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단 친구들 2

by 노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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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이 조직된 것은 지난여름 이음이를 따라간 축구대회에서였다. 우연히 만난 축구 과몰입러 아줌마 한 명과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해 새벽 3시까지 만든 피켓을 들고 온 6학년 아이들 4인은 뜨거운 태양 아래 하나가 되었다. 그날 우리는 피부를 잃고(해가 너무 뜨거워 살이 다 벗겨졌다) 더불어 목소리도 잃었지만 요상한 조합의 우정을 얻었다. 그 후 학교나 마을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면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머리를 맞대고 다음 행선지에 대한 논의를 했다.

“친구들, 홍동초 어디 축구 대회 소식 또 없나요?”

“그러니까요. 작년에는 이맘때쯤 한 번 더 나갔던 것 같은데. 올해는 영 소식이 없어요.”

“아쉽네. 반반FC도 달풀이랑 붙을 때 됐는데.”

“뭐라도 생기면 저희 꼭 불러주세요.”

“오케이. 뭐 안 생길 것 같으면 홍동초 하고라도 붙어야겠다.”

“오, 그것도 좋네요.”

“근데 만약에 반반이랑 홍동초랑 둘이 붙으면 친구들은 누구 응원할 거예요?”

당연히 반반FC를 외칠 줄 알았던 아이들이(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대화 텐션, 분위기를 봤을 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평소와는 달리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살짝 배신감이 드는 한편 이 녀석들의 단단한 의리를 확인하며 이 녀석들과 함께 팀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나를 볼 때마다 “단장님!”하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하루빨리 함께 응원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또 한 번 어깨를 맞대고 함께 소리칠 수 있는 곳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의 달뜬 마음과 달리 마땅히 응원할 데가 없어 우리는 매번 어깨동무와 하이파이브만 하며 아쉬운 여름을 보냈다.


가을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드디어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는데, 그곳은 바로 반반FC가 출전하는 ‘청양풋살대회’였다. 반반FC는 몇 해 전부터 멀미 이슈와 실력 이슈로 일 년에 딱 한번, 딱 하나의 대회만 참여하고 있다. 그 대회는 11월에 열리고 우리 동네에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대회야 말로 우리 응원단이 빛을 발하기 아주 좋은 기회였다. 풋살 대회 날짜가 공지되자마자 곧장 응원단 친구들을 찾아갔다. 언제나처럼 나를 보고 “단장님!”하고 외치며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들에게 나는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 드디어 우리가 응원할 곳이 생겼어요.”

아이들이 한껏 밝아진 얼굴로 반겼다.

“오, 드디어!”

“어디 경기 생겼어요?”

나는 이제 한껏 비장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친구들, 이제 곧 반반FC가 청양풋살대회에 나가요.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그곳이에요.”

아이들은 좋다며 펄떡이고, 그 사이 부 단장 효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제 떡볶이 먹으러 가야죠.”


엽기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것은 우리 응원단이 처음 조직되던 날이었다. 우리가 응원하던 홍동초 친구들은 예선에서 떨어졌지만 옆에서 같이 진행 중이던 홍동중 형님들이 결승까지 가는 바람에 일정이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땡볕 아래 하도 소리를 질렀더니 힘도 들고 배도 고팠다. 아이들은 계속 먹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것이 엽기 떡볶이였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나 엽기 떡볶이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데.”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더니 다음에 같이 갈래요? 하고 물었다. 나를 껴주려는 거냐고 묻자 아이들은 안 될게 뭐가 있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도 같은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가 생기자마자 효가 떡볶이 이야기를 한 것은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말에 효가 정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아니면 우리 모임의 목적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엽기 떡볶이 먹으려면 읍내로 나가야 되니까 학교 앞 치킨 집에 가도 괜찮아요. 아니면 신전 떡볶이도 맛있는데. 거기로 가도 되고요.”

나는 그런 효를 향해 우리의 본분에 대해 살짝 집어주었다.

“좋아요 효, 그런데 우리가 응원단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맛집 탐방단이 아니라.”


그날부터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작전을 짜게 되었다. 대회에 함께 가는 방법과 미리 모여 연습을 할 날, 그리고 엽기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날에 대해. 네 명의 아이들 중 세 명의 아이들이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다 마주친 그 자리에서 대부분의 것들을 약속하고 그 약속이 당연히 지켜질 거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짜여진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1. 대회가 있기 전 주에 있는 반반FC와 풀무고 매치에 응원 연습을 간다.(토요일 오후, 2시)

2. 풀무고 매치가 있기 전에 같이 모여 점심으로 엽기떡볶이를 먹는다.(토요일 오후, 12시에 홍예공원에 집합)

3. 반반FC 청양 풋살 대회에 함께 간다.(일요일 오후, 시간 미정)


핸드폰으로 소통이 불가능 하니 약속 하나 잡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우연에 기대어 소식을 주고받아야 했다. 사실 아이들의 부모님을 통해 연락을 나누었으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부모님을 통해 소통을 하는 순간 나는 이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과 친구로서, 혹은 같은 팀의 일원으로서 이 일을 함께 계획하고 있는 것인데 내가 나서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책임자처럼 행세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워지거나 아이들이 나를 같은 팀의 일원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엄마로 보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핸드폰은 우리 애들도 없어서 이런 소통이 나에게는 특별히 답답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둘째 이음이와 막네 우리를 통해 쪽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친구의 친구를 통해 소식을 전하기도 하니 어찌저찌 전달은 다 됐다.


어쩌다 보니 우리의 가장 첫 번째 공식 일정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것이 되었다. 이런저런 소식통으로 다행히 아이들이 만나기로 한 시간과 장소에 잘 도착했다. 사실 가기 전에 학교에서 짧고 강렬한 대화만 나누다 이렇게 장시간 정적인 시간을 보내려니 괜히 어색하진 않을까 조금 걱정을 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차 안은 시끌벅적했고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게 대화가 잘 통했다. 나는 되도록 아무 말을 하지 말자는 작전이 잘 통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끔 묻기도 했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재밌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같이 좋아하고, 생에 첫 엽기 떡볶이를 먹으며 행복해하고, 앞으로 응원단이 해야 할 일(풋살 대회 응원 예절 익히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회식을 마치고 달풀과의 매치를 하러 가는데 그날 유독 날이 추웠다. 나는 경기를 뛰러 가며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날이 추우니까 구경 조금만 하다가 힘들면 얼른 들어가요.”

아이들은 지난번과 같이 단단한 의리를 과시하며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되려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경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고, 해가 질수록 날은 더 추워지고, 아이들은 언제쯤 끝나는지 계속 물어봤다.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제발 가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끝끝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심지어 중간에 왜 자꾸 가라고 하냐며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그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미안한 마음 또한 너무 커져서 풋살 대회는 혼자 가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뒤늦게 나온 대회 일정이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일정으로 짜여지는 바람에 물리적으로도 함께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실망은커녕 자신들이 알아서 가보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단장님은 일단 저희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해볼게요!”

이번에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대회 날 정말로 아이들이 나타났다. 응원단도 아닌 친구를 꼬셔서 그 친구의 아빠 차를 얻어 타고 왔다고 했다. 낯선 대회장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더 반가웠다. 아이들을 응원하러 오는 어른들은 있어도, 어른들을 응원하러 온 아이들은 우리 팀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사실 나도 아이들이 혹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번 효가 먹고 싶다던 찹쌀떡 한 통을 들고 왔다. 그걸 본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기뻐했다. 역시나 가장 기뻐한 것은 효였다.

“아니, 단장님!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진짜 감동이에요.”

아이들의 열띤 응원에도 반반FC는 또 모든 경기에서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내가 공을 잡을 때마다 “단장님!!!!”하고 응원해 주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귓가에 맴돌아 마음이 뜨끈해졌다.


한동안 일이 바빠 학교에 거의 머물 일이 없어 응원단 친구들 못 보다가 얼마 전 오랜만에 효를 만났다. "단장님!"하고 밝게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던 효는 간만에 그때 생각이 났는지 다짜고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슨 시합이나 행사 없어요? 어디 갈데없나.”

어떤 행사가 있다고 하면 곧바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할 것만 같은 효의 얼굴을 보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했다.

“경기는 없고... 그냥 맛집 탐방이나 갈까 봐요.”

효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른 응원단 친구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효가 갑자기 소리쳤다.

“얘들아 뭐 해, 인사드려.”

나는 이번에도 효가 우리의 본분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다시 한번 집어 주었다.

“그런데 효, 우리가 응원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조폭이 아니라.”

오랜만에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니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밝아졌다. 나는 또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이제 곧 졸업이니 그전에 한번 뭉치자고 하며 헤어졌다.


나는 가끔 응원단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한다. 서른 넘은 아줌마가 열세 살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 주책인가?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어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럴 수도 없는데 안 될거 뭐 있어, 하고 넘어간다. 나는 아이들과 동등한 위치에 나란히 서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결제도 내가 하고 운전도 내가 하지만,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딱 그 정도다. 그저 아이들이 나를 ‘이음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보다 ‘단장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그 정도 주책이면 봐 줄만 한 거 아닌가? 아이들이 언제까지 나를 단장님이라 부르고, 무언가 같이 하면 재밌는 사람으로 대해 줄 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 빨리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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