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짧은 평일 하루를 지나고 익숙한 주말이 찾아온다. 퇴사 후 첫 주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도 약속을 위해 이른 시간부터 눈을 뜬다. 회사의 모든 스트레스를 약속이나 여행으로 풀고 있었으니 9월 주말은 이미 약속으로 꽉 차있다.
무계획 퇴사라는 것이 그렇다. 무작정 잡아놓은 약속들이 통장 잔고를 갉아먹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을 쓰러 나간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다. 퇴사했다고 온종일 집에만 있으면 없던 우울도 생겨버리니깐.
벌써 입추가 지난 9월이지만, 아직 뜨거운 햇살이 가라앉지 않았다. 올여름 마지막 물놀이를 즐기기 좋은 완벽한 날씨. 창밖으로 보이는 쾌청한 날씨가 반갑다.
이른 아침, 짐을 챙겨 동역사(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9번 출구로 향한다. 9시 30분, 캐리비안베이로 떠나는 셔틀버스에 성큼 오른다. 첨벙첨벙- 회사도, 취준도 모두 잊은 채 물에 뛰어들었다.
회사에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밖으로 돌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이 내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걱정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모든 체력을 쏟아붓고 나니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든다.
스트레스로 몇 개월 잠을 설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우울감은 감성적인 이 새벽으로부터 시작된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그날은 무조건 잠을 설쳤다.
퇴사하고서도 불안한 미래를 끊임없이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이 새벽에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내일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걱정이 아닌 잠으로 채우는 새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건강한 일상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일요일 새벽을 잠으로 채우니 회사를 다니는 평소 주말과 비슷한 8시 30분에 눈이 떠진다. 병원 치료를 시작하고선 주말 하루 정도는 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일요일도 약속 없는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오늘은 물건이 잔뜩 쌓여있는 방을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하루가 크게 의욕적이지 않아 청소는 늘 주말로 미뤘고, 주말은 약속을 핑계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내 방도 정비가 필요하다. 정돈되지 못 한 방은 휴식의 여러 방해요소가 된다. 특히, 주변이 산만하면 집중력이나 의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서랍장에 계절을 알 수 없이 중구난방 섞여 있는 옷을 정리하고, 제멋대로 걸려있는 옷장을 정리한다. 이제 옷을 찾는다고 서랍장을 헤집을 걱정이 사라졌다. 화장대는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하고, 자꾸 물건을 뱉어내는 서랍장을 오랜만에 비워주기로 했다. 배열에 맞춰 테트리스를 성공하니 뿌듯하다. 이참에 이리저리 꽂혀있는 책장도 정리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보니 없던 의욕도 생기는 기분이다.
다음번에는 인테리어 물품을 구입해야겠다. 미니 수납장과 화분, 엽서꽂이. 정돈된 내 방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퇴사 위시리스트를 써볼까?
오늘 하루 마무리를 위해 고생한 나에게 삼겹살을 선물하기로 했다. 한 캔의 맥주까지 곁들이고 나니 괜찮은 주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40분이 넘는 걷기 운동에, 샤워까지. 오늘도 금세 잠이 든다. 쓸모없는 생각에 체력도, 정신도 빼지 않는 것. 건강한 일상을 위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key point. 늦은 새벽, 잠을 설치게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아침, 점심, 저녁과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 하루에 한 번 이상 밖으로 나가 햇살을 맞는 것. 그리고 그날 하루 어떤 식으로든 모든 에너지를 방전시키는 것. 푹 잠을 자고 일어나야 그다음 하루도 나만을 위한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