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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Nov 13. 2023

내가 아끼는 만화 소개하기

(흔한 소개글은 지양한다!)


1. 땅콩일기-글, 그림: 쩡찌

'내 속에는 땅콩이 고여 있었나봐. 아주 많았나봐, 땅콩이.'

제목이 땅콩일기인 이유는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이 만화책의 주인공이 땅콩 모양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땅콩일기는 만화의 탈을 쓴 그림 시집이다. 마음이 솔직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이 만화를 읽으면 내 감정과 생각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저 이 만화 두 권을 읽기만 해도, 내가 평생 일기를 꼬박꼬박 썼을 때와 맞먹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땅콩일기는 마냥 가볍고 경쾌한 만화가 아니다. 푹 빠져들어야만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깊은 바다 같은 만화이니 읽기 전에 주의할 것. 우리가 살면서 겪지만, 차마 '이런 내가 싫어서' 혹은 '다른 사람이 이런 내 모습은 몰랐으면 해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꼭꼭 숨겨 놓는 감정들-외로움,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무기력, 우울, 응원과 위로로도 나아지지 않는 슬픔, 관계맺음에 대한 두려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부끄러운 기억, 앙금처럼 남은 상처-가 이 만화에서 섬세하게 나타나 있다.

영화처럼 독특하고 감각적인 연출, 구성, 색감. 차분하고 담담하게, 핵심을 꾹 누르는 표현방식을 통해 이 만화는 애달프면서 소중한 마음을 담아낸다.

아플 땐 아프다고, 행복할 땐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사람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나만 이렇게 슬프고 외롭나. 아픔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에게 <땅콩일기>를 추천한다.


2. 바닷마을 다이어리-글, 그림: 요시다 아키미

'세계는 끝없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난 어디든 갈 수 있다. 저 끝 어디라도, 아무리 먼 곳이라도'

장담하는데 이 만화를 본다면 가마쿠라를 '슬램덩크'가 아닌 '바닷마을 다이어리' 성지순례로 방문할 것이다. 이 만화는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복 여동생 스즈를 만나고, 스즈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다. 사치, 요시노, 치카, 스즈. 네 자매가 가마쿠라에 지내면서 (1)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2)각자 일, 사랑, 인간관계, 가치관 측면에서 성장하는 과정, (3)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작가는 (1) 간호사인 사치를 통해 병든다는 것, 죽는다는 것, 아픈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작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려내고 (2) 신용금고 직원인 요시노를 통해 돈 '때문에' 생기는 골치아픈 문제(빚, 재산을 둘러싼 갈등)와 돈 '덕분에' 전해지는 마음(유산)이 무엇인지를 그려내고 (3) 친부모의 죽음과 무책임한 새어머니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은 채 강제로 어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스즈가 가족과 친구를 갖게 되고,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활기와 웃음을 되찾고, 꿈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소중한 인연, 따뜻한 가족, 든든한 보금자리, 단단하고 맑은 마음의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그려낸다.

일본 작품 만화대상을 수상하고, 실사 영화(무려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연극으로 제작될 만큼 작품성과 인기 모두 검증된 작품이니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3. 터치, 러프, H2-아다치 미츠루

슬램덩크도 떴겠다. 나는 이제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다시 주목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명작을 나만 알 수 없어) 어쨌든.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에는 '청춘', '스포츠' 그리고 '사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름이었다' 재질의 청춘물, '친구에서 연인으로' 재질의 연애물, '라이벌, 대결, 성장' 재질의 스포츠물. 이 모든 클리셰를 처음 확립한 원조가 바로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팬이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읽는다면,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주요 소재, 설정, 스토리라인을 '이건 표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모든 것의 원조인 만큼, 지금 봐도 '세련되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등장인물이 매력적이고, 컷 배치와 연출이 감각적이고, 풋풋하면서 아련한 감성이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에 담겨 있다. 특히 아다치 미츠루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서정성이다. 아다치 미치루의 작품에는 쓸데없는 부연, 과도한 설명이 없다. 독자가 주체적으로 의미를 해석하고, 곱씹고,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이, 모든 행동이 망설여지고, 감정 전달에 조심스럽고, 변화하는 자신이 낯설고, 어찌할 줄 몰라 헤매이는 아다치 미츠루가 주목하는 '청춘'의 정체성-(1)정해진 것이 없는 서툴고 거친 상태/(2)표현하기에는 너무 애틋한 진심을 품은 상태-와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읽으면 상당한 여운을 느낄 수 있고, 메말랐던 감수성을 채울 수 있다. 오랜 시간 간격을 둔 다음 다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읽으면, 당시에는 '이게 무슨 뜻이지?'하고 이해 못한 채 넘겼던 장면을, '아, 이런 심리를 나타낸 장면이구나'하고 이해하게 된다.

청춘에 대한 낭만이나 향수를 품고 있거나, 마음 한 켠을 아련하고 뭉클하게 만드는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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