 갑각류에게 큰 이점을 줍니다. 포식자가 다가오는 기척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그 짧은 순간을 틈타 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것이죠.
갑각류는 소리를 감지하는 세 가지 주요 감각 기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평형기관(statocyst), 피부 표면의 감각털(superficial hair cells), 그리고 현향기관(chordotonal organs)입니다. 이들 기관은 모두 수중에서 발생하는 압력 변화보다는, 200 헤르츠 이하의 저주파수 입자 운동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갑각류는 평형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주로 균형 유지에 관여하지만, 수압 변화나 물의 흐름에도 반응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류의 이석처럼 질량을 지닌 감각 구조로 작용하여, 움직임에 따라 감각세포를 자극하고 신경 신호를 발생시킵니다. 감각 털은 갑각류의 몸 표면이나 다리 등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크기는 보통 200~2,000마이크로미터 사이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털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털의 굵기와 그 위를 흐르는 물살의 속도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털이 굵을수록 천천히 흐르는 물에서도 저주파수의 입자 운동에 잘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 번째 기관인 현향 기관은 주로 다리나 더듬이처럼 관절이 있는 부위에 위치하며, 대부분의 갑각류에서 발견됩니다. 이 기관 내부에는 양극성 감각 뉴런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세포체에서 두 개의 돌기, 즉 축삭(axon)과 수상돌기(dendrite)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뻗어 있는 구조입니다. 이 뉴런들은 주로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 정보를 받아들여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죠. 현향기관은 관절의 위치, 움직임, 장력 변화뿐 아니라, 주변 물의 입자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러한 정밀한 감각 체계는 근육이나 인대 조직과 연결되어 있어,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섬세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대부분의 갑각류는 우리와는 달리 소리를 주된 소통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농게와 같은 일부 종을 제외하고는 주로 화학 신호, 시각, 그리고 촉각을 통해 서로 대화하거나 위협합니다. 아마도 물속에서는 소리가 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며,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쉽게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에선 언제나 예외는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딱총새우입니다. 이 작은 생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동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몸길이에도 불구하고, 딱총새우는 한쪽 팔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거대한 집게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권총을 찬 보안관을 연상시키는 영어 이름인 Pistol Shrimp가 어울린다고 볼 수 있네요. 연구 결과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비정상적으로 큰 집게발이 내는 소리는 약 185~200데시벨에 달한다고 합니다. 일반 여객기 제트 엔진 소리가 약 150데시벨이니 엄청난 소리인 것입니다. 물론 물속에서는 소리가 감쇄되어 실제로 약 130데시벨 정도로 느껴지겠지만, 작고 귀여운 딱총새우를 사냥하러 오는 포식자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딱총새우는 자신이 내는 소리가 다른 포식자나 사냥감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경험에 의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이 내는 소리가 시끄럽지 않을까요? 동물의 신비로운 능력은 생각하면 할수록 궁금증은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헤엄치다: 물 속의 메아리를 듣는 이들
고래류는 고래, 돌고래, 쇠돌고래를 포함하는 포유류로, 약 5천만 년 전 에오세 시기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이들은 완전히 물속에서 살아가지만, 초기 고래들은 물과 육지를 오가는 양서류 같은 생활을 했으며, 몸집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포유류인 만큼 고래의 속귀 구조는 육상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놀라운 동물들은, 하늘을 나는 박쥐처럼 소리를 이용해 바다의 풍경을 봅니다. 바로 반향정위, 또는 생체 소나(biosonar)라 불리는 능력을 통해서죠. 고래류는 이 능력으로 시야가 제한되는 물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먹이를 찾고, 주변 세계를 정밀하게 탐색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고래류는 왜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고래류의 감각 체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은 마이오세 시기의 화석 기록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이빨고래에서는 두개골 구조가 눈에 띄게 변화한 모습을 보입니다. 숨을 쉬기 위한 콧구멍은 머리 윗부분으로 이동하여 블로홀(blowhole)로 변했고, 이마와 턱뼈는 길게 발달하여 소리를 집중시키기에 유리한 형태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부위 내부에는 ‘멜론(melon)’이라 불리는 지방 조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고래가 반향정위 신호를 방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심해 환경에서 시각보다 청각에 의존해야 했던 생존 전략의 산물로 보입니다. 어둠 속을 나는 박쥐가 소리로 주변을 인식하듯, 고래 역시 어두운 수중 환경에서는 소리를 통해 세계를 감지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겠죠. 돌고래와 박쥐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먹이도 다르지만, 유사한 환경적 압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반향정위 능력을 진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두 생물 모두 초음파를 생성하고 감지하며 세밀하게 해석할 수 있는 뛰어난 생체 소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적응은 고래의 청각 구조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해양 포유류 조상이 수중 환경에 점차 적응해 가면서, 원래 공기 중 소리에 맞춰진 포유류의 귀는 물을 통한 음파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변형되었고, 동시에 저주파가 지배적인 수중 환경에 적합하도록 조율되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주된 변화는 가운데귀와 속귀의 해부학적 구조보다는 소리 수용 경로의 배열과 귀의 위치에서 나타났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초음파를 듣는 동물들이 단순히 소리를 듣고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냥감이나 장애물처럼 ‘관심 있는 대상’을 향해 스스로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되돌아오는 반향음을 분석해 대상의 존재와 위치, 방향, 심지어 움직임까지 파악하는 능력인 것이죠. 가시 범위가 제한된 수중에서는 반향의 미세한 지연 시간과 위상 정보를 뇌의 청각계로 보내야 하며, 동시에 중추신경계의 피드백에도 빠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동물들처럼 고래류는 같은 종끼리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자신들의 청각이 가장 잘 반응하는 주파수에 맞춰 소리를 냅니다.
고래류는 이빨 고래와 수염고래로 나누어집니다. 돌고래나 범고래, 향유고래 등은 전자에 속하고 대왕고래나 밍크고래 등은 후자에 속합니다. 고래류는 소리를 대화와 사냥에 활용합니다. 종류에 따라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로써, 또 다른 하나는 생존을 위한 레이더 역활입니다.
이빨 고래류는 짧고 높은 클릭 소리를 통해 반향정위를 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멜론 지방 조직을 통해 빠르게 ‘딱딱’ 튀어나가는 소리를 내서, 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걸 듣고, 주변을 파악합니다. 시야가 닿지 않는 깊은 바다 속에서도 이 방식으로 물고기의 위치, 크기, 심지어 속도까지 알아낼 수 있는 정밀한 레이더인 것이죠. 반대로 수염고래류는 길고 리듬감 있는 소리를 냅니다. 고래의 노래 (Whale Song)이라 불리는 것이죠. 종류와 무리, 그리고 연구 환경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낮게는 20 헤르츠 아래의 초저주파에서 5000 헤르츠 이상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거리에 따른 감쇠가 적은 낮은 음은 소리의 속도가 공기보다 4배 이상 빨라지는 수중에서는 수십 킬로미터까지 전달됩니다.
고래류의 이러한 소리 활용 방식은 그들의 생존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수염고래류의 저주파 소리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해양 소음에 의해 방해 받을 수 있어, 이들의 소통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대왕고래가 인근의 소음 소리와 겹치는 것을 피하고자 자신이 내는 소리를 바꿨다는 예도 보고됩니다.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동물들은 인간에 맞춰서 자신들의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소리의 환경적 조건이 극단적으로 다른 육상과 수중 세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물고기가 물 입자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갑각류가 많은 감각을 통해 포식자의 접근을 알아차리며, 고래가 반향정위와 노래로 심해를 탐색하는 모습은 각 생물이 자신의 환경에 맞춰 어떻게 청각을 진화시켰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때론 하늘을 날고 때론 물에 잠기는 생물들도 있습니다.
바로 조류입니다. 이들은 진화적으로는 파충류에 가깝고, 우리와 같은 포유류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단순한 경고나 신호를 넘어 인간의 음악과 언어의 경계에 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는 어떤 방식으로 듣고, 어떤 방식으로 노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