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온 행동이 나를 설명한다
엔데믹 이후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한 층 강해진 듯 보인다.
각종 모임과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 모두 각자 관심 있는 영역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며 일상을 치유한다.
모임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하는 건 자기소개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해와서 당연하지만 어색하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할 때도 있지만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말이다.
자기소개라는 게 뻔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소속이 어디고, 어떤 직책을 맡고 있고 하는 것들. 더 사교적인 자리라면 어디에 살고, 무슨 공부를 했고,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덧붙여 말하면 다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준다.
림태주,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보통 나이, 소속, 직위, 취미 등으로 소개를 한다.
나 또한 그래왔다.
그런데 한편으로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소개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다
에릭 헨슨, 아닌 것
내가 읽은 모든 책이 나를 만드는 거라면 책으로 나를 소개해 보면 어떠한가.
실제로 최근에 들어간 독서모임에서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책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나를 잘 나타내는 책은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다.
‘모순’이라는 책은 쌍둥이 어머니를 둔 주인공(안진진)이 겪는
인생의 모순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양귀자, <모순>
삶의 모든 걸 극단적으로 바라봤다.
‘A면 A고 B면 B 지.’하는 편협한 생각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는 누구보다 극단적으로 모순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TCI(기질 성격) 검사를 했던 게 생각난다.
기질 중에 자극 추구와 위험회피, 정 반대되는 기질이 모두 매우 높아 놀라웠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호기심 많고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데, 한편으로는 겁 많고 신중하다.
그래서 항상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힘들어했다.
직업 관련 진로 탐색 검사 결과도 생각난다.
검사 결과 예술형과 관습형이 모두 높았다.
예술형은 자유분방하고 변화하는 걸 좋아하는 유형이고,
관습형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유형이다.
즉, 변화를 좋아하면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나만 원해야 하는데 A와 B를 모두 원하고 그게 정반대니 둘 중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세상이 모순적이었던 것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인생은 원래 모순적인 것이고,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편안해졌다.
나에 대한 큰 숙제가 하나 풀린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난 모순적인 사람이다.
부정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 양극단 모두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즐기려고 한다.
오히려 둘 다 누릴 수 있으니 행운이고, 지나치지도 적지도 않게 중용을 향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자기소개와는 다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담겨 있다.
무엇보다 나도 소개하고 책도 소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소개법이다.
물론 나는 독서모임에서 한 자기소개였기에 책을 활용했다.
만약 다른 모임이라면 그 모임과 관련된 소재로 자기소개를 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 모임에서는 내가 찍은 사진들로.
여행 모임에서는 내가 다녀온 곳들로.
글쓰기 모임에서는 내가 적은 글들로.
노래 모임에서는 내가 부른 노래들로.
내가 해온 행동들이 나를 설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