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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옮기는 사람 (1)

by Dr Ryan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존재가 있습니다. 제우스의 명령을 거슬러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한 프로메테우스입니다. 그는 기술과 문명의 불꽃을 피운 대가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지요. 리더란 어쩌면, 가장 먼저 불을 짊어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먼저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유한 책임을 짊어진 사람 말이죠. 소중한 지혜를 나누는 일이지만, 동시에 혹독한 대가를 감내하는 것입니다.


앞 장에서 우리는 비전과 혁신이 어떻게 조직의 방향을 정하고, 가능성을 넓혀주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비전도, 아무리 탁월한 혁신도 이를 실현할 사람이 없다면 멈춰버린 꿈일 뿐입니다. 그 꿈을 현실로 이끄는 힘이 바로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리더십’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도 그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도 정말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더의 자질이나 사명을 이야기할 때는, 목적과 수단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리더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조직을 살아남게 하고(Survive), 번창하게 하는 것(Thrive)입니다. 그 목적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는 시대, 문화, 조직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리고 그 다양한 실행 방식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리더십이라 생각합니다. 리더십은 하나의 정답으로 정의되기보다는, 독단적인 리더십에서 방임적인 리더십까지 이어지는 넓은 스펙트럼 위에 존재합니다. 마치 무지개가 붉은 파장에서 푸른 파장까지를 품고 있듯이, 리더십도 그 사이사이에 수없이 많은 색과 결을 지닌 채 존재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 뚜렷하지 않은 경계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빛의 색깔을 찾고, 조직에 가장 필요한 스펙트럼을 만들어가려 애씁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창에 ‘리더십 종류’라고 입력해 보면, 결과는 훨씬 더 다양합니다. 어떤 자료는 리더십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또 어떤 자료는 무려 열 가지가 넘는 유형으로 나눕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중 자신에게 맞는 몇 가지를 골라 조합하기도 하지요. 거의 MBTI 테스트 결과를 들여다보듯, 자신을 설명해 줄 ‘리더 유형’을 찾는 일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도 해본 적이 있으니까요. 리더십에는 정답이 없고, 앞으로도 더 다양한 형태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오히려 그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조직과 사람에게 어떤 리더십이 적합한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그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오늘날 주로 논의되는 대표적인 리더십 유형들을 하나씩 살펴보려 합니다.


3.1 전제형 리더십


전제형 리더십(Autocratic leadership)은 아마도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리더십 유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역사책을 아무 쪽이나 펼쳐 보세요. 높은 확률로 전제형 리더가 등장할 겁니다. 과거 대부분의 군주들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이 리더십의 핵심은 모든 결정권과 정보가 오롯이 리더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리더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죠. 우리는 전제형 리더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는 합니다. 흔히, ‘전철(前轍)을 밟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곤 하지요. 전철은 먼저 지나간 수레의 바퀴 자국을 의미합니다. 앞서간 수레가 엎어진 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면, 나도 똑같이 넘어지게 된다는 경고가 담긴 말입니다. 실제로 중심을 잃었던 전제 군주들의 끝은 좋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민주적인 방식을 배우고 익혀왔기에, 전제형 리더십에 대해 내심 반감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이런 사람을 ‘꼰대’ 혹은 비속어로 부르며,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상징처럼 여기기도 하지요. 실제로 이러한 리더십 아래에서는, 리더 외의 구성원이 의사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창의성과 자율성이 억제되기 쉽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구성원의 동기와 만족도가 떨어지고, 조직 전체가 리더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리더가 실수하거나 부재할 경우 그 여파가 조직 전체로 빠르게 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보면, 지휘관이 전사한 순간 아무리 잘 훈련된 군대라도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되는 예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입니다. 그는 막강한 카리스마와 탁월한 통솔력으로 수많은 국가를 정복하며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이를 다스릴 후계자를 명확하게 지명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제국은 곧바로 ‘디아도코이’, 즉 후계자들 간의 권력 투쟁에 휘말리며 허망하게 분열되고 맙니다. 이처럼 리더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구조는, 그 리더가 사라지는 순간 조직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전제형 리더십은 질서 유지에는 강점을 지니지만, 구성원의 성장을 제한하거나, 리더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직장 내 이직률이 높아지는 등의 부작용이 뒤따르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전제형 리더십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테러범이 한 건물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이제 1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관객들의 인내심도 곧 한계에 달합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빨간색 선이냐, 파란색 선이냐. 하나는 폭탄을 멈추고, 다른 하나는 자르는 즉시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주인공의 즉각적이고 과감한 결단입니다. 지금은 민주적으로 투표를 하거나, 전화 찬스를 쓸 시간이 아닙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순간, 고를 사람은 단 한 명뿐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전적으로 그의 몫입니다. 전제형 리더십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우선, 결정이 빠릅니다. 토론이나 합의 과정 없이 한 사람이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나 급박한 업무에서는 오히려 리더의 단호함이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질서와 명확한 책임 구조를 유지하기에 용이하여, 군대, 의료, 재난 대응과 같은 신속한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환경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하지만 이건 주인공이 반반의 확률을 뚫고 살아남는 영화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단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나비효과가 되어 조직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제형 리더십은 매우 제한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에 따르는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겠지요. 결국 전제형 리더십은 벼려진 칼과 같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쓰면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즉흥적으로 남발하면 예리한 만큼 쉽게 다치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언제 이 리더십이 필요한가, 그리고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가를 구분하는 리더의 판단력일 것입니다.


3-2 자유방임형 리더십


전제형 리더십의 반대편 끝에는 자유방임적 리더십(Laissez-faire Leadership)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내버려 두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얼핏 들으면 리더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방임적 리더십은 단순한 무책임과는 구별됩니다. 오히려 이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자유방임형 리더는 팀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부여합니다. 또한 업무 방식에 대한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기 때문에, 팀원은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방법을 결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일의 방향조차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유방임적 리더십은 리더십이 아니다, 는 극단적인 의견도 존재하긴 합니다. 이 리더십은 고숙련 전문가들이나 예술가들이 협업할 때 선호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습니다. 팀원 각각의 성향을 존중하고,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자유방임형 리더십은 흔히 위임형 리더십(Delegative Leadership)과 혼동되곤 합니다. 둘 다 구성원에게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지만, 그 본질은 다릅니다. 자유방임형 리더는 책임까지 넘기고 한 발 물러서는 반면, 위임형 리더는 자율성을 부여하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설정하고 정기적인 관찰과 피드백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어쩌면 피터팬을 떠올리게 합니다. 피터팬은 네버랜드의 ‘잃어버린 아이들’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지만, 그들의 일상에 깊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사냥하고, 놀고, 살아갑니다. 피터팬은 단지 모험을 주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일 뿐이죠. 규칙을 만들지도, 계획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자유방임적 리더는 때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결정을 미루는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피터팬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책임을 지는 대신 도망치거나 현실을 외면합니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도 그는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두는 모습을 보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피터팬을 따릅니다. 그의 말보다 그가 보여주는 자유, 함께하는 모험, 경계 없는 상상력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피터팬은 명령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자유방임적 리더십이란, 그런 방식입니다. 질서 없이도 어쩐지 굴러가는 공동체,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자율성과 창의성은 때로 통제보다 더 강한 구심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리더십 방식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방임과 방치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방임에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담겨 있지만, 방치는 무관심과 무책임에 기반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팀원이라 해도, 방치된 채 내버려 두면 조직은 혼란과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최고의 명마들을 마차에 매어놓았다고 해도, 적절한 통제 없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놔둔다면, 그 마차는 곧 전복되고 말 것입니다. 자유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3-3 거래형 리더십


거래형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은 말 그대로 ‘거래’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입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을 주고, 기준을 어기면 제재가 따릅니다. 리더는 명확한 기대치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과 처벌의 시스템을 작동시킵니다. 이 구조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효과적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면 상을 준다”라거나, 직장에서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방식도 사실 거래형 리더십의 전형적인 예죠. 어쩌면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것도 직장과 개인 사이의 거래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리더십 스타일의 핵심은 규칙, 절차, 책임입니다. 조직은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원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며, 리더는 성과에 따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은 매우 체계적이고 예측할 수 있게 흘러가기 때문에, 안정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조직 환경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서도 거래형 리더십의 한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을 통해 쌓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예술과 학문에 대한 전략적 후원을 이어갔습니다. 이 후원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예술가와 학자들에게는 예술을 표현할 아틀리에, 금전, 사회적 연결망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메디치 가문의 위상과 권위를 드러내는 작품이 요구되었습니다. 대리석 조각상, 웅장한 궁전, 종교화를 통해 메디치는 ‘문화적 권력’을 구축했습니다. 물론, 예술과 권력의 거래는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문화적 계약'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나 보티첼리의 작품 역시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래형 리더십은 그만큼 한계도 명확합니다. 보상과 처벌에 기반한 관계는 상호 신뢰나 내재적 동기보다는, 어쩌면 입출력이 정교하게 계산된 자판기나 계산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거래’가 장기화된다면, 목표를 넘어서는 창의성이나 주도성은 장려되지 않으며, 구성원들은 정해진 기준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최소한의 노력으로 수렴하기 쉽습니다. 또한 확약했던 보상이 줄어들거나 제도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조직의 생산력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자판기를 매일 돌리면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할 사람은 극소수일 테니까요.


거래형 리더십은 일의 기본기를 다지는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안내하고, 약속된 보상을 통해 동기를 부여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는 건축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일과 같습니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구조물이 설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위에 상상력이 더해진 새로운 건축을 하려면, 때로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거래형 리더십은 분명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영원히 머물 수 있는 목적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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