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포근한 시집서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다정한 서점지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유희경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서점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1) 독립서점, 대형서점도 아닌 시집서점이 무대가 된다는 것 (2) 서점에 방문하는 일반인이 아닌 서점지기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 (3)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과 문학을 벗삼은 삶을 조망하는 시인의 섬세한 시각이 담겼다는 것이 이 산문집의 매력이다.
나아가 독자는 산문집을 통해 시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서점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서점지기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시인의 개성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산문집에는 인테리어, 북토크 프로그램, 청소, 서재관리 등 시집서점 운영 방식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고, 서점을 방문하는 다양한 종류와 사연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서점지기 간 교류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와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 산문집은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임감을 가진 채, 식물을 기르듯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시집서점을 가꾸어나가는 작가의 모습과, 서점지기로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시처럼 만들어내는 작가의 문장력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다. 시집서점의 현실과 낭만이 절묘하게 교직하는 이야기라고 한줄평을 내릴 수 있겠다. 서점지기의 '퍼펙트 데이즈'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산문집을 추천하는 바이다.
'암만 생각해봐도 서점은 머그와 닮았다. 내 것도 네 것도 없이 다정한 의도로 나누어 쓰는 곳이다. 먼저 사용한 사람이 다음에 사용할 사람을 위해 정돈해놓고, 다음에 쓰는 사람은 먼저 쓴 사람이 되어서 마음을 덥히는 그런 곳이다. 그리하여 한데 모여 은은한 열을 내는 곳이기도 하다.'
'자리에 앉아 시집으로 가득한 책장을 발볼 때마다 나는 잎과 열매와 꽃을 잔뜩 매달고 있는 나무를 생각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저것들 모두 작은 씨앗으로부터 자라나 흙을 밟고 서서 오랜 시간 햇빛과 바람과 눈과 비가 키워낸 것들이 아닌가. 우리가 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뽑아 펼쳐들게 될 때 당장을 잊고 마는 것은 도무지 셀 수 없을 만큼의 역사가 그곳에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한곳에 머물러 맞이하는 입장이 되어서야 떠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세상 모든 장소가 그렇듯 서점에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거리가, 마음이 멀어져서, 불가피하게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 사람들은 돌아오기도 하고 여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여기 남아 있는 나는, 나의 서점은 그저 그들의 안녕을 궁금해하고 바라고 짐작할 뿐이며 어쩔 도리가 없으니 잘 있다가 그들이 돌아오면 환대를 해주어야겠다 다짐한다. 매일매일 다짐을 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이 자리에 있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점에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확히는 서점 특유의 두꺼운 침묵을 어느 정도 덜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란 물질은 한 권, 한 권, 두툼한 조용함을 가지고 있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다면 무거운 침묵이 어떤 것인지 체감해보았을 것이다. 한껏 가라앉은,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그 소리 없음은 어째서 발생하는 것일까. 알 수 없이, 그러한 중에는 그저 엄숙해지고 만다. 엄숙해져서 책에 집중하는 것은 좋겠으나, 누가 책을 사고 싶겠어. 그리하여 나는 음악 없는 서점을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서점 문을 연 첫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점 안 침묵을 음악으로 지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