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2/4

함께 책 읽기 ⑲ -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피터 콘래드

by 정채환

■ 주요 문장 (요약 또는 마음에 드는 문장)

<한국어판 서문>

'의료화'란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들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는 과정을 말한다. 알코올의존증, 주의력결필 과잉행동장애(ADHD), 출산, 완경, 우울증, 월경전증후군(PMS), 수면장애, 노화, 비만 불임, 학습장애, 발기부전, 성형수술 등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ADHD의 의료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ADHD 관련 정신의학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6,266건에서 2011년 56,951건으로, 불과 10년 사이 350% 증가한 점에서 알 수 있다. 현재 학령기 인구의 4~7%가 ADHD 진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정 수술의 증가 역시 의료화의 또 다른 형태다. 여러 나라에서 대중화되고 있는 성형수술의 경우, ... 몸에 대한 의료화라 할 수 있다.



1부. 개념

1장. 의료화의 배경, 특성, 변화

내가 막 의료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관점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관점과 상당히 달랐다. ADHD, 식욕부진, ... 월경전 증후군, 영아돌연사증후군처럼 지금은 잘 알려져 있는 병명들이 당시 내 수업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30여 년간, 의학계는 훗날 흔한 질환이나 장래로 널리 알려지게 될 여러 문제들을 발견해 냈다. ...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의학적 문제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의학이 이미 있던 문제를 더 잘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혹은 의학적 성격이 모호했던 삶의 온갖 문제들이 이제 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대상이 된 것일까?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은 의학이 관할하는 영역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사회적 기반과 그 과정이 가지는 사회적 함의이다.


대부분의 병들에 가장 먼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의료 전문가들이지만, 대개 어떤 문제의 의료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위자들이 꼭 필요하다.


한때는 부도덕, 죄악, 혹은 범죄로 정의되던 행동들에 의학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나쁜' 것에서 '아픈' 것이 되기도 했다. 또한 불안, 감정 기복, 월경, 피임, 불임, 출산, 갱년기, 노화, 죽음처럼 삶의 일상적인 과정으로 여겨지던 일들도 의료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가벼운 증상들에 대해 무심히 지나치는 일이 줄면서 "불편한 몸 상태나 단발적 증상들이 질병으로 재분류되고 신체 고통의 의료화가 진전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사회운동 세력과 환자 단체, 그리고 각 환자들 역시 의료화의 중요한 지지자들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약 회사 등의 기업들과 소비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환자들이 의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탈의료화가 되려면 문제가 더는 의학적 용어로 정의되지 않아야 하고, 의학적 치료 또한 적절한 개입이 아닌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 19세기에는 자위가 질병이고 의학적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됐지만, 20세기 중반에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간주되었다. ... 장애 ... 가장 중요한 사례는 동성애로, 1970년대에 공식적으로 탈의료화되었다.


의료화는 문제의 원인을 사회 환경보다는 개인에서 찾으며, 집단적/사회적 해결보다는 의학적 개입을 통한 개별적(개인적) 해결을 선호한다. ... 의학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 역시 양적으로 늘고 있다. ... "사회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행동, 사람, 사물을 정의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 핵심 쟁점은 여전히 '정의를 내리는 힘', 즉 일련의 특정한(의학적) 정의들을 머릿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첫째, ... 의료인의 권위와 권력 ... 어쨌든 의료인과 의학이 관할하는 영역의 확대는 의료화의 일차 동력이었다. ... 둘째, ... 때때로 사회운동이나 이익집단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런 경우 어떤 문제에 대한 의학적 정의를 옹호하거나 의학적 진단의 정확성을 널리 알리려는 조직적 노력이 있었다. ... 셋째, ... 전문가 집단은 문제를 정의하고 치료할 권위를 두고 경쟁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의 조직적 활동이나 내외부적 상호작용이 의료화를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의료화 요구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대체로 이 문제에 동조하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했다. ... 기존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쟁취되는 경우도 많았다. 여성운동과 월경전증후군, 베트남 참천 군인 운동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게이/레즈비언 운동과 에이즈 치료 등은 모두 명확한 정치화와 사회운동의 동원을 통해 새로운 질병 범주가 안착하도록 만든 사례이다.


사회학자와 여성학자에 의한 의료화 연구는 여성의 문제들이 훨씬 심하게 의료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생식, 피임, 출산, 불임, 월경전 증후군, 섭식장애, 섹슈얼리티, 갱년기, 성형수술, 불안, 우울 등에 대한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의료 용품, 서비스, 치료가 소비자들에게 건강, 외모, 웰빙을 증진한다고 선전될 때마다 우리는 의료 시장의 발달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1997년 미국 식품의약품국 현대화 법안은 의료화를 촉진하는 몇 가지 변화를 불러왔다. 그중 우리의 분석과 가장 관계 깊은 내용은 제약 회사들이 약품의 '허가외사용' 정보를 의사와 공유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는 조항이 느슨해졌다는 점이다. ... 의사들은 자신들이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약품을 FDA가 승인하지 않은 질병에도 재량껏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를 '허가외사용'이라 부른다.


소비자 대상 (의약품) 직접 광고 ... FDA 현대화 법안은 부작용과 위험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규제를 완화했다. 광고주는 길이가 긴 경고문을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창구(웹사이트, 무료 전화, 잡지 광고면 등)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제약 산업은 시장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를 통해 의료화에 더욱 직접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다양한 부분이 의료화 되었다.


팍실은 프로작을 비롯한 SSRIs 계열의 우울증 치료제로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출시되었다. 팍실의 제조사는 이미 포화 상태인 "우울증 시장"에 대응해 FDA에 팍실의 추가 적용 승인을 요청했다. 팍실 제조사(현 글락소스미스클라인)는 공황장애, 강박장애, 사회불안장애, 범불안장애 등을 포괄하는 "불안 시장"을 특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팍실이 사회불안장애와 범불안장애에 쓰이면서 걱정이나 수줍음 같은 감정들을 의료화하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


질병을 마케팅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프로작" 시대에 흔한 일이 되었다. ... 사회불안장애와 범불안장애에 대한 홍보(제약회사는 명민하게도 "전문가"의 목소리와 환자의 목소리를 적절하게 섞었다)는 어떤 상태에 대한 진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와 같은 상태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미디어를 통해 글라소스미스클라인은 사회불안장애와 범불안장애를 흔하지만("정신 질환"과 관련된 오명을 줄이기 위해) 비정상적인 상태로(팍실을 통한 의학적 개입의 대상이 되도록) 재정의했다.


팍실은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알레르기 질환 치료제인 클라리틴 다음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약품이 되었으며, 2001년에는 아홉 번째로 많이 처방되는 약이 되었다.


2002년 연방 법원은 팍실 광고를 일시 중단하라는 광고를 내렸다. 습관성이 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 광고가 금단증상의 심각성을 숨김으로써 환자와 의사를 속였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몇 건의 소송이 이어졌다. ...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팍실 마케팅은 걱정이나 수줍음 같은 감정들이 의학적 문제이며, 팍실이 그 치료제라는 암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불안의 의료화를 증가시켰다.



2부. 사례들

2장. 대머리는 어떻게 남자의 병이 되었나

잘 늙는 법에 대한 프로그램, 탈모의 치료법을 다룬 잡지 기사, 최신 발기부전 약품을 홍보하기 위한 이미지들은 남성에게 끊임없이 "의사와 상담하세요"라고 말한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바라보다가,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문제로 여기게 된 이러한 변화는 의료화의 한 사례이다.


남성성의 의료화에 대한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 남성 갱년기 ... 탈모 ... 발기 부전 ... 이 사례들은 남성과 의료인, 그리고 기업가 모두가 오랜 세월 품어 온 욕망을 들춰낸다. 나이가 들어서도 '남성성'의 본질과 젊음의 상징들을 잃지 않고 싶어 하는 욕망 말이다. ... 의료 및 제약 산업이 남성 갱년기와 탈모에 대한 치료제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이것들이 의학적 증상들인지, 또는 그것의 병변을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출산, 월경전증후군, 갱년기, 여성의 섭식장애에 대한 방대한 문헌들은 여성의 일상적 삶이 남성보다 훨씬 더 의료화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 앨런 피터슨은 ... 유럽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 남성의 몸이 여타의 몸들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 여성이 남성보다 의료화에 취약한 이유가 생리적 과정(월경, 출산 등)이 가시적이고, 여성이 공동체 내에서 떠맡고 있는 사회적 역할(예를 들어, 재생산)로 인해 의학적 감시의 대상이 되며, 진료의 영역에서 대체로 남성에 종속적인 지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노화가 저항과 공포의 대상인 연령차별(노인 차별)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의료화하고 있다.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구성물들은 육체적 매력과 젊음에 상당히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따라서 나이 든 여성은 이 같은 문화적 이상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생리학적으로 테스트스테론은 성 욕구와 근육 조직, 공격적 행동, 모발 성장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남성성으로 여겨지는 여타 특성들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노년기 남성들은 남성 갱년기, 남성 완경, 남성 감퇴기 또는 노인 남성호르몬 결핍증이라 불리는 일련의 모호한 징후들에 테스토스테론 요법을 처방받고 있다.


테스토스테론 요법의 안정성이나 효과성, 그리고 남성 갱년기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학적 지식은 불확실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특성인 출산 능력의 정지로 나타난다. ... 남성은 노화에 따라 생식능력의 저하를 경험하지는 않지만, ... 성욕, 정력, 체력 등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본래는 성미숙증, 성선기능저하증, 고환 기능 정지 등의 치료에 처방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 남성 갱년기 치료에 테스토스테론 사용을 권장하는 광고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성미숙증의 경우 충분한 시장을 형성하기에는 그 사례가 너무 희귀했"기 때문이다.


남성 갱년기는 명확한 경계선 있거나 손쉽게 확인하고 정의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감소로 정의될 수 있으며, 피로감, 성욕 감퇴, 우울증 등과 같은 증상들을 동반한다.


"남성 갱년기"나 "남성 완경기"가 생리학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용어인 이유는 여성과 달리 모든 남성이 생식선 기능 정지 및 생식능력 정지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실 내 표준 검사법은 현재 없으며", 남성 갱년기를 진단하기 위한 어떤 합의도 없는 상태다.


나이가 들면서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남성 갱년기 같은 병리학적 현상으로 직결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남성 갱년기라는 생각과 테스토스테론 대체 요법의 사용은 제약 분야의 기술적 발전, 남성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약물 처방 범위의 확대에 힘입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운동 능력의 저하를 최근에 느끼신 적이 있나요?" "저녁을 드신 뒤 졸음이 쏟아지나요?" 같은 질문들은 명확한 의학적 징후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드로겐의 홍보 문구들은 은연중에 일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 같은 증상들을 의사의 상담이 필요한 의학적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테스토스테론 요법은 언론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다양한 매체에서 "테스토스테론 : 노화하는 남성을 위한 주사 한방" 혹은 "당신은 강력한 남자입니까? 테스토스테론이 침실은 물론 체육관에서도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같은 제목을 달고 기사화되었다.


노화기에 접어든 수백만 명의 베이비붐 남성들은 미디어와 제약 업계의 매력적인 시장이 되었다.


역사 속에서 탈모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다양한 묘약과 비약을 비롯한 치료제를 만들어 냈다. 기원전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열한 가지의 탈모 치료제 제조법이 담겨 있다.


"안드로겐탈모증"이라는 용어는 남성의 탈모(탈모증)가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의 영향과 유전의 요인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등장했지만, 안드로겐탈모증을 질병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 차가 있었다. ... 남성형 탈모의 정체와 그것의 명확한 병리학적 근거에 대해 학술 논문들이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입장들은 남성형 탈모의 의료화 과정과 공존하고 있다.


탈모치료에서 로게인과 프로페시아 같은 약품들, 그리고 모발 이식술은 효과적이긴 하나 기적의 완치약은 아니다. ... 치료에 쓰이는 비용은 상당하다. ... 이런 값비싼 의약품들은 제약 회사들에게 수익을 보장하는데, 이는 투약을 중단할 경우 다시 탈모가 진행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약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식된 모발의 숱을 유지하려면 반복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므로 시장의 수지에 맞는다.


다른 홍보물에서는 "핏줄보다 강력한"이라는 문구를 쓰며, 대머리 아버지 옆에 앉은 아들이 "아빠 사랑해요. 그렇다고 하루빨리 아빠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로게인은 한 때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신체적 변화를 이제는 남성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약으로 묘사되었다.


남성의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시험하고 있던 피나스테라이드라는 약품이 발모에도 효과가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현재의 과학적 기준에서도 탈모 초기에는 프로페시아를 사용하는 방법이 옳다고 보는데, 대부분의 안드로겐탈모증에서 "가장 현실적인 치료법은 예방과 유지"이기 때문이다. 프로페시아는 이제 막 탈모가 시작된 남성에게는 효과적인지만, 모발을 재생시키지는 않는다. ...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은 남은 생애 동안 계속해서 프로페시아를 투약해야 하며, 중단할 경우 탈모가 다시 진행된다.


탈모에 관한 의학적 교재와 논문들은 탈모가 가져오는 삶의 질 저하와 심리적 압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 실제로 일부 의사들은 탈모와 연관된 부정적 심리 상태를 인용하며 탈모에 대한 의학적 치료를 정당화하였다.


허쉬 쵸콜릿은 광고에서 탈모가 진행 중인 남성을 묘사하며 이런 문구를 달았다. "변화는 나쁘다." 탈모 치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이 광고는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달갑지 않은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공고히 한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이 문제(발기부전)를 다루는 주된 틀은 그것이 심인성 질환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1990년에 들어 이는 "성기능 장애"로 재정의되었고, 이에 대한 치료를 비뇨기과 의사, 생의학 산업, 대중매체, 그리고 기업가들이 장려했다.


발기부전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비아그라의 제조사인 화이자 제약이 홍보를 시작하기 전부터 있었다. 미국 내 발기부전의 유병률은 1천만~2천만 명가량으로 추산하는 사람부터, 전체 미국 남성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성기능장애"를 안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아그라의 판매고는 경이적이었다. ... 2003년, 비아그라는 판매량 17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로써 6백만 명의 남성이 복용하게 되었다.


비아그라 이전에 성기능장애에 대한 의학적 치료는 대체로 중증 장애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제는 간헐적 발기부전 같은 경증 장애와 성관계에서 "시동"을 걸거나 힘을 더하는 증진제로도 쓰이게 되었다.


남성 갱년기와 탈모는 노화하는 남성의 신체가 부분적으로 의료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더불어 발기부전에 대한 비아그라의 선전은 초기 대상이었던 노년기 남성에서, 이후 대부분의 남성을 잠재적 사용자로 하는 폭넓은 시장으로 확대되었다.


어떤 증상을 질병으로 부르거나 이에 대한 치료제를 제공함으로써, 의료가 일상생활에 침투해,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성의 신체 기능을 재정의해 왔음을 볼 수 있다. ... 남성성의 유지가 남성의 신체 기능과 연계되면서 남성은 신체 기능이 떨어질수록 자신의 남성성이 위태로워진다고 느낀다. 이는 남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신체적 능력을 보존하고 회복하기 위한 의학적 해법을 찾도록 한다. 특히 "노화라는 우리 모두의 문제는 자연적인 것으로, 불가피하면서도 두려운 일이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도록 부추기는" 서구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제약회사들은 소위 생활 밀착형 약품이라는 것들을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삶을 제약할 수는 있는 증상들을 치료한다."라며 홍보한다. 생활 밀착형 제품은 이런 형태의 의료화에 이바지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3장. 성격에서 질병으로

브룸과 우드워드는 만성피로증후군 사례를 통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진단을 찾아 헤매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정당화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어떤 경우, 진단은 일종의 자기 낙인이 될 수 있는데, 이는 한 개인에게 새로운 공적 정체성, 즉 어떤 특정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해 온 대로, 정신의학에서 진단은 꼭 객관적 증상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볼 수만은 없으며, 오히려 사회적/정치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협상과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정신 질환은 대부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 질환 진단을 위한 공식 안내서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DSM)]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 DSM이 가지고 있는 정신의학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이 편람은 과학적 자료라기보다는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타협, 과학적 근거와 보험 청구서에 적을 자료가 뒤섞여 있는 혼합물"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1980년 개정된 DSM-Ⅲ은 아동기를 넘어선 과잉행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 같은 관심이 확대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첫째, 질병을 정의할 때 병인보다는 증상들에 초점을 두는 DSM-Ⅲ의 전반적 경향에 맞춰, 일차 증상들에 따라 과잉행동 혹은 주의력결핍으로 재분류되었다.


둘째, 공식 진단이 포괄하는 행동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수업 중 자주 소리를 지른다."처럼 학교생활과 관련된 증상도 있었지만, 대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것들(예를 들어, "생각하기 전에 행동한다", "쉽게 주의가 산만해진다")도 있었다. 이와 같은 진단 범주의 변화는 DSM-Ⅱ에서 과잉행동 반응이나 가벼운 뇌 손상으로 진단받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사람도 이제 DSM-Ⅲ에 따라 ADD(주의력결핍장애)로 진단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1987년 개정판인 DSM-Ⅲ-R에서는 ADD의 명칭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바꾸었다. ... ADHD라는 이름으로 인해 과잉행동과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주의력결핍 증상이 덜한 아동들도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준에 따라 ADHD 진단 아동이 50% 더 늘어났다. ... 아동기에 과잉행동 진단을 받지 않은 "ADHD 성인"까지 정의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예를 들어, ADHD 증상들이 발생하는 환경에 직장이 추가되어, "학교나 직장에서 부주의하거나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되었다.


아무도 아동기의 울켄버그(사진가 겸 사진편집가)를 과잉행동으로 진단한 바 없었지만, 이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실패들, ... 불필요했으며, 용납할 수 없었던 그 실패들"이 모두 ADHD 때문이 되었다.


1990년대 초반, 성인 ADHD에 관한 대중서들이 여러 권 출간됐다. ... [그러니까 제가 게으르거나 멍청하거나 정신 나간 게 아니라는 말이죠?]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대중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성인 ADHD로 진단받은 것이 그 사람이 지게 될 사회적 책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강조했다.


성인 ADHD 개념을 더욱 확산시킨 것은 텔레비전 뉴스였다. 주요 뉴스들은 성인 ADHD가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각자 그럴듯한 견해를 내놓았다.


이런 메시지는 대중잡지에서도 되풀이되었다. [뉴스위크] 특집 기사에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13년째 졸업장을 따지 못하고 128곳이 넘는 직장을 전전한 38세 경비원의 이야기가 실렸다.


1994년, 화려한 학벌을 가지고 있던 두 정신의학자 에드워드 할로웰과 존 레이티가 쓴 베스트셀러 [왜 산만해지는가]의 출간으로 성인 ADHD에 대한 인식이 더욱 대중화됐다. ... 둘 다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하버드 의대 소속이라는 점이 이들에게 학문적 권위를 더해 주었지만, 성인 ADHD 분야에서 이들은 사실 과학 연구자라기보다는 전문적인 옹호자에 가까웠다.


가장 큰 ADHD 옹호 단체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아동 및 성인협회(CHADD)는 지난 10여 년간 눈에 띄게 성장했고, 이는 성인 회원, 특히 ADHD를 겪고 있는 성인들이 충원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CHADD는 대중과 전문가들을 하나로 끌어모아 ADHD에 대한 이해와 수용, 치료법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대중에게 성인 ADHD의 존재를 널리 알렸고, 이를 통해 실제 (의사의) 진단만큼이나 개인이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마음 자세나 생활 태도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ADHD 때문인 것으로) 정당화하는데 기여했다.


ADHD를 평생에 걸친 장애로 재정의하면, 아동과 성인이 평생에 걸쳐 약을 먹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새로운 정의는 다양한 생활환경에서 나타나는 더 많은 특정 증상의 행동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 이제 직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더라도 특정 대인 관계나 여가 활동 중에 심각한 주의력 결핍이 나타난다면 ADHD로 진단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 포괄적인 DSM-Ⅳ의 진단 기준이 정신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자, 일부에서는 성인이 기억을 더듬어 어린 시절에 나타난 ADHD 증상들을 반추해 보는 과정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성인 ADHD의 범주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ADHD에 대한 설명을 접한 성인 대부분이 "이건 내 이야기인데"라고 느끼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해 전문가의 승인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자기 낙인, 정보 교환, 진단 추구는 특정한 성인 문제들을 의료화하는 사회적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없었다면, 성인 ADHD는 굉장히 제한적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프로작(화이자의 우울증 치료제)은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정신 자극제처럼 그려졌다. 프로작은 몹시 불안정한 사람만을 위한 약품이 아니었다. 이 약은 가벼운 심리적 문제나 고충을 겪는 사람들의 삶도 개선해 줄 수 있었다.

프로작 이후 출시된 관련 약품들의 인기는 삶의 경미한 문제에도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용인되는 사회적 배경을 만들었다. ... 여기서 핵심은 우리 문화가 (약품에 의존하는 것을 불성실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기던) "약학적 칼뱅주의"에서 벗어나 인체의 거의 모든 기능을 합성 약물을 통하여 증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유전학은 의학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패러다임으로, 점점 더 많은 문제들이 유전자(유전자 표지자 또는 유전적 원인) 때문인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관리 의료는 정신의학을 포함한 모든 의학 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환자당 받을 수 있는 심리 치료의 횟수를 엄격하게 제한을 둔다. ... 일부 연구자들은 관리 의료 안에서는 (심리 치료가 아닌) 약물치료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관리 의료가 제약 산업의 성장을 부추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 "대화치료"나 기타 심리요법이 아닌 약물로 치료하는 정신의학자와 의사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게 됐다. 관리 의료는 점차 정신의학자들을 "대화 치료"에 익숙하지 않은 일차 진료의로 만들었다.


나는 과잉행동의 의료화에 따른 부작용들을 개략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런 부작용에는 ①전문가에 의한 통제(문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권한을 의사와 같은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 ②의료적 사회통제(특히 약물과 수술적 요법의 사용), ③사회적 문제의 개인화, ④특정 행동이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의학적 용어만으로 설명되는 일탈 행동의 탈정치화 등이 있었다. 뒤이어 나는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가 사람에서 생리학적 기능이라는, 책임을 묻기 모호한 차원으로 옮겨져 버리는 점을 추가했다.


성인 ADHD에서 가장 심각한 부분은 개인적 책임의 전가와 삶의 문제에 대한 개인화일 것이다.


1)저성과의 의료화

... "만성적 낙제자"를 자신들의 독자층으로 보았고, 현재 겪는 어려움이 자기 절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독자들에게 말했다.

성인 ADHD의 쟁점은 행동이 아닌 성과다. "거칠게 말하자면, 주의력결핍장애는 아동이 나이가 듦에 따라 행동과 관련된 문제에서 성과와 관련된 문제로 옮겨 가게 된다. ... 산만함, 무책임, 꾸물댐, 그리고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고민한다."


ADHD 진단은 이들의 저성과에 의학적 설명을 제공하고 지난 행동들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해 주며 문제의 책임을 ADHD에 전가함으로써, 자책할 일을 줄여 준다.


ADHD 진단은 개인들을 더 넓은 범주의 "장애"에 집어넣었다. 이는 한편으로 특정 복지 혜택이나 편의를 요청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었다.


ADHD는 일차적으로 과잉행동에서 주의력결핍으로 진단의 초점을 돌리고 연령 기준을 늘리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이는 기존의 과잉행동 아동이라는 개념에서 제외되었던 나머지 인구 전체(와 그들의 문제)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성인 ADHD 사례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비전문가 집단이 광범위한 의료화를 촉진했다는 점이다. 비전문가-전문가 사이의 연합은 환자들과 전문가들이 내건 주장이 서로 일치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 비전문가에 의한 성인 ADHD 홍보와 자가 진단의 범람은 정신질환과 관련된 낙인 이론의 기본 전제와 상충된다. ... 진단받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홍보했던 성인 ADHD는 사회학자들이 보통 연구하는 여타 정신 질환 진단과는 다른 종류일지 모른다. 즉, 진단이 적용될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질환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약물치료는 사회통제의 모습을 띤 증강으로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의학적 범주들의 확장은 의료전문가들이나 의료보험 업계의 수용 능력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헌신적인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수용력 높은 잠재 고객이 존재한다면 빠르게, 그리고 별 마찰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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