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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힘의 계절을 지나며

가슴이 두근거랄때

by 이사벨라

막힘의 계절을 지나며


요즘 나는 마음 한켠에 작은 돌덩이가 얹힌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 안의 풍경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데,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조용히 부풀어 오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끝은 차갑게 떨리고, 심호흡을 해도 공기가 끝까지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 든다. 단순한 걱정을 넘어, 몸이 먼저 긴장을 알아채고 신호를 보내오는 듯하다.


공부에 집중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도, 문장은 눈앞에서 금방 풀려버리고 마음은 흩어진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까. 고작 이주 반이면 한 학기는 끝나는데, 그 시간은 짧으면서도 무겁다. 이번 학기말 시험은 “3시간짜리 에세이 시험”. 정해진 세 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를 읽고, 분석하고, 구성하고, 논증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머릿속을 압박한다. ‘과연 내가 이번에도 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때로는 잠 못 이루게 할 만큼 내 심장을 세게 뛰게 만든다.


게다가 내일은 남편과 함께 담임목사님과 점심을 하는 날.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더 긴장이 된다. 신학교에서의 일정, 신앙의 여정, 앞으로의 걸음을 묻는 대화가 오갈 것이라 생각하면, 아직 마음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어딘가 숨이 막히는 듯하다. 말이 너무 솔직해도, 너무 부족해도, 너무 어색해도 안 될 것 같은 감정이 밀려온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해져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단순하다. 나는 늘 “책임 있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배움에도, 글에도, 신앙에도 진심을 담고 싶고, 내 선택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작은 흔들림조차 쉽게 넘기지 못하고, 불안 앞에서 한동안 발이 묶이곤 한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은 그만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조금씩 배워 간다. 막힘의 시간도 결국 성장의 일부라는 것을. 길이 멈춰 보일 때, 나무가 겨울을 견디며 보이지 않게 새봄을 준비하듯, 마음 속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바깥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은 조용히 나를 단단하게 빚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억지로 속도를 내려고 하기보다, 들어오는 감정을 먼저 바라보려 한다.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숨이 가빠오면 쉬어 가며, 나에게 너무 많은 기준을 씌우지 않으려 애쓴다. 산책을 하거나,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매듭이 조금씩 풀리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의 결이 부드러워지는 그 순간들이, 다음 발걸음을 가능하게 한다.


내일의 점심 자리도, 이번 학기 3시간짜리 에세이 시험도, 지금의 이 흔들림도 결국 나의 일부다. 완벽히 준비된 말이나 완벽한 답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 흔들리는 마음 그대로 앉아 있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에게 조용히 말해 본다.


“괜찮다. 지금의 숨 가쁨도 지나갈 것이다.

막혀 있는 것 같아도, 너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말이 조금씩 내 안을 적시며, 다시 책상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이 막힘의 계절을 지나고 나면, 오늘의 불안도 결국 나를 성장시킨 자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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