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4/4

함께 책 읽기 ⑲ -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피터 콘래드

by 정채환

3부. 한계와 결과

6장. 의료화의 측정과 분류

의료화가 증가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들부터 열거해 보겠다.


인간 문제에 대한 의학적 범주의 급증

지난 한 세기 동안 특정 문제들이나 증상들이 의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문제들에는 정신 질환, 알코올의존증, 아편중독 ... ADHD,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식욕부진 ... 월경전증후군, 알츠하이머병 ... 범주의 증가를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척도는 DSM의 진단 범주 개수인데, 1952년 초판에서 106개였던 진단 범주가 1994년 판 DSM-Ⅳ에서는 3백개로 늘어났다.


의학적 범주 및 진단의 급증과 더불어, 기존의 범주들도 확장되고 있다. ...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 참전 군인들이 귀가한 후 나타난 ... 일련의 특징적 증상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에는 성적 학대나 강간, 폭행, 자연재해, 나아가 폭력이나 재난을 목격한 사람들까지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 알콜의존증의 의료화는 공동의존증 환자들, 다시 말해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알코올의존증 문제가 있는 사람의 음주를 조장하거나 이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사람들로까지 확대되었다. ... 이는 달리 말하면, 의료화된 범주 하나가 특정 문제에서 타당성을 얻으면, 비슷하거나 연관된 유사 문제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때로는 비만이나 노화 같은 일반적인 범주도 의료화된다. 비만은 언제나 사회적·개인적 문제였다. ... 이제 비만은 고혈압, 심장병, 당뇨 같은 의학적 문제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질병이 되었다. ... 게다가 노인들은 젊은 성인들과 달리 오랫동안 지나치게 많은 약물을 복용해 왔는데, 특히 65세 이상 인구에서 향정신성약품의 사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한 젠더 관련 분야 ... 여성이 ... 출산, 월경, 피임, 불임, 월경전증후군, 임신, 완경 ... 발기부전, 탈모, 남성갱년기 등 남성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질병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요컨대, 범주의 증가와 의학이 관할하는 영역의 확장은 지난 세기 동안 의료화가 증가했음을, 특히 지난 30여 년간 확연히 증가했음을 보여 준다.


위험의 과장과 의료화

1)여성 완경에 대한 호르몬 요법

완경에 대한 현대 의학의 관점은 천연·합성 에스트로겐이 개발되고, 관련 논문들이 발표된 1930년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완경의 '증상들'이 질병의 징후라는 의학적 주장들 때문에 완경이 의료화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학자들은 치료법이 생겨났기 때문에 의료화되었다는 반론을 펼쳤다.


초기 의학 논문들은 에스트로겐이 완경기 증상들을 경감시킬 수 있으며, 완경 같은 "호르몬결핍성 질병"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초기에는 자궁내막염 발생 증가 등 에스트로겐 요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 1980년대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복합 투여가 "안전한" 대체재로 등장하면서, 호르몬요법 처방이 다시 증가했다.


2002년 7월 ... 호르몬 요법의 위험성이 발견되면서 여성건강연구에서 진행하던 임상 시험이 중단된 사건이었다. ... 처음에는 8년 임상시험으로 계획되었지만, 5년째에 유방암, 관상동맥 질환, 정맥혈전색전증, 뇌졸중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 연구가 중단되었다.


여성건강연구에 기반을 둔 2003년의 연구는 삶의 질 측면에서 호르몬요법을 받은 집단과 가짜 약을 받은 집단 사이에 주목할 만한 그 어떤 차이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개정된 지침은 만성적인 증상에 대해 호르몬요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현재 사용 중인 사람들의 경우, 투여량을 차츰 줄여 나가다가 중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 호르몬 치료 요법을 통해 완경의 의료화를 경험한 여성은 2002년 기준 약 1천5백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유방 보형물

유방확대술의 새시대가 열린 것은 1960년 실리콘 유방 보형물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 1960년대 초반에서 1990년 사이, 약 2백만 명의 여성이 실리콘 보형물을 주입했다.


주요 언론과 학술 논문들이 보형물의 안전성에 의문을 표하며, 실리콘 유출, 유방 경화, 암 발병 및 자가면역 질환 등의 위험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고, 1992년 판매가 중지되자, 유방 보형물 사용이 급감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신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의료화된 증강 기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과 이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다. ... 성형수술의 폭발적인 증가는 신체 문제에 대한 의료화된 해법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러나 안전한 대체재인 식염수 보형물이 등장하자, 수술 빈도는 이전보다 더 높은 수치로 증가했다. 이는 의학적 유방 확대술에 대한 근본적인 수요가 크게 변화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유방 보형물의 사례는 호르몬요법의 미래를 보여 주는지도 모른다. ... 만약 더욱 안전한 대체재가 등장한다면, 호르몬요법의 궤적도 요방 보형물과 흡사한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의 증가

분석 결과,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으로 이어지는 진료 빈도가 1994년 3.4%에서 2000~1년 8.3%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내원 사유가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진료를 받은 청소년기 남성 10명당 1명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받았다.

이 연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첫째, 의료화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정 진단명 이외의 사례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대부분은 우울증, 기분장애, "신경증성 장애" 등 각기 다른 진단 때문이었다. 1/5은 심지어 아무런 정신 질환 진단도 받지 않았다.


둘째,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향을 살펴보면, ...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는 아동에 대한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이 증가해 왔음을 보여 준다. ... 우리는 이 증가세가 해당 기간 출시된 새로운 약품뿐만 아니라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소비자 대상의 직접 광고가 거부감의 저하로 이어진다는 가설을 직접 증명할 수 없지만, ... 기타 의약품의 처방이 감소해 가는 추세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의 처방의 폭발적인 증가가 일어난 데에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최근 아동이나 청소년의 향정신성의약품 남용이 큰 우려를 낳고 있으며, 해당 의약품의 위험성과 잠재적 부작용에 대한 불안이 커져 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감정적 어려움이 점차 의료화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10~20년 전에는 약물치료가 부적절하다고 여겨졌던 문제들이 이제는 향전신성의약품으로 관리된다. 심지어는 별다른 정신 질환 진단이 없어도 이런 처방이 이루어진다.


*미국이 절반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 첫째, 인구 중 절반이 인생 중 정신 질환을 한 번 이상 경험하기 위해서는 정말 다양한 범위의 행동이 정신 질환이라는 패러다임 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 미국 공존질환조사 같은 연구들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증상으로 보고, 이를 병리화해 추정 진단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 (정작)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는 여전히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과장된 유병율이 나온 것은 증상들을 표준화하고 탈맥락화된 조사 문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항들은 부정적인 사건을 통해 삶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고충과 실제 병리 현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즉, 두 가지 모두 똑같이 정신 질환의 증상들로 분류하는 것이다.


DSM에서는 (예를 들어, 우울증 진단을 위해서는) 몇 가지 이상의 증상들(잠들기 어렵다, 식욕이 줄었다, 피곤하다, 기분이 우울하다,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진다 등)이 나타나야 하는데, ... 공존질환조사 같은 연구에서는 ... 지난 2주간 위에 열거된 "증상들" 중 하나라도 겪은 적이 있었는지 질문하는 식이다. ... 진료실에서 의사가 문진할 때와는 달리 개인적 "증상들"의 배경이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 존재하는 정신 병리의 총량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다. 이런 연구는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고통을 심각한 정신 질환과 합쳐 버린다.



7장.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

생명 공학

1)제약 산업

제약 회사가 점차 의료화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로작의 시대 이후로, 제약 산업은 의사, 특히 대중을 상대로 점차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인다.


FDA의 논리는 제품 광고가 교육적인 측면이 있고, 대중의 "인식을 개선"해 줄 수 있다는 것이지만, 광고에 대한 규제 완화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제약 업계는 자신의 상품을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광고할 수 있게 되었고, 제품 판매를 위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비아그라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당뇨, 전립선암 등 기저 질병에 의한 노인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제로 홍보되었다. 하지만 더 큰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화이자는 곧 발기부전을 흔히 나타나는 문제로 홍보하며, 비아그라를 의학적인 해결책으로 언급했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남성이 발기부전이나 성기능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약 산업은 발기부전의 개념을 확장하며 비아그라와 같은 약품의 사용을 통해 성 기능과 만족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인식을 교묘하게 부추겼다.


2000~03년 사이 아동기나 청소년기의 행동 관련 약물에 대한 지출 비용이 77%나 상승했다. 행동 관련 약품은 오늘날 아동의 약물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그 수요가 항생제와 천식치료제를 넘어서고 있다.


2)유전학과 증강

단일 유전자와 관련된 질병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유전적 복합성이 작용(여러 유전자가 동시에 작용하거나, 환경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유전학이 장차 더 중요해지고, 의료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전학과 결부된 의료화의 상당 부분은 내가 "생의학적 증강"이라 이름 붙인 영역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 자녀나 자신의 몸, 혹은 정신적·사회적 능력의 증강을 원하는 막대한 수요가 있다. 의학적 증강은 이런 개입의 한 형태이다. ... 증강은 개인 간의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성장호르몬제 휴마트로프를 평균 신장 하위 1.2백분위수인 아동에게 처방할 수 있도록 승인하면서 이용자 수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 이는 역설적으로, 치료받은 아동이 평균 신장 하위 1.2백분위수에서 벗어나면, 다른 아동이 그에 속하게 되면서 시장은 계속 늘어난다. 애초에 예상한 40만 명보다 더 많은 아동이 치료 기준에 포함되었다.


이런 생의학적 증강 사례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상당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아이들을 증강하고 싶은 시장이 존재하고, 생명과학 회사들은 이 같은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둘째, 제약 회사 등 생명공학 회사들은 시장 확대에 계속 힘쓸 것이다. 셋째, 생의학적 증강의 사용과 홍보는 저신장처럼 다양한 삶의 문제를 의료화할 것이다.


소비자

성형수술은 의학 내 소비자중심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 간단히 손만 대는 것에서 "완전히 변신"하는 수준까지, 몸은 하나의 기획 대상이 되었고, 의학은 증강의 도구가 되었다. 어찌 보면 부위별로 몸 전체가 의료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성인 ADHD는 아서 바스키와 조너선 버로스가 언급했듯, 가벼운 증상들이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대중의 인내력 감소를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 가장 눈에 띄는 예는 불행의 의료화와 값비싼 항우울제 치료의 확산이었다.


CHADD, 인간성장재단, 미국 정신질환협회 같은 비영리 소비자단체들은 ... 제약 회사들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 대체로 약품 개발과 치료를 강력히 지지하는 편인데, 이럴 때는 어디부터가 제약 회사 홍보이고 어디까지가 소비자 권리 추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기업과 환자 대변 단체의 제휴가 의료화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단적으로 말해 준다.


모든 제약 회사들과 대부분의 환자 대변 단체들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료로 가득한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많은 경우, 특정 질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가 검진법을 게시하거나, 의학적 치료가 가져다줄 수 있는 이점에 관해 설명한다.


관리 의료

관리 의료는 의학적 치료에 대한 사전 승인을 요구하고,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종류를 제한한다. 이 때문에 제삼자인 지불자, 즉 관리 의료는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나 환자가 받게 되는 돌봄의 측면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관리 의료는 의료의 영리화에 기여했고, 의료 기관과 의사들이 환자의 치료보다는 이윤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관리 의료 기구는 보장하지 않는 항목을 통해 의료화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 결과적으로 관리 의료는 의료화에 있어 선택적인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의료화

의료화의 동력이 되는 주체들이 급증하면서, 이제 전문적인 의료화 주장 제시자들보다 기업과 시장의 이해관계가 의료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약을 세상에 내놓을 때 제약 회사는 제품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의학적 정의 혹은 잘 쓰이지 않던 정의를 홍보하거나(팍실과 사회불안장애), 질병의 정의를 바꾸려고도 하고(인간성장호르몬과 특발성 저신장증), 혹은 기존 의학적 문제에 대한 정의를 확장해 치료 대상을 늘리려는 시도를 하기도(비아그라와 발기부전) 한다.


혈압 140/90수은주밀리미터 이상을 고혈압으로 보는 정의 ... 120/80을 "고혈압 전단계군"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규정함으로써 다른 심혈관계 질환 위험 인자를 포함해 3천만명이라는 고혈압 시장을 개척하게 되었다. 제약 회사의 이윤 추구에 따른 고혈압 정의의 확장은 [뉴욕 타임즈] 사설에서도 다뤄졌고, 순환기 내과의와 여타 의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제약 회사는 정상과 병적 상태의 경계에 점차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통제의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어 가고 있다. ... 특히 우려를 낳는 부분은 "기업이 환자보다 주주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주주의 이익과 합리적인 약물 처방이라는 환자의 필요가 때로 상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의료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 예를 들어, 일본에 진출한 제약 회사들이 "가벼운 우우울증"을 질병으로 홍보하자, 1999년 이후 SSRIs 치료제 판매가 일본에서 급격히 늘었다.


사회과학자들과 비판론자들은 연구의 초점을 의료화의 새로운 동력을 밝히는 데 돌릴 필요가 있다. 즉 생명공학의 발전과 제약 산업의 마케팅 ... 소비자 수요 ... 관리 의료 ... 인터넷의 효과 ... 의료 전문가와 의사 ... 의료화에 저항하는 소수 의료인과 대중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8장. 의료화의 사회적 결과들

이 책에서 제기하는 우려는 인간의 상태에 대한 의료화의 만연, 또는 과잉 의료화라 부를 수 있는 현상이며, 이것이 감소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결과

사회적 측면에서, 의료화는 광범위한 문제들에서 환자 역할을 허용함으로써, 해당 문제를 겪고 있는 개인들에게 쏟아졌던 비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예를 들어, ADHD, 알코올의존증, 발기부전 등) 몇몇 형태의 의료화(예를 들어, 알코올의존증, 식욕 부진, 등)는 해당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여 주거나, 개인이 사회에서 좀 더 적절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1)모든 것의 병리화

사회의 광범위한 의료화에 대한 내 주된 우려는 인간의 다양성을 병리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다. 학습 능력의 차이는 ADHD나 학습장애가 되고, 성욕이나 성 기능의 차이는 성기능장애가 된다. ... 낸시 프레스의 지적대로, "의료화는 단순히 인간 기능의 다양성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들을 병리화한다." 가장 큰 위험은 모든 차이를 병리화함으로써 인간 삶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갉아먹게 된다는 점이다.


... 클리프턴 미도르라는 의사가 ... "최후의 건강인"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 "결국 모든 사람은 환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문화의 한가지 아이러니는 우리의 건강이 얼마나 증진(사망률 감소, 기대 수명의 연장, 의학의 발달 등)되는지와 상관없이, 건강 문제에 대한 보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 가벼운 신체적 증상들이나 불편한 몸상태를 그냥 넘어가지 않게 된 미국인들이 의료화의 중요한 지지자가 되었다.


2)정상성의 의학적 정의

의학 용어들이 삶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기대되며, 무엇이 수용될 수 있는지를 점차 정의해 가고 있다.


남성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한 성생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배우자들의 만족 역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 50세 이상의 경우, 성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한쪽의 성기능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관계의 질에 더욱더 많이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생활에서 수줍음을 많이 타거나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늘 있었다. ... 이제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인간 행동의 정상 범위를 벗어나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실체가 되었다.


이(성장호르몬을 이용한 아동치료)는 결과적으로 다른 아동을 키가 커진 다른 아동 대신 하위 집단에 속하게 만든다는 맹점이 있다. 이는 결국 잠재적 치료 대상이 될 아동의 숫자를 계속해서 늘리는 셈이다.


제약 산업은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 같은 강력한 자원을 이용해, 무엇이 사회에서 정상이고 기대치이며 용인 가능한지를 규정할 수 있는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


3)의학적 사회통제의 확대

의학적 규범의 정의는 그 자체로 문화적 사회통제가 되며, 나아가 신체, 행동, 건강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창조해 낸다. 이는 의학이 말하는 기대치가 행동과 행복의 범위를 결정하고, 의학이 말하는 규범이 사람들의 행동을 지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확대된 의학적 사회통제의 또 다른 형태인, 의학적 감시는 점점 더 많은 수의 개인을, 심지어 현재 아프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의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간주돼, 위험 요인의 변화를 감시받는다. ... 이런 감시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서 의학이 수행하는 역할이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의학적 사회통제에는 개인의 행동, 신체, 정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의학적 치료, 특히 약물이나 수술적 개입이 포함된다.


다양한 형태의 행동이 개인의 책임으로 비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어떤 문제의 원인이 생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의학적 핑계"의 대상이 되면, 해당 행동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사회적 대응은 처벌에서 치료로 바뀐다. 초등학교 내 문제 행동에 대한 의학적 진단과 치료에서부터 중범죄에 대한 정신 이상 항변까지 의학적 핑계의 범위는 대단히 넓다. ... 이 같은 책임 전가는 악영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4)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사회적 문제의 개인화"는 여전히 의료화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의료화는 개인의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힘을 불투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신경생물학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우울증은 점차 유전학적 관심을 띠게 되고 주로 항우울제를 이용해 치료하게 된다. 이때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사회적 환경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조금 다르지만 비아그라와 발기부전의 사례에서도 (배우자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기보다는 생리학적 치료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너무나도 자주, 유전자가 곧 질병의 원인으로 간주된다. 이는 유전자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착각을 심어 주지만, 몇몇 연구들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특성과 우리가 가진 질병을 설명하는 좀 더 그럴듯한 요인임을 보여 준다.


5)소비자와 의료 시장

미국(및 뉴질랜드)에서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는 온갖 질병의 이름과 이에 관한 치료법을 홍보하는 주요한 도구다. 흔한 광고 문구는 "당신에게 꼭 맞는지 의사와 상담하세요."라고 추천한다. 이는 제약 회사, 소비자, 의사 사이에 형성된 새로운 관계를 반영한다.


제3의 지불자(예를 들어, 보험 회사)가 (판매자, 곧 병원에) 약품이나 의료비를 지불하는 경우, ... 보장성의 확대나 축소에 따라 의료화의 범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의료 시술과 은행이 연계된, 성형수술을 위한 대출상품 광고를 인터넷에서 보기도 했다. 즉 의료화 증가와 의료영리화가 융합되고 있는 셈이다.


의사 역할의 변화

나는 의사들이 학습 문제나 저신장, 작은 가슴, 산만한 성인의 삶 등에 의학적으로 개입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고통을 경감시켜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고통의 경감에 대한 의학의 권한은 어디까지 부여되어야 할까? 의학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인간의 몸과 마음 어느 곳이나 다 (개입해도) 괜찮을 걸까? ... 인간의 신체와 정신, 행동에 영향을 주는 고통 가운데 의학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의료화에 대한 작은 저항

게이 인권 운동은 동성애의 정의를 질병에서 생활 방식으로, 나아가 지향으로 바꾼 성공적 저항의 사례로 손꼽힌다.


또 다른 목표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의학에서 사회문제로 옮겨 오는 것이었다. ... 장애인 권리 운동은 장애 개념의 의료화와 장애에 대한 통제에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자연출산 운동" ... 의 핵심은 출산의 의료화를 줄이는 방법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움직임이었다. ... 두드러진 특징은 출산에 대한 과다한 의학적 개입을 줄이고, 산모에게 선택권과 통제권을 되돌려 주며, 출산 과정에 아버지가 참여하는 부분이었다.


의료화의 새로운 지평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여파로, 향후 의학적 문제와 유전학을 연결 짓는 주장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에는 유전학적 증강이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향후 수십년 안에 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 대부분의 유전적 특성이 대단히 복잡하고 쉽게 조작하기 어렵지만, 어떤 형태로든 산전 유전자 개입이 선택권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노화는 벌써 의료화되었지만, 항노화 약품의 등장은 거의 모든 연령대를 의학적 개입의 대상으로 재정의했다.


잠재적 질병의 "위험 요인"을 초기에 발견하는 기술적 역량이 생기면서 질병과 위험성의 개념은 점차 뒤섞여 가고 있다. ... 이런 위험 요인 자체를 "전 질병"으로 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 이런 "전 질병"은 점차 확대될 것이며, 따라서 모두가 잠재적으로 의학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 최후의 건강한 사람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의료화의 확산은 문화적 저항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장벽 때문에라도 불균형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의료화는 점차 지구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의료화가 축소되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의학적·사회적 결과가 무엇이건 간에, 의료화는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더욱 주도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의료화는 사회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옮긴이의 후기]

왜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가 성격이나 개성이 아니라 '병'임을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2016년 기준, 한국은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가 1인당 14.6회로, OECD 평균인 6.8회보다 2배 이상 많으며 이는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 사망 전 3개월 의료비가 그해 전체 의료비의 절반이 넘는 50.4%에 달한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단어나 병명 중에서 ... 인간의 개성이나 하나의 표현형으로서의 '상태'(condition)가 의료화의 과정을 통해 '문제'(problem)가 되고 정착되면서 '질병'(disease)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상태, 문제, 병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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