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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무리와 축구를

by 노해원



결국에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들 무리와 축구로 붙는 날이.


내가 처음 축구를 시작 했을 때가 2021년 여름이었으니까 그때 큰 아이의 나이는 열두 살, 초등학교 3학년 이었다. 종종 우리와 붙는 초등학생들은 체격 이슈로 대부분 고학년이었고,(한두 번 저학년과 붙어 본 적도 있는데 실력으로는 더 할만하긴 했다) 그래서 아들 친구들과 붙는 불상사(?)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더 다행인 것은 큰 아이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좁은 동네에서는 한 사람 한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울림이 역시 종종 아이들의 부름에 끌려 나갔고, 학교에서도 소통이 잘 안 되던 녀석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축구 단톡방'이라는 것을 만들어 매주 주말만 되면 축구 할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이제 곧 이녀석들과 붙을 날이 오겠구나.' 하고.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하고, 유난한 더위와, 늘상 있는 부침과, 약간 식은 축구에 대한 열정과, 갖은 핑계 거리를 대며 두 달간 축구를 쉬었다. 한 달은 원래 쉬려고 했고, 나머지 한 달은 갑자기 생긴 팀 휴가와 겹쳐 계획보다 두 배를 쉬게 되었다. 막상 쉬다보니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오히려 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러다가 축구를 그만 두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사실 축구를 열심히 하면서도 맨날 들었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슬슬 축구를 나갈 때가 되었다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쯤.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나갈 날을 떠올리며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문득 '지금이 그때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를 흡수 하며 한여름에도 축구를 하는 녀석들, 인원이 부족해서 축구에 관심도 없는 울림이를 어떻게든 데려가려는 녀석들과 드디어 한 판 붙어볼 그때가.


나는 혼자 비장해져서 울림이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울림아, 너네 그 축구방 친구들한테 반반FC랑 한판 붙자고 해.”

울림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래?”

친구들에게 몇 번 억지로 끌려가더니 재미를 좀 붙였는지 다행히 싫은 내색 아니었다. 울림이는 곧장 축구 단톡방에 ‘반반 FC랑 경기 할 사람’ 하고 무심하게 올렸고, 중학교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렇다 할 반응이랄 것도 없고 어쩌겠다는 것 인지 명확하게 알려준 것은 없었지만 ‘그럴까’ ‘나’ 정도의 답을 올려 준 친구들이 더러 있었으므로 우리는 암묵적으로 매치를 약속했다.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의 의사 협의는 어떻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서른여섯 살 아줌마는 정확한 의사와 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들을 찾아가 물었다.

“너네 이번에 우리랑 경기 하는 거 맞지? 이번에 6대 6으로 하려고 하는데. 인원이 될까?”

아이들은 자기들 끼리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접었다 폈다 했다. 접었다가 편 이름 중에는 에이스 친구들 몇 명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안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접었다 폈다 하는 손가락이 다섯 개에서 여섯 개로 좀처럼 넘어가지 못 하고 있었다. ‘OO이 된 댔나?’ ‘아, 계 안 된댔어.’ 이런 말을 연이어 하며 손가락이 여섯까지 펴지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옆에 지나가는 한 친구를 보며 소리쳤다.

“야! 이번 주 토요일에 축구 가능?”

그 친구는 고개를 갸웃 하다가 ‘일단 알겠다’며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가능’이 아닌 ‘일단’이 붙은 말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다 저 친구 안 오면 한 명 모자라는 거 아니야?”

그러자 손가락으로 인원을 새던 친구가 조용히 읊조렸다.

“반반FC는 다섯명으로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녀석 봐라?’ 하는 생각에 그 친구의 뒷목을 슬쩍 눌러 주었지만(이 녀석은 울림이랑 세 살 때부터 친구다) 이렇다 할 반박 또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6대 6경기로 준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사실 중학교 1학년이면 이미 우리를 월등히 뛰어 넘다 못해 짓밟을 정도의 실력이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도 그쪽 인원이 다 차건 말건 크게 상관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랑 붙을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였는데 다행히 아이들도 반기는 눈치였다. 물론 그것이 크게 티 나지는 않았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녀석들은 중학교 1학년 남자 아이들로 슬슬 수염이 나려하고 목소리가 변하고 있다) 다만 다년간 녀석들을 지켜봐 온 결과 대답을 해주고 손가락까지 접어가며 인원 파악을 한다는 것이 그들 나름대로는 꽤나 반기는 분위기라는 것을 체감했을 뿐이다. (손가락으로 인원을 파악하던 아이는 반반FC의 옛 동료의 아이이기도 해서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그래서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어찌됐든 그렇게 매치가 공식으로 성사되었고, 나는 기쁜 마음에 곧바로 팀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이번주 토요일 4시 홍동초 풋살장에서 홍동중 1학년 친구들과 6:6 풋살 매치 합니다!! 가능하신분?!]

나까지 다섯 명이 모였고, 골키퍼를 봐주겠다는 전력분석관님의 등장으로 여섯 명이 구성되었다. 뒤이어 장소와 시간 등을 공지하고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1학년 친구들 모집 하면서 자기들 인원 부족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반반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살짝 긁혔습니다…^^]


8월의 끝자락이었다. 이쯤이면 슬슬 여름이 갈 때가 됐다고 생각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여전히 낮 최고 온도가 30도를 넘었다. 우리가 경기를 하기로 한 4시에도 그 더위는 식지 않고 있었다. 초록색 인조잔디로 만들어진 풋살장이 펄펄 끓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매치 시간 보다 훨씬 일찍 와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슛팅을 보니 힘이 빠지기는커녕 더 쌩쌩해 진 것 같았다. 그런 녀석들을 보며 이 매치를 잡은 것이 올바른 선택 이었는지 잠시 망설이게 되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뛰어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조금 뛰었다. 그렇다고 승리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하는 축구고, 이 녀석들의 실력 또한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우리는 지는 것에 무척이나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저 조금 비장해졌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약 2개월 만에 축구복과 축구화를 신고 운동장을 뛰려고 보니 갑자기 흥분이 되어서 우리는 워밍업도 없이 급하게 경기에 뛰어 들었다. 뜨거운 심장과 뜨거운 열기. 그렇게 한 시간을 뛰고 우리는… 체력과 기억을 잃었다. 어떻게 뛰었는지도 모르게 그저 핵핵 댔던 기억만 난다. 우리의 예상은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쳐졌고. 결국 한 골도 넣지 못하고(엄청나게 먹히고) 경기를 끝냈다. 그럼에도 희미하게 남겨진 몇 가지를 떠올려 보자면 코딱지 만했던 녀석들이 이제 이렇게나 커졌다는 것, 너무 커버린 나머지 지독한 땀 냄새를 뿜게 되었다는 것,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와 같이 신나게 뛰어준 아이들이 기특했다는 것, 녀석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우리를 은근슬쩍 봐줬던 것. 너무 뜨거워서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뜨겁게 남겨진 녀석들과의 매치. 그 힘으로 나는 핵핵 거리면서도 다시 뛰어볼 생각을 한다.



(11월까지 잠시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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