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아서 클라크
드디어 마지막 시간이네요. 지금까지는 최대한 신중한 시각에서, 조심스럽게 주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과학적 사실 위에 상상력을 얹어서, 조금은 가볍고 자유로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선생도 학생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마지막 시간에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슬쩍 고개를 내밀지도 모르니까요.
단, 이 장을 읽을 때 한 가지는 꼭 기억해 주세요. 지금부터의 내용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맞출 가능성보다 틀릴 가능성이 현저히 크기 때문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전도체나 차원 이동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복권을 사본 적이 있거나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는 독자들은 이 말을 잘 이해할 것 같네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작은 변화 하나가 발전의 흐름을 전혀 다른 곳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삼각돛입니다. 오래 전에는 인간이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고,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배는 바람이 불어주는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었죠. 그래서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은 종종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아이올리아 섬의 왕인 아이올로스 (Aeolus)가 나옵니다. 아이올로스는 호의를 담아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잔잔한 서풍을 제외한 모든 바람을 주머니에 담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고향에 도착했을 때,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주머니에 보물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여 주머니를 열었고, 그 결과 그들은 모두 바람에 밀려 아이올리아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가 분명 신들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믿고, 더 이상의 도움 없이 그를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이렇듯,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바람은 고대의 뱃사람들에게는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삼각형 모양의 돛이 발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맞바람을 헤치며 항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작은 발명은 결국 바다의 질서를 다시 썼습니다. 인간이 단지 바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바람을 계산하고, 각을 조절해 원하는 방향으로 항해라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죠. 인간의 상상력은 언제나 현재보다 조금 더 나아간 미래를 그리고 싶어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상상력이 쌓이면서 그것은 점점 현실성을 띠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꿈꾸는 미래는 처음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엉뚱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상상 속에 삼각돛 같은 변화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은 언제나 기술보다 먼저 닻을 올리니까요.
상상력의 시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은 상상력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기계의 대중화, 자동 학습 기계, 심지어 집을 자동으로 짓거나 인쇄하는 기술까지도 상상했습니다. 산업혁명과 경제 체제의 재편, 전기의 실용화, 물리학과 화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들의 전반적인 도약 등, 그 시대를 뒤흔든 약진은 이러한 상상력을 정당화해 주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상당히 비슷한 모습으로 실현되었고, 일부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습니다.
21세기의 전반기를 달리는 지금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기계를 통해 인간의 노동을 해방했고,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대량생산으로 산업의 질서를 다시 짰습니다. 3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정보의 흐름 자체를 바꾸며 디지털 공간이라는 신대륙을 확보해 주었어요. 이제 인류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큰 흐름에 들어섰습니다. 이전의 산업혁명들이 특정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전반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너무 익숙하게 들려 식상할 수도 있지만, 그 중심에는 역시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범용 인공지능 (AGI)과 AI 에이전트의 출현 시기와 정의를 둘러싸고는 여전히 크고 작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든 간에, 거의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에요. 앞으로 인공지능을 배제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공장을 설계하면서 전기와 대량 생산장비를 빼놓는 것과 같고, 새 회사를 창업하면서 인터넷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통신망이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된 것에 누구도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은 이제 하나의 기술에서 벗어나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전제조건이 될 것 같네요.
Nothing, Everything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는 살라딘 (살라흐 앗 딘)이라는 역사 속 인물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수복 후, 중세 시대로서는 파격적인 자비를 푸는 그에게 발리앙은 예루살렘의 가치는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다 (Nothing)’이라고 대답한 뒤 발걸음을 돌려요. 그러다가 다시 돌아서서 주먹을 모은 다음 말을 잇습니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 (Everything)’. 저는 이 짧은 대사가 영화의 주제를 꿰뚫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될 수 있는 문장이라고 봅니다.
전기와 인터넷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금 있는 공간을 둘러보세요. 아마 불이 켜져 있거나 콘센트에 무언가가 꽂혀 있을 것입니다. 손만 뻗으면, 아니, 스마트홈 환경에서는 말 한 마디면 전기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Nothing, Everything’입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에요. 집이나 직장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와이파이에 연결되고,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연결되는 순간자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끊기는 순간,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됩니다. 가게는 장사를 접어야 하고, 회사는 거의 마비될 것 같네요.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 모뎀을 꺼보세요. 하루 종일 얼굴 보기도 힘들던 가족들이 일제히 방에서 뛰쳐나올 것입니다. 여기도 ‘Nothing, everything'이에요. 지금도 인공지능을 도입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에는 점점 더 큰 효율성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국가 간 격차도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질 것입니다. 이 흐름은 아마 멈추는 순간 도태되는, 그래서 누구도 멈추지 못하는 경주기 때문입니다.
AI와 맞잡은 큰손들
현재 전 세계에서 보청기를 만드는 주요 회사는 단 다섯 곳뿐입니다 (인공 와우나 뼈 전도 보청기를 만드는 곳은 더 숫자가 적어요). 업계에서는 이들을 흔히 ‘The Big Five’라고 부릅니다. 이 회사들 중 대부분이 각기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어, 실제로 시중에 보이는 보청기 브랜드는 훨씬 많아 보여요. 하지만 그 뿌리를 따라 올라가 보면, 결국 다섯 개의 기업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회사들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입니다. 이 회사들과 관련된 모든 연관 검색어와 마케팅 도구에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보청기의 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흥미로운 주제일 것같네요.
사실 보청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첨단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소리를 증폭하는 것을 넘어, 주변 소음을 줄이고 말소리를 선명하게 구분해 내는 정교한 알고리즘이 탑재된 작은 컴퓨터에 가깝습니다. 괜히 대부분의 내장 부품에 특허가 걸려있는 것이 아니죠. 청력이 손상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어려움은 소음 속에서 말소리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보청기 제조사들은 이 영역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소음 환경 분석과 음성 분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음성 분리 기술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적(static)인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이 임계치를 넘으면, 방향성 마이크를 포함한 알고리즘이 작동해 소음을 줄이는 구조죠. 효과는 있었지만, 이러한 방식은 음성과 배경 소음을 정확히 구별하는 데 한계가 있어, 말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거나 소음이 너무 심한 환경에서는 예상보다 성능이 저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보청기는 단순한 임계치 반응을 넘어, 머신러닝과 심층 신경망 (Deep neural network)을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소리의 시간적·공간적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음성과 소음을 보다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분리해 냅니다. 아직은 인공지능에 의한 트레이닝(Training)의 단계지만, 이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특정한 프로그래밍 없이도 두뇌처럼 소리에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십, 아니 수백만 개의 실제 음향 데이터를 학습하며, 점점 더 사용자 맞춤형 청취 경험을 제공하도록 진화하고 있죠. 또한, 보청기와 호환되는 기기들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강의실이나 교실과 같은 환경에서 보청기의 성능을 높여주는 마이크, 텔레비전과 연결해 사용하는 스트리머(streamer),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와 블루투스를 통해 연결하는 기능은 이제 거의 기본적인 사양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 더해, 오라캐스트 (Auracast) 블루투스도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블루투스는 보통 기기 간 일대일 연결을 전제로 합니다. 예컨대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 노트북과 스피커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기술은 한 가지 한계를 갖습니다. 특정한 하나의 기기만 연결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 그 소리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오라캐스트는 이 한계를 획기적으로 극복하는 차세대 기술로 여겨집니다. 블루투스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지만 하나의 기기가 송출하는 소리를 다수가 동시에 받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오라캐스트 기술이 시험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관객들은 자신이 착용한 지원 기기를 통해 공연 음향을 더욱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고, 각자 원하는 볼륨으로 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라캐스트의 등장은 청각 중심 기술이 공간 전체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강의실, 박물관, 공항, 회의실, 심지어 대중교통과 병원에 이르기까지, 다중 수신이 필요한 환경에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것이죠. 이는 IoT ( Internet of Things) 기반의 공간 설계에도 확장될 수 있으며, 보청기와 AI, 그리고 다양한 연결 기기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이는 생태계를 가속할 것이로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최신 보청기들은 오라캐스트 시대를 대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준비를 이미 마쳤거나 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AI 에이전트에 대한 담론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입니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며, 행동하고, 심지어 학습까지 하는 능동적인 AI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마치 우리 옆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동반자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 AI 에이전트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활약하게 될까요? 미래를 상상해 보면 정말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진다. 많은 영화에 나오듯, 안경이나 시계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에 AI 에이전트가 탑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스마트워치나 증강현실(AR) 안경 등이 등장하고 있으니, 여기에 고도화된 AI 에이전트가 더해진다면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적절한 조언을 주거나, 복잡한 작업을 도와주는 개인 비서로 자리매김하면 재미있는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소리는 인간에게 가장 직관적인 정보 전달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AI 에이전트가 귀에 자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인것 같습니다. 그것은 귀걸이나 보청기처럼 더욱 작고 은밀한 형태로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수도 있죠. 귀에 쏙 들어가는 작은 기기가 우리의 대화를 분석하고, 주변 소음을 조절하며, 외국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 주는 등 상상 이상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청각 보조 기기의 역할을 넘어, 소리를 통해 세상을 더 풍부하게 인지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건, 생각만해도 흥분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의 미래는 단순히 물리적인 기기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AI 에이전트는 특정한 물리적 연결 없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통합될지도 모릅니다. 마치 또 하나의 뇌처럼 우리의 생각과 의도를 읽고, 필요한 정보를 미리 준비해 주거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식으로 말이죠. 클라우드 기반의 AI 시스템이 한 발자국 더 발전한다면, 특정 기기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디지털 환경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우리의 삶을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는 곧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AI 에이전트가 배경에서 끊임없이 학습하고 성장하며, 우리의 디지털 자아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AI 에이전트가 어떤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다가오든, 그들은 우리의 일상과 업무 수행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화된 정보 제공, 복잡한 의사 결정 지원, 반복적인 작업의 자동화 등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물론, 이러한 미래를 위해서는 개인 정보 보호, 윤리적 문제, AI의 오작동에 대한 책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죠. 하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AI 에이전트는 분명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난청이 있는 분들과의 대화는 조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말이 끊기거나, 말이 왜곡되어 대화가 삼천포로 빠질 때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답답함이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끝까지 기다리고, 사용자가 필요하고 원하는 만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대화에서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이런 기술의 발현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술의 진보는 결국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Continuum
새로운 기술이 우리 삶에 스며들어 대중화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야 합니다. 특히 혁신적인 기기들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죠.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배터리 기술입니다. 미래의 보청기기들이 다양한 신기술과 인공지능에 연결되어야 한다면, 보청기처럼 작은 크기에 담을 수 있는 배터리 용량으로는 그 기능을 온전히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하루 종일 작동하려면 충분한 배터리가 필요하듯이, 보청기 역시 더 긴 사용 시간을 위해 배터리 기술의 혁신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복합적인 과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충분한 예산 확보를 통해 연구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야 하며, 다양한 기기들이 서로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호환성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입니다. 공공 인프라의 수용성을 높여 스마트 보청기 사용자들이 불편함 없이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이와 함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용자 교육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기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잠재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사용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민감한 개인 정보가 다뤄지는 만큼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고 효율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자원이 필수적인데, 이 점은 새로운 디지털 격차 또는 국가 간 에너지 접근성의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어쩌면 이런 상상을 실현할 기술은 준비되고 있지만, 사회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죠. 혁신의 상용화란 기술의 완성보다도 사회 전체가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라는 질문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리의 시각화
잠깐 공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대안을 한 가지 이야기해 보자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R은 물리적 공간과 완전히 분리된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는 달리, 실제 공간을 확장하고 상호작용을 하며 디지털 콘텐츠를 덧입히는 기술입니다. 공간을 상상력만큼이나 확장 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는 실시간 자막의 구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현재도 이미 사용되고 있는 음성 인식 기술 (ASR)이 있습니다. 사용자의 음성을 AI가 실시간 텍스트로 변환하고, 이를 즉시 시각적 인터페이스에 띄워주는 것이죠.
장기적으로는 단순한 문자 전달을 넘어 감정의 뉘앙스까지 반영하는 자막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또한, 실시간 수어 통역 역시 AR 기술과의 접점을 가질 수 있겠죠. 센서나 카메라를 통해 수어 동작을 인식하고, 이를 AI가 분석하여 음성 언어나 자막으로 변환하는 기술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으니까요.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여러 기업과 연구소에서 시제품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청각의 미래는 단순한 소리의 재현을 넘어, 다양한 표현 수단의 동시적 통합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의 결합
이쯤 되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대화 상대와 나 사이를 매개하는 기계를 두는 것보다 차라리 뇌에 소리를 직접 쏘면 어떨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손상이 된 세포들을 건너뛰어서 훨씬 깨끗한 소리를 청각피질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애초에 손상된 세포 자체를 재생시킬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선 첫 번째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해봐야 겠습니다. 이 생각을 처음으로 실현한 결과는 앞장에서 살펴본 인공와우입니다. 인공와우는 손상된 청각 세포들을 우회하여 청각 신경에 직접 전기 자극을 주어 뇌가 소리를 인지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언급했죠. 그러나, 만약에 전기 자극을 받은 신경이 손상되었다면, 혹은 선천적이나 후천적인 이유로 청신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각 경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됩니다. 보청기는 달팽이관의 바깥 털세포의 역할을 보완해 주는 기기입니다. 인공와우는 그보다 한 단계 깊숙이 들어가, 안쪽 털세포를 대신해 청신경에 직접 전기 자극을 전달합니다. 그다음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와우 핵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와우 핵에 전극을 삽입하는 장치가 바로 청각뇌간이식 (Auditory Brainstem Implant, ABI)이에요. 이 기술은 청신경이 손상된 환자들에게 소리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인공와우에 비해 청각적인 혜택은 훨씬 제한적이에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와우 핵의 주파수 배열이 달팽이관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 때문이죠. 특히, 와우 핵에서는 주파수가 표면을 따라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부호화 (encoding)되는데, 이런 구조는 표면 전극으로 자극하기에는 비효율적인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건너뛰어서 청각 정보를 바로 청각피질로 보내면 어떨까요?
감각을 극한으로 우회하는 도전은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손상된 눈과 시신경을 건너뛰고 시각 정보를 시각 피질에 직접 전달해 주는 피질 시각 복원 (Cortical vision restoration) 기술이 바로 그 예일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는 뇌와 컴퓨터 간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를 통해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생각만으로 마비된 사지나 연결된 보조 기구들을 움직이는 것, 그리고 나아가 이 기술은 기억 정보를 뇌에 업로드하거나 인지 능력을 향상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모든 소리 정보를 통합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은 청각 피질에 직접 자극을 가하면 인공적인 보형물보다 더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인식할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역은 전기 자극으로 청각적 느낌을 유도할 수 있음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어 있죠. 다만, 청각 피질을 직접 자극하는 기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대한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선 청각 피질은 밀리 초 단위의 정밀한 시간 정보를 처리하는 고해상도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정교한 전기 자극 기술이 필요합니다. 피질 자극이 실용적으로 작동하려면, 자극 시스템은 초당 수백 번 이상 반복되는 시간-공간 신호 패턴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생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청각 피질의 구조와 반응 특성이 다르므로, 개인별로 맞춤화된 피질 자극 설계가 필수적이 되겠네요. 특히 난청이 오래 지속된 경우, 청각 피질의 주파수 지도가 이미 재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력 손실이 있었던 주파수에 해당하는 피질 영역은 인접 주파수 대역이나 다른 감각 영역에 의해 침범되거나 재조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또한, 뇌에 삽입된 전극이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이로 인한 조직 반응이나 유지보수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자극을 넘어 뇌가 자연스러운 소리처럼 느낄 수 있도록 음소, 말소리, 감정 등의 복합적인 청각 정보를 전기 신호로 설계해야 하는데, 이 일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뇌는 컴퓨터처럼 코딩을 읽어서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감각을 파종(播種)하다
우리 달팽이관 속 털세포는 매우 독특한 존재입니다. 정교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바탕으로 소리를 감지하고 그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손상되면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반면, 포유류가 아닌 동물들은 청력 손상을 스스로 회복하는 놀라운 재생 능력을 지니고 있죠. 마치 그들에게는 청력 저하라는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운명을 바꾸기 위한 도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털세포가 자가 복구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집과 잔해를 치우고, 새로운 기초를 다져 다시 집을 세우는 일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 Atoh1이라는 유전자가 지지 세포 내에서 활성화되면, 이 세포들은 털세포와 비슷한 모양과 기능을 지닌 세포로 변모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존 지지 세포의 본래 역할은 상실됩니다. 즉, 털세포가 생겨나는 동시에, 지지 세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재생의 과정에는 여러 제약이 따릅니다. 털세포와 지지 세포 사이의 섬세한 균형이 무너지면 오히려 청각 구조 전체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세포의 증식이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더 이상 회복이 아닌, 통제 불가능한 증식이 되고, 우리는 그런 상태를 일반적으로 ‘암’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새로 생성된 털세포가 완전히 성숙하여 실제로 소리를 감지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손상된 달팽이관 내부의 환경 자체도 재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염증 반응, 세포 간 신호 전달의 혼선 등 다양한 생물학적 장애물들이 이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 약물 치료, 줄기세포 이식 등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며 청각 재생의 가능성을 하나씩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 여정은 아직 멀고 험난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다시 듣는 기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혁신 이후에 남는 것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주로 학생들이나 초년생들이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미래에 이 모든 기술들이 현실이 된다면, 청각학자들은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간단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기존의 것을 대체해도, 직업의 직무는 어떻게든 변화하고 재정의 될 것입니다. 기존 역할이 사라진다는 것은 더 이상 그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직업은 사라져야 할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구는 새로운 전문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죠. 청각학자는 여전히 인간의 감각 경험을 해석하고 안내하는 소명을 두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기술 시대 이후에도 청각학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