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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소리를 걷는 생명들

by Dr Ryan



가끔 시내를 걷다 보면, 거리 한편에 웅크리고 앉은 사람과 그 곁의 개를 마주칩니다. 흘러넘치는 도시의 소음과 화려함 속에서 두 존재는 이질적으로 보입니다. 개는 주인을 떠나지 않습니다. 주인보다 훨씬 부유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들이 그 앞을 매일 지나치지만, 개는 어디로도 시선을 두지 않더군요. 주인이 잠들든, 허기를 견디든, 그 자리에 같이 머뭅니다. 겨울에 빌딩풍이 불어도 시드니의 뜨거운 여름이 공기를 달굴 때도, 개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결혼식에서 흔히 듣는 서약의 말이 떠오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라.’


간단하지만 인류 역사상 수없이 무시된 이 약속을 가장 꾸밈없이 실천하는 존재가 어쩌면 인간이 아닌 반려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단 개들 뿐 아니라 수많은 동물이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사실 그리 보편적인 것은 아니죠. 저도 그렇긴 합니다만, 우리는 종종 동물을 인간화해서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삽니다. 개는 빛보다 냄새와 소리를 믿습니다. 밤중에 짖는 개를 보면서 우리는 유령을 떠올리지만, 그들이 주시하는 것은 벽 뒤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나 쥐 같은 생명의 움직임, 혹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일 것입니다. 박쥐는 자신이 보낸 소리의 반향을 듣고, 두더지는 땅의 떨림을 읽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귀는 이들 감각의 대부분을 번역하지 못합니다. 반면, 과연 그들은 우리의 소리를 어떻게 들으면서 살아가는지도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육상의 동물들이 어떻게 소리를 통해 세상을 듣고, 감지하고, 살아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청각과는 전혀 다른 청각 세계 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듣고 있으며, 그 소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청각의 범위

청력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순음 청력 검사입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도 방음 부스에서 헤드폰을 쓰고, 소리가 들릴 때마다 버튼을 누르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입니다. 이 검사는 사람이 어떤 주파수의 소리를, 얼마나 작은 음압으로 감지할 수 있는지를 측정해 청력도라는 그래프로 나타냅니다. 청력도에서 가로축은 주파수 (음의 높낮이), 세로축은 음압 (dB HL)을 나타냅니다. 축을 따라 점이 위쪽에 있을수록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는 뜻이고, 아래로 갈수록 해당 음을 듣기 위해 더 큰 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여기서 사용하는 데시벨(dB HL)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소리의 절대 크기(dB SPL)와는 다릅니다. dB HL은 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사람이 막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기준점(0 dB HL)으로 삼고, 이 기준에서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표시한 상대적 단위에요.

Heffner HE, Heffner RS. Hearing ranges of laboratory animals. J Am Assoc Lab Anim Sci. 2007 Jan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대략 20헤르츠에서 20,000헤르츠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범위는 소리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보면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우리 귀는 대부분 언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파수에 특별히 민감하게 적응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빛의 스펙트럼 중 아주 좁은 가시광선 영역만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죠. 2007년에 발표된 논문 <실험실 동물들의 청력 범위(Hearing ranges of laboratory animals)>에서는 각 종의 청각 능력을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붉은 귀 거북, 황소개구리, 비둘기, 쥐, 햄스터, 개, 고양이, 돼지, 일본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들이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이 동물들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버튼을 누르게 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과학자들은 좀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특정 소리를 들려주고, 동물이 그 소리에 반응하도록 훈련한 뒤, 반응이 사라질 때까지 점차 소리의 크기를 줄여가며 청력의 한계를 측정한 것이죠. 이 방식으로, 동물이 어떤 소리에 50% 확률로 반응하는 최소 음압을 기준으로 청력 지도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검사법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유아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신뢰도가 높습니다 (다만, 파충류처럼 안정적인 반응을 얻기 어려운 동물은 측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네요). 이 연구가 보여준 가장 놀라운 사실은, 우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수많은 동물들이 완전히 다른 청각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자신만의 소리 풍경 속에서 세상을 경험한다는 뜻이죠. 소리를 얼마나 잘 듣느냐는, 단지 뇌가 소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귀가 밝다 어둡다 의 차이도 아닙니다. 그 중심에는 소리를 전하는 메커니즘 자체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크고, 가장 작다

가장 크고 무거운 육상동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아프리카코끼리 Loxodonta africana입니다. 어릴 때부터 동요나 동화책, 혹은 동물원에서 접했기에 우리는 코끼리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덩치가 큽니다. 코가 길고 멋진 상아도 있죠. 힘도 셉니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코끼리가 4만 개 이상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정밀하고 강력한 코, 체온 조절 기능을 지닌 커다란 귀, 소리 없이 걷게 해주는 쿠션 구조의 발을 갖고 있으며, 포유류 중 가장 긴 22개월의 임신 기간과 하루 150kg 이상의 식물 섭취량, 그리고 장기 기억력, 자기 인식, 가족의 죽음에 애도 행동까지 보이는 놀라운 지능을 가진 데다가 암에도 걸리지 않는 동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Weissengruber GE, Egger GF, Hutchinson JR, Groenewald HB, Elsässer L, Famini D, Forstenpointner G. T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바로 코끼리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청각 능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소통 방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코끼리의 청각 범위는 16 헤르츠에서 12,000 헤르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20 헤르츠 이하의 초저주파를 감지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육상 동물이죠. 이 낮은 주파수의 소리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무리에게까지 도달하며, 서로의 위치나 번식 상태, 포식자의 접근 여부, 위험 신호 등 다양한 정보를 전달합니다. 게다가 이들은 발바닥을 통해 땅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할 수도 있다는 점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코끼리를 볼 때 압도적인 코에 먼저 시선이 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몸을 지탱하고 조용히 움직이게 해주는 것은 바로 발입니다. 코끼리의 발은 단순히 무게를 버티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마치 인간의 러닝화처럼 발바닥 안에는 격벽으로 나뉜 쿠션이 들어 있어 충격을 흡수하고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정교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이 쿠션은 뼈, 연골, 지방, 섬유질, 탄력 조직 등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고, 이를 감싸는 단단한 피부층까지 함께 작동하며 발의 탄성과 안정성을 만들어냅니다. 덕분에 코끼리는 엄청난 체중을 지닌 채로도 조용히 걸을 수 있고, 발바닥 전체에 힘을 고르게 퍼뜨려 조직이 다치지 않도록 합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발바닥이 단지 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섬세한 감각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발 안쪽과 피부에는 감각 수용체가 촘촘히 분포해 있어, 코끼리는 땅의 진동을 느끼고 주변 환경을 발로 읽어냅니다. 이렇게 코끼리의 발은 단순한 지지대를 넘어서, 그 거대한 생명체가 세상을 느끼고 반응하는 또 하나의 감각 창구가 됩니다. 코끼리에게 대지는 곧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셈이죠. 마치 인간이 광케이블을 지구 전체에 둘러 소통할 수 있는 거리를 단축시킨 것과도 흡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드 용(Ed Yong)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An Immense World)>는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는 동물들의 세계를 조명하며, 생명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그중 ‘진동’을 다루는 장에서 저자는 코끼리들이 인위적으로 생성된 다양한 진동을 감지하고 방어 대형을 갖추는가 하면, 심지어 같은 아프리카코끼리의 경고음이라도 낯선 지역에서 녹음된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반대로 발정기 암컷의 소리를 틀자 보이지도 않는 암컷을 찾아 방황을 시작했다는 예도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을 위한 일이었다지만, 인간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상상 속의 짝을 찾아다니게 만들다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초저주파가 인간의 청각 범위 아래에 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은 약 20 헤르츠 이상의 소리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코끼리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부분의 ‘말’은,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들만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고고한 거인들이 조용히 걷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침묵 속에는 실제로 복잡한 감정, 세밀한 정보, 서로를 향한 신호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언어, 인간의 감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관계. 코끼리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그리고 위로합니다. 성체가 된 아프리카코끼리를 단독으로 위협할 수 있는 포식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코끼리가 분노하면 사자나 하마조차 서둘러 자리를 피할 정도죠. 그런데 최근, 아프리카코끼리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진동 정보를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중에서도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무리를 구분하려는 슬픈 학습의 결과입니다.


가장 큰 육상동물이 아프리카코끼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가장 작은 포유류의 자리를 놓고는 경쟁이 치열한 것 같네요.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에트루리아땃쥐(Suncus etruscus)와 범코박쥐(Craseonycteris thonglongyai)가 대표적인 후보로 언급됩니다. 매슈 D. 러플랜트(Matthew D. LaPlante)의 <굉장한 것들의 세계>에 따르면, 범코박쥐가 몸길이는 더 짧지만, 에트루리아땃쥐 쪽이 몸무게는 약간 더 가볍다고 합니다. 이 장에서는 땅 위에서 살아가는 에트루리아땃쥐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에트루리아땃쥐의 평균 체중은 약 1.8그램으로, 평균 6톤에 달하는 아프리카코끼리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습니다.


이 작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땃쥐는 분당 1,500회에 이르는 심장 박동과 숨 쉴 틈 없는 신진대사를 감당해야 합니다. 체표면적에 비해 체적이 작음으로 열 손실이 크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하루 동안 자기 체중의 1.5~2배에 해당하는 먹이를 찾아 나섭니다. 그래도 고작 3.6그램 분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으로 따지면 성인이 하루에 100kg 이상의 음식을 먹는 것이죠. 또한, 에트루리아땃쥐는 렘(REM) 수면이 없는 몇 안 되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로 보고됩니다. 대신 10~15분 길이의 짧고 파편화된 수면을 반복하며, 수면 중에도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는 동물이죠. 이 과정에 실패하면 몇 시간 안에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하네요. 어떤 면에서는, 이들은 끊임없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들은‘긴장을 풀 수 없는 생명체’라 할 만하며, 눈을 감고 안심하고 잠드는 일은 땃쥐에겐 사치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에트루리아땃쥐는 매우 작은 달팽이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의 털세포는 약 300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약 2만 개와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치입니다. 청각을 처리하는 뇌의 영역도 작지만, 땃쥐는 다양한 소리를 내며 집단 내에서 의사소통합니다. 시각 역시 제한적입니다. 이들의 눈은 빛의 강약 정도만을 감지할 수 있으며, 형태나 움직임을 인식하는 능력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의 제약은 다른 감각의 민감성을 만들어냈습니다. 땃쥐는 코끝과 전신의 감각털을 통해 어두운 틈을 탐색하고, 포식자의 기척을 감지하며 살아갑니다.


에트루리아땃쥐의 뇌는 지상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작아서 무게가 약 60mg에 불과합니다. 감각기관과 뇌는 에너지 소모가 큰 구조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성은 이들의 생존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죠. 그 결과, 에트루리아땃쥐는 시각이나 청각보다는 후각과 촉각을 중심으로 감각 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즉, 환경이 요구한 것은 멀리 보는 눈이나 멀리 듣는 귀가 아니라, 가까운 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코와 수염이었던 것입니다. 에트루리아땃쥐의 청각 범위를 정확히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훈련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겠죠. 대신 과학자들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울음소리를 통해 청각 범위를 추측합니다.


이들이 내는 울음소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짧고 가볍게 내는 소리, 날카로운 소리, 비명이 섞인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비명 소리에요 (이런 소리를 어떻게 내게 했는지는 상상하기 싫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16,000에서 17,000 헤르츠 사이에서 소리를 내고 집중하지만, 비명 소리는 이보다 더 높은 주파수까지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비슷한 땃쥐 종류인 일반 땃쥐의 정밀 청력 실험 결과를 보면, 이들의 청각 범위는 1,000 헤르츠에서 무려 60,000 헤르츠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덩치가 더 작은 에트루리아땃쥐는 이보다 더 높은 음역을 들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트루리아땃쥐는 이와 같이 소리의 길고 짧음, 높고 낮음, 그리고 그 사이의 섬세한 차이를 조율하며, 서로 간 최대한의 감정과 소통, 그리고 교감을 이끌어냅니다. 그러나 매 순간 죽음의 기척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 작은 생명에게 정밀한 청력 검사를 요구하는 일은, 어쩌면 우리의 잔혹한 호기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충분히 바쁘게, 그리고 조용히 세상의 틈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큰 육상 동물과 작은 육상 동물이 듣는 세계는 다릅니다. 앞에서 비교한 아프리카코끼리와 에트루리아 땃쥐를 복습해볼까요? 코끼리의 청각 범위는 16헤르츠에서 12,000 헤르츠인 반면, 에트루리아 땃쥐가 집중해서 듣는 주파수는 그 위를 훨씬 웃돕니다. 전자는 대지를 플랫폼 삼아 넓은 영역에서 대화하고, 후자는 높은 주파수로 서로 간에 짧은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감각의 진화

이런 소통의 차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번 장에서는 두 가지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달팽이관의 구조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 달팽이관은 실제로 달팽이 껍데기처럼 말려 있는 기관입니다. 달팽이관을 쭉 펴서 펼쳐 보면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생겼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낮은음에서 높은음까지 소리가 순서대로 배열된 구조입니다. 이것을 주파수 지형도, 또는 토노토피시티(tonotopicity)라고 부릅니다.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달팽이관 안에서 반응하는 위치가 다르다는 뜻이죠. 달팽이관의 바깥쪽, 즉 가운데귀에 가까운 입구 쪽은 고주파에 민감하고, 안쪽 끝으로 갈수록 저주파에 반응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동물 크기에 따라 달팽이관 길이와 주파수 범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작은 동물일수록 달팽이관이 짧고, 높은 주파수를 감지하며, 큰 동물은 달팽이관이 길고 낮은 주파수에 특화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달팽이관은 약 2.75바퀴 정도 말려 있고, 펼치면 약 30 밀리미터입니다. 코끼리는 60 밀리미터나 되고, 아주 작은 에트루리아땃쥐 같은 경우는 아마 몇 밀리미터밖에 안 될 것입니다. 달팽이관 안에 있는 기저막 (Basilar Membrane)의 너비 또한 주파수 반응과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일부 돌고래의 달팽이관은 길이가 같지만, 돌고래의 기저막은 폭이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폭의 차이는 상한 주파수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일부 돌고래는 100,000 헤르츠를 넘는 주파수까지 감지할 수 있죠. 이는 마치 기타 줄에서 얇은 줄일수록 더 높은음을 내는 원리와 유사합니다.


달팽이관은 수억 년에 걸친 긴 진화의 산물입니다. 화석 기록을 보면, 초기 포유류들은 아직 완전히 감기지 않은 단순한 달팽이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길이도 고작 3밀리미터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촘촘히 말린 구조는 약 1억 2천만 년 전, 백악기 초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 포유류의 달팽이관은 대부분 최소 1.5바퀴 이상 감긴 정교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을 포함한 수태류에서는 달팽이관 내 뼈와 연부 조직이 정교하게 결합하는 큰 변화가 있었죠. 이 덕분에 소리를 더 정확하고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오리너구리 같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단공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진화입니다. 그리고 이 진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프레스틴(Prestin)’이라는 단백질입니다. 원래는 물질을 이동시키는 단순한 역할에 불과했지만, 수태류에서는 이 단백질이 세포를 수축하고 늘리며 소리를 증폭하는 ‘모터’ 역할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능력은 특히 고주파 영역의 소리 증폭에 필수적이며, 박쥐나 이빨고래처럼 반향정위(echolocation)를 사용하는 동물에서 극도로 발달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능이 서로 다른 동물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고주파 소리 감지 능력이 그들의 생존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죠.


두 번째 진화의 주인공은 바로 가운데귀입니다. 포유류의 역사는 약 2억 3천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공룡을 비롯한 육상 동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막을 가진 가운데귀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포유류의 조상은 조금 독특한 길을 걸었습니다. 턱관절이 변하면서, 원래 턱 뒤쪽에 있던 작은 뼈 몇 개가 본래 역할에서 벗어나 청각에 쓰이는 뼈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이 변화 덕분에 포유류는 세 개의 정교한 뼈를 가진 가운데귀를 갖게 되었고, 이는 소리를 더욱 섬세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소리의 미묘한 차이나 음악의 복잡한 음색을 구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가운데귀의 진화 덕분입니다.

Dickinson, E., Tomblin, E., Rose, M., Tate, Z., Gottimukkula, M., Granatosky, M. C., Santana, S. E.,


집채만 한 코끼리부터 손바닥만 한 땃쥐까지, 이들은 모두 세 개의 작은 뼈로 이루어진 가운데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코끼리와 사람의 가운데귀 뼈는 밀리미터 단위로 크기가 다소 크지만, 박쥐나 땃쥐처럼 작은 동물들의 가운데귀 뼈는 매우 작아 맨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언뜻 보면 뼈 부스러기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크기가 작고 정교한 가운데귀 뼈 구조는 각 동물의 청각 범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박쥐처럼 고주파 소리에 민감한 동물들은 작은 가운데귀 뼈의 크기와 관절의 유연성이 소리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국 가운데귀 뼈의 크기와 형태는 동물이 어느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잘 감지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것이죠.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땅 위를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크기와 생존 전략에 따라 완전히 다른 청각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거대한 코끼리는 초저주파를 통해 대지를 울리고, 미세한 땃쥐는 고주파의 미로 속에서 소통합니다. 이처럼 청각은 단순한 감각을 넘어, 각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최적화해 온 진화의 산물이자, 환경과 생존 방식의 냉혹한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익숙한 ‘소리’라는 개념은 어디까지 통용될까요? 그리고 땅 위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음파의 전파와 청취 방식은, 전혀 다른 물리적 조건 아래에서는 어떻게 변할까여? 실제로 소리는 육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혀 다른 법칙과 한계를 지닌 수중 세계로도 깊숙이 뻗어 있습니다. 물속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방식,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만들고, 활용하는 생명체들의 감각 시스템은 육상 생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적응과 진화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소리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을까요? 다음 장에서는 인간의 상상과 기존 지식을 뛰어넘는 바닷속 소리의 경이로운 생태계를 함께 탐험해 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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