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나 기업을 시작하며 '성공적인 기업'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습니다. 시장분석, 인재, 제품, 마케팅, 혁신 등 어떤 요소를 꼽더라도 설득력이 있죠. 하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기업의 뿌리이자 시작점이 되는 것, 바로 아이디어와 비전입니다. 특히 '기업 비전'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경영이라는 개념은 때로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수십 권의 책으로도 다 담기 힘든 복잡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야 할지 고민한 끝에 이 글의 여정은 바로 이 지점, 비전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처음의 방향이 마지막 얼굴이 된다
‘비전(vision)’이라는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시력’, 즉 보는 능력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라틴어 videre에서 유래된 visio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영어 vision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시각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존재했습니다. 당시 일부 학자들은 눈으로 빛이 들어와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서 빛이 나가 외부 세계를 비춘다고 믿었습니다. 이 이론은 '본다'라는 행위를 단순한 수동적 인지가 아닌, 세상에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작용으로 간주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 이론은 과학적으로는 옳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눈에서 빛이 나온다면, 우리는 어두운 방 안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후대 학자들은 시각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현대적인 관점을 확립하게 됩니다.
기업의 비전도 이러한 '보는 능력'에서 시작합니다. 비전은 기업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길 원하는지를 나타내는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비전은 경영 목표와 이상, 그리고 현실적 전략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비전은, 당신의 사업에 대한 의지와 약속을 외부에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든 기업과 산업체의 웹사이트에는 이러한 선언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보통 기업 홈페이지의 ‘About Us’, ‘Vision and Values’ 등 다양한 제목 아래, 비전을 소개하는 항목에는 상당한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신입사원이라면 면접 전에 꼭 한 번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비전 선언문은 단지 홈페이지 디자인을 채우기 위한 장식적 요소가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 항목을 클릭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시간과 자원을 들여 비전을 명확히 표현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곳에는 회사가 그리고 있는 ‘성공한 기업의 모습’이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장의 깃발, 하나의 운명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관통하는 예로는 해적선의 깃발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거나 전설로만 여겨지던 세계의 보화들을 옮기던 상선들, 그리고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해적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졸리 로저(Jolly Roger)라는 해적기입니다. 우리가 해적기를 상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개골과 두 개의 교차된 뼈로 이루어진 깃발입니다. 이 깃발의 의미는 명확하고 간결합니다. 공포와 경고의 상징이지요. 만약 해적이 기업이라면, 그들의 깃발은 최고의 비전 선언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결하고 강력하며, 어떠한 마케팅 전략 없이도 그 조직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는지, 왜 주저 없이 움직이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해적과 잇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은 단순한 역사화가 아니라, 혁명정신과 국민의 정체성을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중심에는 상반신을 드러낸 여성, 프랑스 공화주의의 상징인 마리안느(Marianne)가 서 있습니다. 그녀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삼색기를 높이 들고, 민중과 함께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넘고 있습니다. 그 깃발 하나로 화가는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목소리를 내고자 했는지, 즉 자유를 추구하는 집단이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 나아간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미국 남북전쟁을 다룬 명화나 영화 속에서도 이와 같은 상징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국기나 중대 깃발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전장의 정체성과 사기, 그리고 생존을 의미하는 결정적 장치였습니다. 특히, 전투 중 중대기를 끝까지 지키고 귀환한 병사들의 이야기는 전쟁 서사 속에서 영웅담으로 기록되곤 합니다. 그 깃발은 단지 천 조각이 아니라, 생존과 명예, 이상을 향한 집단의 비전이자,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상입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도 힘든 소음과 먼지, 방향을 알기도 어려운 혼전 속에서도, 자신의 부대 깃발이 보이는 곳으로 향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한, 전투 후에도 깃발이 똑바로 세워져 있다는 것은 부대의 생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선언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비전
기업의 비전도 이것과 동일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바뀔 때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방향에 대해 고민할 때, 항상 바라볼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비전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비전은 단지 좋은 말이나 희망을 나열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미래지향적이고, 보는 이에게 영감과 도전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반복해서 되새길 수 있게 기억에 남고 동기 부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조직이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유성(Uniqueness)이라는 무기도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잊어버려도, 이것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비전은 명함이나 SNS에 올리는 명언이 아닙니다. 아포리즘 같이 남들도 쓸 수 있는 문장은,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멋진 비전 선언문이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홈페이지의 일부 공간을 차지하는 텍스트와 화려한 그래픽 그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진짜 비전은 조직 구성원의 말과 행동, 의사결정과 문화, 우선순위와 자부심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합니다. 비전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글로 쓰인 문장을 넘어, 조직이 그것을 얼마나 체화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그리고 리더가 그 깃발을 얼마나 먼저 들고 앞서 나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비전의 진짜 힘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