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1/4

함께 책 읽기 ⑲ -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피터 콘래드

by 정채환

■ 읽게 된 계기

병원의 과잉 진료나 약물의 오남용 문제를 다룬 책들을 다수 접하던 시기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보다 넓고 본질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줄 것처럼 보여 눈에 들어온 책이다. 어르신들 대부분이 혈압약과 당뇨약을 드시고 계신데, 나이를 먹으면 노인이 되는 게 아니라 '환자'가 되는 것인지?, 왠지 질병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보통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난 것을 말할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변하는데 그걸 '병'으로 취급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하는 의문에도 답을 줄 것 같아 보였다.



■ 감상 및 추천

▶ 우리는 과연 더 건강해지고 있을까?

집사람이 어릴 때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고 있으면 할머니가 "엄마 아빠가 죽었냐, 밥이 없냐? 왜 우냐?"고 하셨다고 한다. 그 정도 일이 아니면 울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어딘가를 다쳐서 상처를 입으로 후후 불며 울상을 짓고 있으면, 엄마 아빠가 오셔서 "안 죽어 이 녀석아, 안 죽어." 하시면서 빨간약(머큐로크롬액이라는 붉은색의 소독약)을 발라 주셨다. 웬만한 상처는 그거 하나면 문제없이 넘어갔다. 죽을 정도라면 모를까 심각한 병이 아니면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 그러고도 다들 큰 문제없이 잘 살았다.

지금은 우선 임신을 하기 위해 병원을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임신 중에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고, 출산을 위해서는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하고,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환절기에 소아과에 가보면 늘 유아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유치원에서는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그 감기가 거의 몇 달 동안 원아들 사이에서 계속 돌고 아이들은 감기약을 달고 산다. 초등학교 때는 남자아이들은 성장을 위해, 여자 아이들은 성조숙을 우려해서 병원에 가고, 중고생이 되면 피부관리를 위해서, 치아교정을 위해서, 특수렌즈를 하기 위해서, 비만 치료를 위해서, 생리통 관리를 위해서 병원에 간다. 성인이 되어서는 성형, 비만, 불안, 우울, 탈모 등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에 간다. 중장년이 되면서부터는 혈압, 당뇨, 고지혈 등을 관리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게 되고, 심지어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 스스로 병원을 찾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나라에서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몸 안팎 구석구석을 종합적으로 검사시켜 준다.

병원에 잘 가지 않던 시절이 더 좋고, 우리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는 갈수록 더 많은 질병을 알게 되고, 그 질병의 전조 증상을 알게 되고, 그 질병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더 많은 검사받게 되고, 관련 검사 수치를 더 외우게 될 것이고, 그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 더 염려하며 살고, 더 많은 양의 약을 먹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건강이 얼마나 증진(사망률 감소, 기대 수명의 연장, 의학의 발달 등)되는지와 상관없이, 건강 문제에 대한 보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는 어쩌다 환자가 되었나] -


병원에 자주 다니지 못하던 시절보다 확실히 우리는 더 건강해졌을까? 더 행복해졌을까?


▶ 서로 똑같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낮은 기온에 잘 버티고 수확성이 좋아 전 세계 상업용 바나나의 90% 이상을 '캐번디시'라는 단일 품종이 차지하게 되어 유전적 다양성의 부족해지자, 특정 병충해가 돌았을 때 모든 바나나가 버텨내지 못하고 일순간에 멸종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영화 [월드워 Z]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혼비백산 전력을 다해 달아나는데, 정작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힘없는 노인과 병든 소년에 대해서는 좀비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책 [아파야 산다]에서는 때이른 한파를 버텨내기 위해 수분의 양을 줄여 체액 농도를 높이느라 상대적으로 당도가 높아진 포도들을 수확하여 아이스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우리 사이에 있는 당뇨병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빙하기(혹한기)를 버티고 살아남은 고대 인류 유전자의 잔재가 아닐까 추측하는 내용이 나온다.


"앨런 피터슨은 ... 유럽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 남성의 몸이 여타의 몸들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 [우리는 어쩌다 환자가 되었나] -


어떤 표준화된(획일화된?) '건강한 인간상'을 향해 우리 모두의 건강성이 수렴하게 되어도, 다른 부정적인 문제는 전혀 없는 것인지 염려되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


▶ 모두가 다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지난 10월에 있었던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xx병원 oo센터 기본 검진 패키지는 82만원, 프리미엄 패키지는 616만원, VIP 회원제는 2300만원에 달한다”며 “공공병원이 서민 대상 건강검진은 중단하고, 고가 VIP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대기업 직원들은(그렇다고 아무 병도 안 생기는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계약한 대형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체계적인 건강검진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에 문제가 될 정도로 무리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건강을 돌볼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방의학이나 사회학 등에서 소득 수준에 따른 건강 정도와 수명의 차이는 이미 새로운 주제도 아니다.

의학과 의료업의 눈부신 발전은 과연 이런 격차를 좁히고 있을까?


▶ 우리는 서로 계속 '같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중학교 땐가 징징대며 몇 주를 엄마를 조르고 졸라 유명 상표의 고가 농구화를 샀다. 농구화를 신은 나는 예전의 나와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보면 신발만 보였다. 저건 내 신발보다 더 비싼 거, 저건 내 신발보다 한~참 싼 거. 돈을 주고 산 신발 두 짝을 내 발에 끼운 것뿐인데, 그걸로 친구들의 등급을 분류하고, 내 서열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독특한 자기 계발의 하나는 "생의학적 증강"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정신, 신체, 성과를 증진하기 위한 약물적·수술적 개입과 같은 다양한 방법의 의학적 개입이 포함된다. 지방 흡입술, 주름 제거술, 유방 확대술, "코 세우기"를 비롯한 성형수술은 신체의 외형을 개선하는 가장 흔한 생의학적 방법이 되어 가고 있다. ... 피터 크레이머는 "성형 정신약물학"이라는 도발적인 개념을 만들어 냈는데, 그는 프로작 같은 약물이 개인의 삶을 "이보다 더 좋게" 교정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다.


증강은 개인이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주고, 사회는 우위를 점한 개인에게 보상을 준다. 하지만 증강 개념에서 핵심은, 일부의 사람만이 증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특성이 보편화된다면 경쟁력은 사라질 것이다.

- [우리는 어쩌다 환자가 되었나] -


신발 한 켤레에도 그토록 고양된 자아와 타인과의 격차를 느꼈었는데, 증강을 통해 '아무도 모르게,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더 지적이고, 더 매력적이고, 더 우수한' 신체능력을 가진 '차별적 우위의 나'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때는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고 상대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병명 중에서 ... 인간의 개성이나 하나의 표현형으로서의 '상태'(condition)가 의료화의 과정을 통해 '문제'(problem)가 되고 정착되면서 '질병'(disease)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상태, 문제, 병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 [우리는 어쩌다 환자가 되었나] -


한편에서는 그냥 좀 산만한 '특성'을 가진 아이일 뿐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주의력과 행동에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새로운 판정이 내려지고, ADHD약을 복용해야 하는 '질병'을 가진 환자가 되는 일이 생겨난다.

서로 대등하지만 조금 다를 뿐인 관계에 우열의 개념이 생겨나고, 정상인과 환자로의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상황이 심화될수록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정상의 비정상화가 이루어지고, 한쪽에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군비경쟁적 증강'이 계속되면 과연 우리는 같은 인류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부유하면서, 매력적이고, 똑똑하고, 강하고 기능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이, '가난하고, 못 배우고, 못나고, 병든 사람'을 계속해서 자신과 동등한 공동체의 이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영화 [엘리시움]의 홍보 문구가 떠오른다.

"하나의 인류, 두 개의 세상. 버려진 '지구'와 선택받은 1% 세상 '엘리시움'"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몸은 알고 있다] - 달케 뤼디거, 데트레프센 토르발트

전에는 위 제목으로 읽었는데 지금은 [마음과 질병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나오고 있다. "암과 당뇨 같은 성인병을 비롯한 모든 질병은 마음 사용의 결과물이다. 모든 질병은 마음의 상처가 몸에서 병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라는 책 표지 소개 문장처럼, 건강과 질병을 심리학적·철학적으로 심오하게 다룬 책이다. 2013년에 읽고 개인적으로 건강/의학 분야에 책 중 최고의 평점을 줬던 책이다.


▶ [아파야 산다] - 샤론 모알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 R. 네스, G. 윌리엄스

질병을 단순한 건강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진화가 만든 필연적 현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들이다. 질병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몸과 인간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보이는 복합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소개되어 있다.


▶ [적당히 건강하라] - 나고 나오키

병원에서 관리하는 각종 검사지표에 소위 100점을 맞도록 철저히 관리하며 살려고 하면 *너무 피곤하고, *맘 놓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재미도 없으니, 적당히 한 70점 정도 맞게 생활하면, 건강관리도 사는 재미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얘기.


▶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 - 마스모토 미스마사

예전에는 정상 혈압의 기준이 현재보다 훨씬 높았고 그것들이 각종 기록에도 남아 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기준이 계속 하향조정되면서 많은 환자가 양산되었으므로 혈압이 좀 높아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위안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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