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Dec 06. 2023

기다려주는 마음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지만 그 뒤에는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서


  국어 교과서에 '김득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다독가이자 노력가로 알려진 조선 중기의 시인이라 한다.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오늘 그의 일생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둔한 아이여서 10살이 되어서야 글을 읽고 20살이 되어서야 문장을 지었단다. 20살이 넘어 문장을 지은 그가 유명한 시인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일이 분명하다. 이룸이 있었다는 그는 얼마나 힘을 쓴 것일까.

  처음 묘비명을 봤을 때는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는 그 말에 꽂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잔소리 아닌 긴소리를 실컷 늘어놓으면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했다. 그냥 마음의 문제고, 태도의 문제라고 혼자 울컥하며 강조했다.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고 한계를 짓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며 그의 묘비명을 반복해서 읽었다. 여러 번 음미하면서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상황을 그려본다.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다고 믿고 결국에는 무엇인가 이루어낸 그의 뒤에는 누가 있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우둔한 김득신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차며 아들을 포기해야겠다고 넌저시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도 남의 자식 일에 감 나라 배 나라 하면서 그것을 같이 키우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시대에도 있었나 보다. 그런 사람들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읽는 아이를 대견해했다고 한다. 과거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며 쉼 없는 그의 노력을 독려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김득신이 선택한 노력이 읽고 또 읽는 것이었다면 그의 아버지의 노력은 그런 그의 노력을 지지하면서 기다린 것이었을까. 아버지 역시 그럴 수 있는 것이 노력 없이 가능했을까. 속 좁고, 욕심 많고, 성질 급한 엄마로서의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너른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부모가 있기는 할 테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을 잃었다. 아니, 잊었다. 인간도 하나의 물건처럼 학교라는 공장에서 나오면 바로 주변을 만족시킬 완제품이길 기대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인내심이 없다고 손가락질하면서 능숙하지 못한 그들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나이 먹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널려있다. 일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뒷짐 지고 날카롭게 쳐다보면서 잘하지 못한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약하다 등등 품평을 한다. 가르쳐주거나 도와주기보다 "라떼는~" 하면서 팔짱 끼고 본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믿고 말없이 격려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잘하는지 못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힘쓰기에 달렸지만 그것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참 없다는 것이 씁쓸하다.


  배우는 것은 한 번에 "이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가르친다 해서 바로 받아들인다면 부모가 교사가 필요하지 않을 테다. 그렇다고 아이 안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못할 수 있고, 주변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노력중일지도 모른다. 아이보다 먼저 그런 것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아이가 변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믿고 지지해야 한다. '내가 너 또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대신 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바라지 않고 자기를 믿고 단단하게 서는 날을 기다려야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르다면,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답답해도, 마음이 급해져도 닦달하지 않아야 한다. 너른 마음으로 굳건한 믿음으로 기다려주기 위해 수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럼 결국, 그들도 무엇이든 이루어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꽃길만 걸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