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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빛 Sep 18. 2024

우울을 사랑한 여자

오랜 연인, 우울에게

우리는 사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낸다.
돈 때문에 일을 한다는 사람은 돈이 좋은 거다.
사업하지 않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안정적인 게 좋은 거다.
일을 벌이는 사람은 의무와 책임을 좋아하는 거다.
D 님


우울함이 자주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직접 만나러 가는 거였다.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한다.

침울하게 가라앉은 정신이 피폐해지는 소설.

마음을 두드리는 어딘가 서글픈 선율의 음악.

괴로움을 그대로 꺼낸 듯한 소름 끼치는 그림.

전율에 휩싸이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며칠간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마음에 거리낄 것 하나 없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균형을 맞춰주려고 했는지

예고 없는 손님이 방문했다.


동터 오르는 시간까지 우울과 어울려 놀았다.

음울한 소설과 암연한 음악에 심취했다.

크게 웃으면서 울었다.


어두운 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울은 부정적인 감정이라며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우울은 끈질겼다.

떼어놓은 줄 알았는데 끝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뒤꽁무니를 잡고 졸졸 쫓아왔다.


알고 보니 그에게 죄는 없었다.

스스로 자진해서 만나러 간 거였다.


인생에는 반드시 역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평탄하게 굴곡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일부러 우울이라는 가시밭길을 만들었다.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면서 쾌감을 얻었다.


애초에 우울감이라는 감정이 정말 나쁜 걸까?

항상 밝은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때때로 어두운 감정을 느끼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우울을 금기시하고 몰아낼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어둠을 선택하고

어떤 날을 밝음을 선택하면 된다.


100이 있다고 한다면, 49가 부정적이라도 51이 긍정적이면 행복한 인생이다.
E 님


우울함, 어두움, 슬픔, 어둠을 모두 사랑한다.

배려, 친절함, 이타심, 사랑.

어둠을 사랑하는 만큼 밝음도 사랑한다.


어둠으로 인해 밝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밝은 기운도 추구하면 되는 게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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