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1/4

함께 책 읽기 ⑳ - 맹자, 맹자

by 정채환

■ 읽게 된 계기

아마 20대 초반쯤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샀다가, 2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책장을 펴보았는데 생각처럼 잘 읽히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시도하고 중단한 끝에 겨우 다 읽었던 책이다. 이번에 다시 읽은 《논어》가 읽기 좋게 편집이 되어 있길래, 예전보다 잘 읽힐 것 같아 같은 출판사 고전시리즈로 나온 《맹자》를 다시 샀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그래도 어찌어찌 한번 다 읽어본 책이어서 막막함이 덜했고, 사서(四書)를 정리해 보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역시 읽기 좋게 편집되어 있기도 해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전보다 수월하게 읽었다.



■ 감상 및 추천 : 주요 문장 중에서 다시 뽑은 10개의 문장.

3.2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법

孔子曰: "否, 我四十不動心." ... 曰: "不動心有道乎?" ... 孟施舍之所養勇也. 曰: 視不勝猶勝也,

공자왈 부 아사십부동심 왈 부동심유도호 맹시사지소양용야 왈: 시불승유승야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舍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

양적이후진 려승이후회 시외삼군자야 사기능위필승재 능무구이이의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마흔 살부터 마음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 공손추가 말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데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 맹시사가 용기를 기르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이길 수 없어 보여도 (오히려) 이길 수 있다고 여긴다. 적을 헤아린 뒤에 나아가고 승리를 이리저리 헤아린 뒤에 싸운다면 이것은 삼군(의 많은 적)을 두려워하는 자다. 내가 어떻게 기필코 이기기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다.

: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생각이 난다. 사실 수영 배우기의 반 이상은 '여기서 빠져 죽을 일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바로 서기만 하면 가슴팍까지 물밖으로 나옴에도, 눈과 귀가 물에 잠기고 코에 물이 조금이라도 들어올라치면 꼭 당장 빠져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조금씩 더 참으면서 반복해서 머리를 물에 담그고, 절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꾸 되뇌다 보면 어느새 그 두려움이 차츰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수업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익숙하지 않은 일, 처음 해보는 일, 잘해본 적이 없는 일을 새로 하려면 늘 두렵다. 누구나 두렵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안 될 일이다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상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도 않으면서 *진지한 마음으로 끈질기게 마주하다 보면, 빈틈이라고 전혀 없어 보이던 바윗돌 같은 일에도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자세로 임한다고 모든 일이 다 성공적인 결과로 끝나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래도 그냥 해보는 거다. 도전할 때마다 어찌 매번 성공하겠는가? 다만 지레 겁먹고 피하지 않고 한 번 부딪쳐볼 뿐이다.


3.7 화살 만드는 자와 갑옷 만드는 자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惟恐不傷人, 函人惟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맹자왈: 시인기불인어함인재 시인유공불상인 함인유공상인 무장역연 고술불가불신야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째서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인하지 못하겠는가?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게 할까 걱정하니, (병을 고치는) 무당과 (관을 만드는) 목수도 또한 이와 같다. 따라서 기술은 (선택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화살을 만드는 사람보다 누군가를 보호하는데 쓰이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그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는 더 인仁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을 보호하려고 만든 갑옷을 입고 무고한 양민을 학살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화살로 교수대에 달린 밧줄을 끊어 목 매달린 의적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기술의 선택과 제품의 개발의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사용하느냐도 그 못지않게 중요할 것 같다.

사회에서는 누구나 더 인정받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한다. 각자가 선택한 기술(직업)의 중요성과 연구 및 활용의 탁월함은 지위, 권한, 금전이라는 인정(보상)으로 평가된다. 더 큰 인정을 받는 직업을 선택해서 더 큰 보상을 받는 것도 좋고, 누구나 원하는 바이다. 전에 책에서 읽은 말을 빌리자면 '무엇이 될 것인가?(직업)'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그래서 그 직업을 가지고)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치)'에 대한 고민도 더해진다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4.10 농단하려는 자는 누구인가?

有賤丈夫焉, 必求龍斷而登之, 以左右望, 而罔市利, 人皆以爲賤. 故從而征之, 征商自此賤丈夫始矣.

유천장부언 필구농단이등지 이좌우망 이망시리 인개이위천 고종이정지 정상자차천장부시의

비천한 사내 한 사람이 있어 반드시 농단을 찾아 올라가서 주위를 바라보면서 시장의 이익을 모두 거두어 가버리자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였으니, 장사꾼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인 것은 이 빈천한 사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농단-주석>'용'은 곧 언덕을 뜻하는 '농壟'이다. 조기는 "흙더미가 끊어져 높은 곳"이라 풀었고, 주희는 "비탈진 언덕이 끊겨서 높다"로 해석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사방이 잘 보여서 값싼 물건을 많이 취하여 독차지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한다는 뜻의 '농단'이 유래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주석의 풀이와 같이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있다. 전횡(專橫, 권세를 혼자 쥐고 제 마음대로 함)처럼 독차지하고+마음대로 휘두르는 것까지 포함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예전에 높은 언덕에 오르듯 현재에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정보가 집중/독점되므로 이익이나 권력을 가까이하고 취하기에 훨씬 유리한 모양이다. 그런 지위에 가까이 갈 일이 없어서 알 길이 없지만 '권력의 단맛'이 아주 강렬한가 보다. 국민을 위해 희생하던 애국지사·독립투사가 권력을 잡고 독재자가 되기도 하고, 한번 잡은 권력을 좀 체 놓을 줄을 몰라 장기집권을 꿈꾸다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왕조 시대에는 왕권을 두고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친족 간에 골육상쟁의 혈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교회에서 높은 직책이나 직분을 받은 사람은 그 지위에 맞는 대접을 받으려 하면 안 되고 더 낮은 자세로 더 크게 섬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감상에서도 경계했듯이, 농단(언덕)에 오르려는 의지가 굳고 선하다면 농단(전횡)으로 전락할 우려도 적어질 법도 한데 그렇게 섬기려는 자세로 흐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5.3 세금으로 백성을 그물질하지 말라

民之爲道也, 有恒産者有恒心, 無恒産者無恒心, 苟無恒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민지위도야 유항산자유항심 무항산자무항심 구무항심 방벽사치 무불위이

▣백성이 도리로 삼는 것은 일정한 생업이 있는 자는 일정한 마음을 갖게 되지만,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정한 마음이 없어지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

: 작년에 사무실을 옮기느라 3개월 정도를 쉬었다. 첫 며칠은 늦게 일어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꿀맛이었다. 좀 지나니까 그것도 그냥 시들하고 같이 놀 사람도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오락 게임, 티브이 보기 등을 빼고 뭔가 좀 건전한 취미활동을 포함해서 시간 나면 해보고 싶었던 게 많았던 것 같은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의욕도 잘 생기지 않았다.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사무를 제외하고는 계속 단조롭고 반복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차라리 다시 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 마무리되어 사무실을 다시 열고 2개월을 일하고 나니 다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일하면 놀고 싶고, 놀면 일하고 싶어졌다.

방앗간 기계가 생간 난다. 주로 떡을 만들 쌀을 빻기 위해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간다. 기계가 부지런히 돌고 있을 때는 간간히 짬을 내어 콩을 넣어 인절미에 쓸 콩가루를 만들 수도 있고, 각종 곡식들을 섞어 미숫가루를 만들 수도 있고, 잘 말려 반을 가르고 씨를 빼낸 고추를 넣어 고춧가루를 만들 수도 있다. 사이사이에 옆 기계에 가서 참기름을 짜낼 수도 있다. 그래도 뭔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다른 일들도 조금씩 하게 되지만, 기계 스위치를 내리고 맥을 놔버리면 오히려 아무 일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바쁘게 일하는 동안은 잡념도 잘 생기지 않고,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에 소비하는 일도 적고, 일 외에 뭔가 필요하다 싶은 일도 더 하게 되고, 운동도 더 하게 되고, 잠도 잘 온다.

그래서 계속 일하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 가능하다면 살살 ^^


7.12 신임을 얻어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

悅親有道, 反身不誠, 不悅於親矣.

열친유도 반신불성 불열어친의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다.

: 예전에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주셨던 표정, 반응, 행동 들이 생각난다. 고된 군생활을 하다가 휴가를 나와 지낼 때면 더 먹어라, 더 쉬어라 말씀하시며 안쓰러워하셨지만, 젊은 놈이 허구한 날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떡진 머리로 TV를 보며 데친 시금치마냥 축 늘어져 있으면 '미친놈아' 하시며 등짝을 치시거나 혀를 끌끌 차셨다. 나이 먹고 공부하느라 학원을 다닐 때는 낙방을 거듭할 때도 나무라지 않으셨지만, 오락이나 만화책 보기 같은 일을 넋빼놓고 줄창 하고 있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셨다.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영적으로 성숙·성장하여 독립된 개체로 생활하길 바란다고 했다. 모든 부모는 어린 자녀가, 잘 자라서 '자기 앞가림하고, 사람 구실'하는 성인으로 잘 자라고 독립해서 행복하게 자기 삶을 영위하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자식들이 이런 목적에 불필요하거나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게 싫고 이걸 자주 하면 아이의 미래가 걱정돼서 심란해진다. 그렇다고 그 얘기를 매번 자식에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모이면 우리 누구 때문에 미치겠다는 얘기를 몇 시간씩 침을 튀며 하다가 헤어진다.

자식을 낳아 보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열심히 사는 모습 더 많이 보여드릴걸..


7.18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

公孫丑曰: "君子之不敎子, 何也?"

공손추왈: 군자지불교자, 하야

▣공손추가 말했다. "군자가 자식을 (손수)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孟子曰: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 則反夷矣.

맹자왈: 세불행야 교자필이정 이정불행 계지이노 계지이노 즉반이의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형세상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올바른 도로써 해야 하는데, 올바른 도로써 가르쳐 실행되지 않으면 그것에 매여서 노여워지고, 그것에 매여서 노여워지면 도리어 마음을 상하게 된다.


'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 則惡矣. 古者易子而敎之.

부자교아이정 부자미출어정야 즉시부자상이야 부자상이 즉악의 고자역자이교지

'아버지께서 나를 올바른 도로써 가르치신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뒤따른 행동)도 올바른 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부자간에 서로 마음을 상하는 것이니, 부자간에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다.


父子之間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

부자지간불책선 책선측리 리즉불상막대언

부자 사이에는 잘하라고 꾸짖지 않으니, 잘하라고 꾸짖으면 멀어진다. 멀어지면 더 큰 불상사는 아무것도 없다"

: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딸아이 수학 공부를 봐줬던 것 같다. 집사람이 아이랑 같이 공부를 하다가 언성을 높이면서 화를 내면 내가 옆에 있다가 "어허 이 사람. 애한테 좋게 말하지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나?" 하고 교대를 한다. 막상 아이 옆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일단 연필과 지우개를 쉴 새 없이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놀 때는 한 번도 하지 않던 하품을 연신하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도무지 진득한 맛이라곤 없는 것 같다. 좀 전까지 분명히 4번씩이나 똑같은 말로 A는 B라고 설명했는데,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엉뚱한 대답을 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이 녀석이 날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른다. 30분이 지나 내가 얼굴이 벌게져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으면 집사람이 다시 와서 내 등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한다.

자기 자식을 가르치면 화가 난다. 집중력과 참을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이런 글러먹은(화났을 때는 정말 이런 마음이 든다) 당장의 정신상태와 학습태도가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생각은 벌써 30년 후 걸인이 되어 길가를 배회하고 있을 아이의 모습에까지 내달아 있다.

남의 아이들이 말썽 피우는 얘기, 공부 안 하는 얘기 들어보면 엉뚱하기도 하고 웃긴다. 하지만 내 아이에 대해서는 웃음기 1%도 없이 너무 심각하다. 그래서 가르칠 수가 없다. '이렇게 가면 큰 일 나는데'하는 조바심이,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성인으로 치면 자다가 막 깼을 때의 각성 수준밖에 안 되는 뇌발달 단계의 어린아이임을 잊고 그저 다그치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좀 매정하다 싶더라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강하게 채근하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중심의 입시제도, 사회구조, 경쟁에 대한 보상구조는 변함없는데, '믿고 기다려주자'는 말로 조바심을 억누르기에는 상황이 너무 불안하다. 맹자님이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부자 사이에는 잘하라고 꾸짖지 않으니, 잘하라고 꾸짖으면 멀어진다. 멀어지면 더 큰 불상사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말씀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없다. 그래서 더 어렵다.


10.3 벗을 사귀는 도

萬章問曰: "敢問友." 孟子曰: 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만장문왈: 감문우 맹자왈: 불협장 불협귀 불협형제이우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

우야자 우기덕야 불가이유협야

▣만장이 여쭈었다. "감히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많은 것을 뽐내지 않고, 귀한 것을 뽐내지 않으며, 형제(의 부귀)를 뽐내지 않고 벗과 사귀는 것이다. 벗과 사귀는 것은 벗의 덕을 벗하는 것이지 뽐내지 않아야 한다.

: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할 때나,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말을 뭐하러 했을까 싶을 때가 있다. '나도 뭐 안다고, 나도 뭐 해봤다고, 나도 뭐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랬나 싶다. 좀 더 '있어 보이고' 싶었나. 그렇게 내가 그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바빴으면, 정작 '친구 만나러' 나가서 만난 그 친구는 잘 만나고 온 건가 싶기도 하다.

'덕'이라는 말 참 좋다. 그 친구가 어떤 점을 뽐내려고 하는 것을 내가 '덕'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덕'을 벗하면서, 편안한 마음에서 나의 덕(만약에 있다면)도 저절로 드러나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혼자만 바쁜 뽐내기는 모두 뒤늦게 찾아오는 부끄러움이 된다.


12.15 하늘이 큰 임무를 주려는 자는 고통을 먼저 안긴다

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 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입즉무법가불사 출즉무적국외환자 국항망 연후지생어우환사어안락야

안으로는 법도 있는 집안과 도와주는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과 외환이 없다면 나라는 항상 멸망했다. (이런 이치를 안) 그러고 난 뒤에야 근심과 걱정에서 살고 편안함과 즐거움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칭기즈칸은 "우리 제국은 후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큰 궁궐에 거처하며, 부드러운 침대에서 자게 되면 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어디서 보았는데 사실 이 말은 근거가 명확지 않고 다만, ‘고난과 검소함이 제국을 유지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라고 한다. 영화 [넘버 3]에서 조필(송강호 분)은 짜장면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산에서 개구리 잡아먹고 뱀 잡아먹던 시절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며 '헝그리 정신'을 강조했었다. 나도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배가 부르면 잠이 오곤 해서 밥을 조금씩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과업, 높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면 평상시 생활과 다른 비상한 각오와 고단한 생활을 감내하는 자세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이러한 자세로의 mode 전환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안히 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깝게 된다.'는 맹자님 말씀까지는 좀 과한 거 같기는 하지만, 슈퍼맨처럼 회전문 한 바퀴나 셔츠단추 몇 개만 풀면 되는 수준의 고속 변신은 아니더라도 맘먹은 일이 생기면 즉각 달려들어 시작할 수 있는 '즉시 실행/지속 추진 모드'를 남겨두고 싶은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헝그리 정신'을 유지할 목적으로, 꼭 그리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닌데 안락한 방식을 놔두고 일부러 고단한 삶을 선택해서 산다는 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하물며 자식에게는 어떤가? 모진 시련에 쓰러지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엉덩이와 등까지 따끈하게 데워주는 열선 시트 차량을 두고, 내일 아침부터 눈보라를 헤치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네 발로 걸어서 학교에 가라고 등 떠밀어 내보낼 수 있을까?


13.27 굶주리고 목이 마르면 제 맛을 모른다

孟子曰: 饑者甘食, 渴者甘飮, 是未得飮食之正也, 饑渴害之也, 豈惟口腹有饑渴之害? 人心亦皆有害.

맹자왈: 기자감식 갈자감음 시미득음식지정야 기갈해지야 기유구복유기갈지해 인심역개유해

굶주린 사람은 달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달게 마신다. 이는 음식의 제맛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제맛을 해치게 되기 때문이니, 어찌 오직 입과 배에만 굶주림과 목마름의 해로움이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도 모두 해로움이 있는 것이다.

: 지난주에 집사람이 엄~~청 맛있는 한식집이 있다고 해서 갔다. 시설도 나름 깨끗하고 차려지는 음식도 정갈해서 기대를 하고 한입 먹어보았다. 잘 모르겠다. 다른 반찬들과 국까지 먹어보았는데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엄청 맛있다!'를 연신 외쳐댔다. 정신줄을 놓고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면 가정의 평화가 파괴되고 생존에 즉각적인 위협이 생긴다. 딸은 원래부터 엄마가 속상할만한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집사람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내가 많이 배고팠다 보다. 그때는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

집사람과 딸은 나보고 변덕쟁이란다. 배고플 때 찾아 들어가 허겁지겁 먹고 나서는 "기가 막힌다"라고 하고, 두 번째 가면 "원래 이 맛이었나?"라고 하고, 세 번째 가면 "이상하네. 맛이 없는데.."라고 한단다. 살펴보면 식사의 만족도는 우선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가 제일 큰 영향을 미치고 그다음은 기분 상태, 동반자들과의 관계와 친밀도, 상황적 여유 등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배가 몹시 고픈 상태로 푸드 코트에 들어갔는데, 모든 코너를 끝까지 하나하나 차분히 다 살펴보고 제일 맛있어 보이는 인기 있는 곳을 선택해 줄 서서 기다렸다가 먹기 쉽지 않다. 외롭고 힘든 상황의 나에게, 따뜻한 말과 손길을 건네는, 준수한 여자(남자)가, 인격적으로 괜찮으며 나와 잘 맞을 이성일지 충분히 살핀 후에 만남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는 나에게 제시된 '매혹적 제안'에 얼마나 선의가 담겨있을지 가늠하기도 매우 힘들다.

결국 몸과 마음의 '주림'에서 벗어나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데, 언제나 이 '직면한 결핍에 대한 즉각적인 충족'이 너무나 달다.


14.35 욕망을 줄이는 것이 마음 수양법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 其爲人也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 寡矣.

맹자왈 양심막선어과욕 기위인야과욕 수유부존언자 과의 기위인야다욕 수유존언자 과의

마음을 수양함에 있어 욕망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 사람됨이 욕망이 적으면 비록 (선한 본성을) 보존하지 못한 점이 있더라도 적을 것이고, 그 사람됨이 욕망이 많으면 비록 (선한 본성을) 보존하더라도 적을 것이다.

: 어려운 여건에서 창업을 해서 갖은 고생 끝에 회사를 일으키고 급기야는 상장을 해서 많은 자본을 유치하고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어마어마한 자산가로 성공한 창업자의 사례가 뉴스에 종종 등장한다. 여러 해가 지나고 그중 몇몇은 그 어마어마한 재력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부를 거머쥐기 위해 암암리에 불법을 저지르거나 세금을 탈루하려다 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 사건들이 보도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돈이 많은데도 저렇게 하면서까지 더 가지고 싶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유한계급(有閑階級,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은 명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회의 최정상에 있는 계급이다. 따라서 그 계급의 생활방식이나 가치 기준은 사회 내의 전반적인 명성의 기준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런 기준은 최고 상류층 이하의 모든 하위 계층에게 지키고 싶은 규범이 된다. ... 그 결과, 사회의 각 계층은 차상위계층에서 유행하는 생활방식을 품위의 이상적 기준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기준에 부응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각 계급은 차상위 계급을 부러워하고 또 모방하려 한다. ... 반면에 각 계급은 차하위 계급이나 아주 앞서 있는 상위 계급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힘든 처지에서 벗어난다고 끝이 아니다. 선망하던 생활을 드디어 영위하게 되면 그 윗단계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유혹을 한다. 더 큰집, 더 고급 차, 더 값비싼 명품. 끝도 없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옛 속담이 있다. 말을 타는 건 상상도 못 할 처지였는데 막상 말을 탈 수 있게 되면, 그 말을 끌고 갈 종까지 두고 싶어 하게 되는 것처럼 욕심이 끝이 없음을 꼬집는 말이라고 한다. 더 크고, 더 많은 성취를 칭송하는 자본 사회에서 욕망을 줄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욕망은 '속성'상 절대로 충족되는 법이 없다. 건전한 추구가 쉽지 않다는 말이겠지만, 우리의 행복을 생각하자면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동양철학) 고전의 시작] - 황광우/홍승기 지음

: 청소년을 위한 고전 입문 교과서라고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논어부터 맹자, 장자, 노자, 법구경, 순자, 목민심서, 주역, 한비자 등 살아가면서 한 번쯤 만날 법한 동양철학 고전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고, 배경 설명과 주요 문장, 해설 등이 겸비되어 있어 소개하는 각각의 책들에 흥미가 생기고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동양철학 고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안성맞춤일 것 같다. 동서양 추천 고전 70선도 수록되어 있다.


▶ [논어] - 공자

: 오며 가며 여기저기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좋은 말씀들이 보석처럼 가득 있다. 요약편 한번 보시고 괜찮다 싶으면 책을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길.

[함께 책 읽기 ⑰ - 논어, 공자] https://brunch.co.kr/@2f5d6d1cad1247c/61


▶ [중용/대학] - 증자/자사

: 《예기》의 한 편목들이었는데, 주희의 주장에 의해 사서四書로 편입된 것이라고 《논어》에서 설명했었다. 별도로 정리해 보려고 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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