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문학적인 단어들에서 가장 문학적인 순간을 길어 올리는
시인 안희연은 스스로를 '생산적 난독자'라고 부른다. 문학이면 줄거리, 비문학이라면 논지를 파악하며 페이지를 거침없이 넘겨야 하는데, 자신은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하염없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인 '단어의 집'에는 그가 붙들고 산 단어들에 관한 참신하고도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안희연 시인의 시집을 읽은 이들에게 이 산문집은 '안희연 시인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될 것이며, 안희연 시인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산문집은 '안희연 시인의 일상은 어떠한가'라는 호기심을 해소할 것이다.
안희연 시인을 몰랐다 해도 상관없다. 산문집의 한 챕터만 읽어도 안희연 시인은 가장 문학적이지 않고 사소해보이는 순간에서도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임이 독자에게 바로 와닿는다. 안희연 시인이 구축한 단어사전을 함께 읽어나가는 경험을 통해 독자는 자연스레 어휘력, 관찰력과 통찰력을 한 층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적산온도
그 과정에서 임계점이라는 단어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지금껏 내게 임계점은 어떠한 한계를 강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다. 놓친 풍선이 공중으로 날아가다 기압으로 인해 펑 터져버리는 순간 같은, 견딜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스스로를 구겨 담아 풍선으로 날려 보낼 때가 많았다. 피어나려면 그 시간을 견뎠어야 했는데, 놓치지 말고 끝까지 잡고 있었어야 했는데. 기어이 날려 보내야 했다면 터져버릴 풍선이 아니라 새 혹은 구름으로 보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번번히 반성과 후회로만 수렴되는 생각들.
라페
라페를 통해 나는 나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왔던 것 같다. 라페라는 단어를 내 식대로 정의할 수 있다면 이렇게 적을 것이다. 번뇌의 외투를 잠시 벗는 시간. 물론 번뇌는 끈질기고 정직해서 채 썬 당근을 보자마자 바로 들키고 만다. 손끝에 잡생각이 끼어들었는지 아닌지. 정말로 도망쳤는지 도망치는 시늉만 했는지. 그래도 칼질은 점차 늘고, 볼품없던 돌덩이가 실은 머나먼 행성에서 날아온 운석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가끔은 있다. 흔하디흔한 식재료에 불과했던 당근이 근사한 요리가 되어 접시 위에 놓일 때, 오늘 치의 번뇌는 그것으로 쓸모를 다한 거 아니겠나 싶어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버저비터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의 최대 수확은 여자 배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것인데 (중략) 실은 종목이 중요했던 것 같지는 않다. 심신이 자꾸만 허약해지는 날들 속에서 한계에 도전하는 정직한 육체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였으니까. 글쓰기에도 근육은 필요하다고, 우리가 늘 명작, 걸작을 쓰진 못해도 성실함으로 만들어지는 근육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정작 나의 몸은 출렁출렁 뱃살이 접힌 지 오래인 듯해 크게 반성도 하고.